정리해고

한진중공업 지회, 26일 파업 예고

한진중공업 지회, 26일 파업 예고

채길용 지회장은 “2월 19일 교섭에서 회사에 제시한 것은 처음이자 최종적인 지회의 입장이며, 회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26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결전의 의지”라고 밝혔다.

‘한진 시민대책위’ 정리해고 중단 촉구

‘한진 시민대책위’ 정리해고 중단 촉구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35개 시민단체들로 이루어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저지, 부산 경제살리기 시민대책위’가 지난 9일 오후 2시, 한진중공업에서 1천5백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해고할 352명 하나하나 얼굴을 떠올려 보셨나요”

“해고할 352명 하나하나 얼굴을 떠올려 보셨나요”

352명을 신고하셨다구요. 물론 명단작성을 완료하셨을테구요. 혹시 그 352명의 하나하나 얼굴을 떠올려 보셨나요.

교섭 중엔 해고통보 안 한다더니

교섭 중엔 해고통보 안 한다더니

한진중공업이 2일 오후 끝내 노동부에 정리해고 계획을 신고했다. 인원은 총 352명이다. 부산양산지부(지부장 문철상)에 따르면 2일 오후에 열린 노사 교섭에서 사측 교섭위원이 이 같은 사실을 노동조합 측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의 쌍용자동차] “77일 파업보다 경찰조사가 더 힘들었다”

[위기의 쌍용자동차] “77일 파업보다 경찰조사가 더 힘들었다”

경찰관에게 77일 파업보다 조사 과정이 더 힘들다고 말했단다. 또한 기억을 되짚으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단전, 단수, 가스 차단, 소화전 차단, 경찰-임직원-용역의 투입… 사람이 없었던 전쟁터와 같았던 평택공장안에서의 삶보다 경찰조사가 더 힘들었다는 이씨.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새책] 담담하게 묻는 77일의 역사

[새책] 담담하게 묻는 77일의 역사

쌍용차 노동자 파업일지로 시작되는 <77일>은 이들이 정리해고 통보를 받으면서부터 거리로 나오는 과정, 경찰과의 대치, 가족들과의 문화제, 그리고 점거한 공장의 낮과 밤을 담담히 사진으로 \'말한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진료를 다녀와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진료를 다녀와서

노동자의 아내들도 정리해고 된 남편과 다를 바 없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한 아이는 길을 가다 경찰만 보면 눈이 동그래지면 \"나쁜 경찰, 나쁜 경찰\"을 연발한다고 한다.

[위기의 쌍용자동차] “마음이 다쳐서… 빗소리도 신경 쓰이고”

[위기의 쌍용자동차] “마음이 다쳐서… 빗소리도 신경 쓰이고”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쌍용차 77일 파업에 참여했던 이씨는 14일 새벽 2시30분경 자택2층 베란다에서 고무호스에 목을 매고 자살을 시도했다. 파업이 끝난 뒤 이어지는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괴로웠던 그는 동료,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입에서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금호타이어, 노사교섭 중 정리해고 개별통보

