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효(대표겸기자) 9일 오전 서울 영등포 소재 민주당사 앞에서는 ‘고양시 행신동 철거민 문제 외면하는 민주당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주거세입자였던 김혜자씨 가족은 2003년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에서 강제철거를 당했다. 그리고 지난 7년 동안 줄곧 길거리 천막생활을 하며 대명종합건설과 SK건설 그리고 관할 지자체인 고양시를 상대로 주거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있다. 아이 셋을 둔 김씨 부부는 지금 단식(43일차)에 들어가 건강이 위험한 상태다. 천막 강제철거와 연행 그리고 수천만 원의 벌금으로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이들이 민주당사를 찾아 기자회견을 연 것은 문제해결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최성 고양시장이 민주당 출신이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지난해 9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천막철거를 유보 시키겠다”고 약속한 최성 시장이 올해 3월 10일 “협상이 결렬됐다”는 이유를 들어 200여 명의 직원·용역·경찰을 동원해 자신들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천막을 철거했다며 분노했다. 또한 최성 시장이 천막 강제철거 4일 후, ‘보편적 복지’ 관련 민주당 행사에 손학규 대표와 함께 참석했는데, 천막 철거로 자신들을 오갈 곳 없게 만드는 사람과 그가 속한 정당이 무슨 ‘보편적 복지’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냐며 반문했다. 더욱
동작구 상도4동에 대한 강제철거가 진행됐다. 25일 새벽 3시 반경부터 철거용역 600여명은 골목마다 통행을 제한하고 명도와 철거를 집행해 주민들과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등 연대단체 회원들이 ‘불법철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어느 날 세입자라는 이름으로 낙인찍히고 무조건 퇴거명령을 받게 되었고, 개발이라는 칼부림으로 결국 이 땅 아니 이 가난이 찌든 집에서 대책 없이 쫓겨나야 하는 신세가 됐다. 허름한 회벽에 작은 창틀 그래도 이 작은 창틀에서 들어오는 햇볕은 아주 따뜻하지 않았을까?
도시빈민운동이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났던 몇 가지 입장들을 정리하도록 하겠는데 도시빈민운동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는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학계와 빈민 활동가 간에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빈민운동 뿐만 당시의 모든 운동이 이시기에 발현이 되고 발전을 모색했던 시기에 나타났던 자연스런 과정이었다.
빈민운동조직은 자신들이 단속과 철거라는 어려움에 빠지면 이에 대한 지원과 지지를 연대단위를 통해 얻어내고자 하는데 그치는 실리주의적 태도와 반면 대중조직에 대하여 동원과 재정적 지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단체들 간의 또 다른 역편향이 분명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스스로를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으로‘개혁’과 ‘유연한 진보’를 표면에 내세워도 결정적으로 한미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했으며 이를 관찰시키기 위해서는 진보 민중운동세력을 탄압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용산참사가 사람들 기억속에서 잊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사람이 가장 큰 희망이고 사람이 가장 큰 힘을 가졌다”는 진리를 깨우쳐 준 용산의 승리는 기억하자.
이 상황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정말 ‘어찌 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김순옥 씨의 말이, 대한민국 법과 공권력 안에서의 현실이다.
서울고법 형사7부(김인욱 부장판사)는 31일 ‘용산참사’ 망루 농성자 재판에서 용산4상공철거민대책위 이충연 위원장 등 9명에게 징역 5년에서 4년을 선고했다.
재개발사업의 세입자대책으로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제도로 이어졌으나 여전히 철거 이후부터 공공임대주택이 완료되기까지의 ‘임시거주시설’ 문제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지 못하는 ‘미 해당자’ 문제가 철거투쟁의 주요쟁점으로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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