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통사

[평화누리통일누리] 경북지역 평화통일 기획강좌 및 통일교육 워크숍

[평화누리통일누리] 경북지역 평화통일 기획강좌 및 통일교육 워크숍

‘6·15공동선언실천대구경북본부’에서 주최하고 ‘안동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주관하는 평화통일 기획 강좌 및 통일 교육 워크숍이 11월 12일(목)부터 같은 달 21일(화)(매강 오후 7시) 까지 세 번의 초청인사 강연과 이틀에 걸친 워크숍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차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이 내년이면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에 이번 강좌는 대구,경북지역 사람들의 평화통일문제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남북관계 개선 및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위해 우리민족이 어떤 전망을 가지고 통일문제를 개척해야 하는지를 심도 깊게 알아보기 위한 교육의 장으로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평화동일 기획 강좌는 12일(목) ‘10·4선언의 의미와 남북 관계’ 라는 주제로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의 강연으로 시작되었고, 17일(화) ‘급물살 타는 북미관계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민족21’ 안영민 편집장의 강연과 마지막 19일(목)에는 ‘내가 만난 북한 내가 생각하는 통일’이라는 주제로 신은희 경희대 교수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한편 이번 기획 강좌는 안동 가톨릭 상지대학 세미나실에서 이루어졌고 통일교육 워크숍은 안동독립기념관에서 있었습니다. 참석해주신 회원 여러분들과 지역 시민단체들, 그리고 안동시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특히 바쁘신 중에도 강단에 서주신 세 분 선생님들께 고개를 숙입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부안에서 강정구 교수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부안에서 강정구 교수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11월 20일 김제부안평통사(준)는 강정구 교수님을 모시고 “한반도에 평화는 오는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주제로 대중강연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부안종합사회복지관 교육실에서 열린 이번 강연회는 평화협정 실현운동에 대한 대중적 홍보를 통해 김제부안평통사의 조직적 토대를 확대시키기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이날 강연회에는 부안아카데미 회원, 부안시민발전소, 부안농민회, 이수금 전농 전의장님, 김제부안회원 등 23명이 참가해 평화협정 운동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어진 강연에서 강정구 교수님은 “분단이후 미국이 한반도에서 벌여온 수차례의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천문학적으로 소요되는 미군퍼주기 예산을 서민복지 예산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화협정 체결이 절실하다.”면서 “9·19공동성명과 2·13합의를 통해 평화협정 체결의 절호의 기회가 왔다. 우리가 앞장서서 주한미군 내보내는 평화협정 실현운동을 범국민운동으로 전개하자”고 호소하셨습니다. 강연 후 참가자들의 진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강연회를 마친 후 회원들은 뒷풀이 장소에서 오늘 만난 부안지역 분들과 함께 김제부안평통사의 결성을 위해 더욱 노력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태산 영남-대구를 흔들어 깨우자! 대구평통사 결성 비나리