금호타이어, 노사교섭 중 정리해고 개별통보

회사는 정리해고 대상자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세지를 통해 정리해고 예정자 명단을 개별통보했다. 같은 시간 노사는 23차 노사교섭을 벌이고 있었다. 노조는 정리해고 회사의 정리해고 명단 개별통보에 반발하며 오후 2시 30분경에 전면파업을 선언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1 +1 = 2\’라는 단순함을 넘어섰던 77日 – 77일간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평화누리통일누리] \’1 +1 = 2\’라는 단순함을 넘어섰던 77日 – 77일간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77日 간에 걸친 투쟁은 실로 영웅적이었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여운처럼 더 짙게 남았다. 그들과 70여 일을 함께 하면서... 나 자신은 농사꾼이었지만 거대 자본의 이윤을 보전해 주고자 그들은 자신을 수탈당해야 했고, 농민들은 자본의 전략적 요구에 의해서 ‘생산한 결과물 ’을 수탈당해야 하는 위치에 처해 있었기에.... 쌍용자동차의 총파업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총파업은 고독한 섬으로 내 몰렸지만... ‘노동자 가족대책위’는 남편들과 함께 평택시내로, 서울로, 인근 도시 지역으로 “쌍용자동차의 총파업 투쟁” 정당함을 알리고 노동자의 연대를 위해 움직였다. 산업자원부와 국회 앞에서 경찰 폭력을 헤치고 “1인 피켓 시위” 도 했고, 비를 맞으면서도 평택 시내를 도는 “삼보일배”도 했으며, 서울 시청 광장 앞에서 “삼보일배”를 하며 쌍용자동차 사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가족 중에 임신을 하신 분도 간혹 보였는데, 힘든 와중에서도 복날의 햇볕에서도 이들은 매일 매일 시내에서 유인물을 나눠 주었고, 방송 차량에 탑승해 “쌍용자동차 총파업”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노려했다. 시내 아파트 단지와 시 외곽 아파트 단지까지 이들 쌍용자동차 ‘노동자 가족대책위’의 차량이 평택시 일원에서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파업의 현장은 이들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진실’을 알려주는 학교였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가족대책위’ 대표님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밥상을 차리고, 가족들을 위해 하루 하루를 보내던 일상을 버린 채, 아이를 등에 업고 공장의 정문에서 팔뚝을 뻗으며 구호와 노동가요를 부르고, 정치인들에게 항의 활동을 하는 또 다른 일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왜 노동자는 자본과 싸워야 하는지, 사장이라는 사람들은 얼굴이 몇 개인지...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노동자 가족이 파업에 참가한 아이들 아빠를 보기위해 공장 정문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알게 되었다” 는 말은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는 명제를 현실에서 증명하고 있다. 산술적 계산으로 1+1=2 가 맞다. 수학적 계산으로 정확한 답이다. 그러나 인간사에 있어서 산술적 계산은 어울리지 않는다. 자본과 노동자의 관점에서도 이 계산식은 틀리고, 다르게 이해된다. 자본의 개념으로도 1+1=2 는 인정되지 않고 1+1=2(+a) 가 맞는 계산이고, 노동자의 개념에서 보면 1+1=2 는 생각하지 않으며, 파업의 현장에서 <사람과 사람의 결합> 은 또 다른 <힘 = 노동계급의 단결> 이라는 문장으로 표현된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옥쇄를 선택한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한 77日 동안에 최후까지 이들 600 名의 인원으로 단결해 공장을 지켜냈다. 자본이 동원한 2,000~3,000명의 용역깡패 구사대와, 그리고 국가 자본을 대변하는 3,000~4,000의 공권력을 합친 인해전술에 맞서서, 헬리콥터에서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리는 취루액과 사방의 소방차에서 뿜어지는 물줄기와 싸우며 그들의 공장을 지켜냈다. 영화 <300>이 따로 없고, 임진왜란 당시의 ‘진주성 혈전’이 비교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동학 농민전쟁 때의 ‘우금치 전투’를 비교할 수 있을까? 세계의 모든 노동관련 단체들이 놀랐고, 일부는 일부러 배우러 온 이도 있었다. 일본에서 온 노동자 단체가 있었고, 인도에서도 다녀갔고, 유럽에서 온 이들도 보고 갔다. 이제 평택 공장에서의 파업은 마무리가 되었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공장의 파업이 1라운드 였다면, 이제 2라운드가 기다리고 있다. 차라리 전쟁이라 불러도 모두가 수긍했을 폭력적이고 살인적인 파업 진압 과정에서 노동조합 집행부가 대부분 구속이 되었지만 영장 실질심사와 구속적부심 등을 통해서 아니면, 당시의 진압을 뚫고 살아남은 이들이 다시 뛰고 있다. 구속이 된 노동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지원하는 일과, 해고자들을 복직시키는 투쟁계획. 경찰에 의해 폐쇄 된 노동조합 사무실 문을 다시 여는 일, 등 등... 남은 자에게는 또 다른 임무들이 기다리고 있고, 이들은 취후의 승리를 위해 뛰고 있다.

기사 479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