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액트] 각종 페미니스트들이 이야기하는 즐거운 ‘해방’

[액트] 각종 페미니스트들이 이야기하는 즐거운 ‘해방’

수수 ㅣ‘야성의 꽃다방’ 제작팀 여성주의 라디오를 만들자고 모인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던 고민이란 게 처음에 이랬다. “즐거우면 좋겠어” “가끔은 미친 척 우리의 솔직한 욕망도 드러내보자” “하나로 묶이지 않더라도 각자 생각하는 것들을 쏟아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다가 라디오프로그램 제목이 “야성의 꽃다방”이 되었다. “야성”도 그렇고 “꽃다방”도 그렇고, 정치적으로 깔끔하지 않은 제목이었기에 모두들 이 작명에 더욱 만족해했다. 이 두 가지 단어는 모두 여성들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것들이었으니까, 더욱더 가지고 와서 새로운 이미지를 담아보자는 고집을 피우면서 말이다. ‘야성’이란 말은 ‘야성의 엘자’같은 에로 비디오 제목에 나오는 것이라 되려 좋았다. 이성을 대표하는 남자, 그리고 그에 대한 상대항으로써 ‘들’의 존재인 여자라는 설정이 너무 웃기다 싶으면서, 그렇다면 정말 들을 신나게 뛰노는 광녀가 어떤지 보여주자는 앙심이 하나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꽃다방은 뭐냐? 네이버 지역검색을 찾아보면 전국에 무려 86개나 있다는 다방 대명사 ‘꽃다방’, 남성들의 추저분한 여가 공간을 ‘말’로라도 점거하자는 의미에서 꽃다방도 좋았던 거다. 그래서 공동체 라디오에서 처음으로 시작하는 여성주의 방송의 제목이 결국은 미친년 소리, 들소리, 다른

[현장에서 미래를] [120호]고통 속에서, 고통을 가로질러 만나는 여성들의 언어

[현장에서 미래를] [120호]고통 속에서, 고통을 가로질러 만나는 여성들의 언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의지적 무시는 자기방어기제의 일부다. 하지만, 이런 심리기제가 집단적으로 사회적으로 가동될 때는 부정의 폭력이 되곤 한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맥락에서, 특히 제국주의가 서구의 선진 문물을 통해 가동한 인식틀적 폭력을 두고, 스피박은 이런 종류의 의지적 무지/무시를 “인가받은 무시/무지”(sanctioned ignorance)라 쓴 바 있다.

[월간평화연대] 왜 여성주의자들은 반군사주의자인가? Ⅰ

[월간평화연대] 왜 여성주의자들은 반군사주의자인가? Ⅰ

이 글은 2003년 3월 1일 영국의 낸트위치(Nantwich)에서 열렸던 <평화와 자유를 위한 국제여성연맹(Women's International League for Peace and Freedom, WILPF)>의 연차총회에서 있었던 저자의 강연을 기초로 한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 관점이며 어떠한 조직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평화와 자유를 위한 국제여성연맹>과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Women in Black)>의 토론 자료로 홈페이지에 등록되어 있다.

[현장에서 미래를] [118] 역사를 떠미는 진보의 폭풍, 그리고 바이러스적 침투전

[현장에서 미래를] [118] 역사를 떠미는 진보의 폭풍, 그리고 바이러스적 침투전

진보를 그 동력으로 하는 역사의 뒷걸음질로-미래가기는 이론과 실천으로서 ‘좌파’ 진영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최근의 이런 뒷걸음질은 탈식민의 탈을 쓴 보다 강화된 식민성과, 여성,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내부적) 억압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 때문에 변혁의 ‘주체’를 자임했던 변혁세력은 역설적으로 자기변혁의 ‘대상’이 되었다.) 맑스(주의)한다는 이들의 연구는 아직도 상당 부분이 맑스, 그람시, 알튀세르 (최근에는 들뢰즈, 가타리, 네그리) 등의 작업에 주석을 다는 정도거나, 신자유주의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한국에서 전개되는 양상을 분석하는 글들 역시 맑스(주의) 문헌들에 대한 급진적 역사화에 기초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지금 여기를 분석하고자 온고지신, 법고창신하는 것은 좋지만, 문제는 이런 류의 ‘다시읽기’는 서구중심적 패러다임들에 대한 급진적 역사화 없이는 ‘모셔읽기’로 변질되기 쉽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미래를] [116호] 2006년, 우리에게 필요한 변혁의 역능들은 무엇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116호] 2006년, 우리에게 필요한 변혁의 역능들은 무엇인가.

2006년, 살아남아 발전하고 싶은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역능은 무엇인가? 변혁 세력이 살아남아 변혁에 박차를 가할 동력과 영감은 어디에 있을까? 합리성과 진보의 이름으로 백안시되어 온 하위억압들에 대한 집단적 성찰과 자기비판, 이것은 최소한일 뿐이고 하나의 출발점일 뿐이다.

아이공, 페미니즘 영상 70편 상영

아이공, 페미니즘 영상 70편 상영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에서 주최하는 27회 아이공 아카이브 기획전은 '페미니즘 비디오 액티비스트 2005'라는 제목으로 한국, 일본, 홍콩, 인도, 미국, 스위스 등 20여 명의 작가의 70여 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porNO porNA

porNO porNA

‘성’에서 폭력을 제거, 남성중심적, 남근중심적, 이성애중심적, 비장애인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배제돼 왔던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등의 욕망을 포괄

[인터-뉴스] [167호/초점] 새로운 젠더 질서에서의 페미니즘: 재구조화된 자본, 재구성된 정체성

[인터-뉴스] [167호/초점] 새로운 젠더 질서에서의 페미니즘: 재구조화된 자본, 재구성된 정체성

우리 운동들은 약하고 현재 방어태세에 있다. 그러나 페미니스 트, 반인종주의, 게이 해방 운동들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연대의 가능 성을 열어주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국제통화 기금, G8 등에 집중하면서 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전세계적 운동 은 좌파에게 재생된 활기와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노동/환경 연대는 엄청난 급진적 잠재력을 갖는다.

[인터-뉴스] [163호/연재] 북반구 노조에 대한 페미니즘의 도전 : 가능성과 모순(2)

[인터-뉴스] [163호/연재] 북반구 노조에 대한 페미니즘의 도전 : 가능성과 모순(2)

일반적으로 페미니즘은 노조 내에서 정식화되었다. 그러나 경제주의적, 개량주의적 경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70년대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노동계급과 유색인 여성의 불참으로 제한적이었다. 여성조합원들과의 연대로 그 한계를 극복했지만 동시에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힘이 사회적 변화에 대한 그들의 전망을 희석시키는 노동계급의 일상적 투쟁에 매몰되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적 경향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나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변혁적 전망은 주무대를 벗어난 주변부에서만 맴돌고 있다.

[인터-뉴스] [162호/연재] 북반구 노조에 대한 페미니즘의 도전 : 가능성과 모순

[인터-뉴스] [162호/연재] 북반구 노조에 대한 페미니즘의 도전 : 가능성과 모순

노조 페미니즘은 임금노동과 무임금 노동, 가정과 직장, 경제와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분할을 해체하는데 근본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된 영역으로서의 직장을 사고하는 것을 도전함으로써 공/사 분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켰고 직장과 사회 간의 관계에 대한 노조운동의 전망을 확장하려는 잠재성을 증대시켰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들은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이슈을 재개념화해 그 요구를 확장시켰고 가정과 지역사회에서의 문제와 연결시켰으며 노동력 재생산과 지역사회의 문화 활동을 발전시키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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