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고1 입시 운명 어떻게 되나

고1 입시 운명 어떻게 되나

내신등급제 폐지를 외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여전하고, 본고사 부활론도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어서 2008년도 대학 입시안이 한동안 쟁점으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학생들의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막지 마라”

“학생들의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막지 마라”

고교1년생들이 자발적으로 주말인 7일 서울 광화문에서 내신위주 대입 반대 촛불 시위를 계획하고 있는 한편, 포털사이트 다음(daum)에는 ‘고교내신등급제반대’ 까페가 설립되었다. 교육당국은 원천봉쇄 방침을 내렸다.

[인권하루소식] 촛불집회 유감, 저항을 조직화하자

[인권하루소식] 촛불집회 유감, 저항을 조직화하자

촛불은 정신이었지, 형식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의 촛불은 시민의 창조물을 바탕으로 계속 복제품만 찍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안 군민 총궐기 투쟁-‘117일째 촛불집회와 밤 군민 산개투쟁’

부안 군민 총궐기 투쟁-‘117일째 촛불집회와 밤 군민 산개투쟁’

11월 19일 오후 7시가 조금 넘어 시작된 117일째 촛불집회는 오후 군민총파업투쟁의 열기를 이어 정부를 규탄하고 투쟁의 의지를 모으는 자리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노무현 정부는 대화의 자세가 돼 있지 않는 기만적인 정부이며, 폭력경찰을 앞세운 ‘살인’정부”라며 입을 모아 규탄했다. 오후 9시 반경 촛불집회가 끝나고, 군민들은 부안 군청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전투경찰병력이 길을 가로막았지만, 여느때와 다른 옆 길목으로 행진을 벌여 행진과정에서의 마찰은 없었다. 군청 앞에는 무장한 전투경찰들이 100여미터 앞까지 나와있었다. 7백여명이 군청앞에 도착했고, 일부 선봉에 선 50여명의 군민들은 쇠파이프와 나무 막대기를 들었고 나머지 대열은 방송차량 뒤에서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방송차량의 “핵폐기장 백지화 될 때까지 강력하게 투쟁하자”는 방송과 함께 선봉대들이 앞으로 나와 전투경찰과 대치했다. 격렬한 마찰과정에서 한번의 경찰진압이 있었고 진압도중 17명의 군민들이 머리와 손 등이 찢겨져 병원으로 이송됐고, 연행자들이 발생했지만 숫자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책위 방송차량이 경찰병력 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전진했다가 후진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군민들은 이어 대로에 가스통을 옮기고 불을 붙이며 경찰들의 진압을 막았다. 약 50여명이 남은 채 나머지 대오는 부안예술회관 방향으로 이동했으나

[인권하루소식] “자살자 속출하는데 미국에 돈·목숨까지 대주나”

[인권하루소식] “자살자 속출하는데 미국에 돈·목숨까지 대주나”

330일째 타오른 촛불, ‘파병반대’ 염원 담아 21일 ‘이라크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이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파병 찬반 여부에 관한 질의서를 발송하고 청와대 앞 파병반대 1인 시위를 계속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이날로 330회를 맞은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도 “파병반대”의 목소리가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으로 쌀쌀해진 가을밤 추위에도 불구하고 ‘제2, 제3의 효순이, 미선이가 이라크에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밝혀진 40여 개의 파병반대 촛불은 뜨겁게 타올랐다. 시청 앞 사무실에서 막 퇴근한 회사원을 비롯해 청년단체 회원까지 참가자들 모두는 지난 18일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파병 결정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촛불집회에 꾸준히 참석해왔다는 시민 유모 씨는 “이 땅에서 먹고살기 힘들어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는데도 미국에 돈 대주고 목숨까지 대주냐”며 침략전쟁의 뒤치다꺼리를 하기 위해 파병을 결정한 정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동부지역 일하는 청년회’ 소속의 한 청년은 “터키도 파병을 유보하고,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마저 파병을 거부하는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먼저 파병을 결정하는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여 너무 안타깝다”며 “평화를 위한 나라, 평화를 위한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미군에 의한 희생을

경찰, 촛불시위 군중 앞에서 무대 강제철거-강경진압

경찰, 촛불시위 군중 앞에서 무대 강제철거-강경진압

10일, 고향을 방문한 귀성객들과 함께 한 부안 군민들의 47번째 핵폐기장 반대 촛불시위가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인해 부상자(1인 중태), 연행자가 속출하고, 무대가 강제 철거되는 등의 사태가 발생했다. 정부의 부안사태 엄중대처 방침과 경찰병력 추가투입으로 ‘준계엄’ 불사케하는 상황 속에서, 경찰은 9일 새벽 매일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수협 앞 광장의 무대를 강제철거한데 이어 10일 새벽 백산면 선전물 강제철거와 주민폭행, 같은 날 오후 하서, 상서, 변산 등지에서의 선전물 철거 등을 진행하며, 추석 연휴 군민들의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봉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자주의 등불이 되어…

자주의 등불이 되어…

57년 만에 5만여 민중들이 세종로 미대사관앞에 섰다. 온전히 민중들의 의지와 힘만으로 그 앞에선 것이다. 미대사관 앞에 모인 수만의 민중들은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있었고 하늘위에서 본 그 촛불들은 반딧불이었다. 한 네티즌의 말처럼 살인미군에 무참히 쓰러져간 신효순, 심미선 두 여중생의 영혼이라도 담긴 듯한 촛불은 미대사관 앞을 수만의 반딧불이 되어 에워싼 것이다. 미대사관 앞 도로를 점거한 민중들은 그 자리에 앉아 자신들의 발언을 뱉어냈다. 여중생, 가정주부, 네티즌, 선생님등은 그 자리에 올라와 미군철수, 소파개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왜곡보도를 하는 언론을 질타하고 경찰의 폭력을 나무랐다. 이날 촛불행진은 범국민 대책위 주최로 종묘에서 진행된 ‘자주적인 나라 만들기 촛불 인간띠 잇기 대회’에 참가한 참가자들의 행진에서부터 심상치 않았다. 이들은 대형방송차량으로 종로를 행진하면서 광화문으로 모이자고 방송을 했고 집회 대오가 지나는 길마다 민중들의 환호성과 박수는 끊이지 않았다. 오후 5시 50분 경 이들의 행진을 경찰들이 종로1가에서 막아섰지만 행진 대오는 두배로 늘어나 있었고 어느새 경찰 뒤에서 촛불이 나타나는가 하면 인도를 지나 경찰뒤로 행진해가고 있었다. 경찰은 행진대오를 다시 세종로 사거리에서 막아섰지만 이때부터 촛불행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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