[평화누리통일누리] 태산 영남-대구를 흔들어 깨우자! 대구평통사 결성 비나리

2009년 10월 7일, 열 네 사람의 평통사 회원들이 대구평통사 결성 준비위원회를 세웠다. 드디어 내년초에 대구평통사가 결성된다. 대구에 평통사를 결성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딘 지 8년 만이다. 대구평통사 결성은 지난 5월 부산평통사 결성에 이어 영남지역에 평통사 뿌리를 내리는 숙원이 이루어지는 쾌거다. 어느 지역 평통사인들 소중하지 않을까마는 대구평통사 결성을 앞둔 감회가 남다르다. 대구에서 평통사를 조직하기 위한 시도는 2001년에 시작되었다. 한 회원이 직장을 대구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는 대구에서 평통사 활동을 만들어보겠다고 의욕적으로 나섰다. 그렇지만 수구냉전적인 대구지역과 회사 분위기를 돌파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2002년, 대구에서도 여중생 촛불이 켜졌다.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시내로 나왔고 대구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동참하는 이 같은 촛불 시위가 참으로 오랜 만에 있는 일이었다. 중앙사무처에서 여중생 추모 대구백화점 앞 집회에 내려가 사진전과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홍근수 목사님의 소개로 대구 지역 목회자들게 연락을 넣어 간담회를 열었다. 대구에서 평통사를 해보자는 제안은 의외로 선뜻 받아들여졌다. 그리하어 2002년 12월 15일, 영남신학대학교 정경호 교수와 구민교회 김경태(대구 외국인노동상담소장) 목사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것이 ‘(대구 경북)지구촌의 평화와통일을일구는사람들(약칭 지통사)’이다. 당시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에 나서고 있던 정경호 교수는 대구의 정서를 고려하고, 한반도 뿐 아니라 전 지구의 평화에도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지통사’라는 명칭이 어색하긴 했지만 평통사는 지역평통사 결성과 활동에서 해당 지역의 실정과 주체적인 조건, 요구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에 정경호 교수와 대구분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지통사는 2003년 6월 재창립 평통사 총회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평통사 재창립의 의의를 높이는데 기여했지만 창립 이후 중앙운영위 참가나 평통사 실천 과제에 대한 동참을 하지 않는 등 조직적인 활동에서 문제점을 보였다. “대구를 ‘지역’이라 하지 말고 ‘중앙’이라는 표현을 쓰지 마라” 하고 중앙사무처에서 대구를 방문하는 일을 부담스러워 했다. 이에 홍근수 상임대표가 직접 대구에 내려가 조직적인 활동을 독려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지만 결국 지통사는 평통사 활동을 제대로 전개하지 못하고 아무런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해소되었다. 지통사가 해소된 후에도 몇 몇 회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대구평통사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용기를 주셨다. 그 분들이야말로 대구평통사 결성의 동력이다. 누군가 나서주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 늘 속만 태우던 중 2007년, 놀랍게도 백창욱 목사가 대구평통사를 해보겠다고 자원하였다. 목정평(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활동을 하면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투쟁에 나섰던 백 목사는 대추리 싸움 과정에서 평통사를 알게 되었고 평통사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높이게 되었다. 마침 대구로 내려가 목회를 하게 된 백 목사가 대구평통사 재결성해 나서겠노라고 한 것이다. 진심으로 기다리면 이런 일도 생기는가 싶었다. 2007년 9월, 한반도 평화협정 실현에 나서기로 결의한 광주 일꾼 전진대회에 수줍은 듯 머쓱한 모습으로 나타난 백창욱 목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백 목사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대구에서 가족들과 함께 평화협정 캠페인을 벌여 길잡이 수 백 명을 조직해내고 대구평통사의 이름을 대구지역 단체와 활동가들에게 알려내었다. 평통사는 2008년 그에게 모범회원상을 시상하여 노고를 치하하고 더 적극적인 활동을 독려하였다. 지금은 수구보수의 아성의 대명사가 된 대구는 한 때 정치적으로 ‘남한의 모스크바’라고 불리며 남한 진보운동의 중추였다고 한다. 해방직후인 1946년 미군정의 폭압에 맞서 일어난 10월의 대구 인민항쟁은 1948년 제주 4·3항쟁과 10월 여순항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자유당 독재에 맞선 투쟁에서도 대구는 중심적 역할을 한다. 1960년 2월 28일, 대구 학생의거는 3·15 마산항거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이 항쟁의 흐름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4.19혁명에서 정점에 이르고 4월 26일 이승만을 하야시켰다. 박정희는 학생, 교사, 언론이 높은 결합력을 갖고 민주화 투쟁을 선도해온 대구, 자신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대구가 두려웠다. 그는 1964년 굴욕적인 한일회담에 반대해나선 6.3학생투쟁 직후 1차 인혁당 사건을 조작했고, 1975년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2차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고 8명을 즉각 처형함으로써 반유신세력을 거세하고 투쟁을 잠재우려 했다. 대구에서 4.9인혁재단 활동을 하는 김찬수 대구평통사 결성 준비위원은 “‘인혁 학살’로 공포감을 느낀 대구 시민들은 보수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박정희는 영호남차별전략을 통해 대구인재들을 중앙정부에 등용하여 지역민심을 장악했다. 인혁당 사건에서 살아남은 이재문 선생이 남민전을 결성, 다시 탄압받으면서 대구 진보세력의 불씨는 괴멸직전에 놓이게 되었다.1)”고 평가한다.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진보운동의 중추 기지에서 수구보수의 아성으로 변해버린 대구. 이 대구에 미군은 캠프 헨리, 캠프 워커, K2 공항 등을 두고 대구를 주한미군의 병참기지, 정보통신첨단기지로 사용하고 있다. 전 전농회장 윤정석 회원은 “예전부터 영남을 태산명월이라 칭송했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박정희 때부터 잘못되어 문딩이 같이 되었다. 영남 출신이란 게 부끄럽고 답답해서 속에 불이난다....하긴 태산은 태산이지 한 번 자리 잡으면 꿈쩍도 않는 태산이지...”하며 한탄하였다. 32년 전 참혹한 죽음을 당한 인혁당 희생자들이 지난 2007년 1월 무죄판결을 받았다. 우연일까? 대구에서 평통사가 오랜 침묵을 깨고 활동에 나선 것도 2007년이다. 이제 대구평통사가 각계각층의 동참아래 제대로 허리 펴 일어서면 태산같이 꿈쩍않는 수구보수의 아성, 미군들의 병참기지가 되어버린 대구도 긴 잠에서 깨어나리라. 비나리.

[평화누리통일누리] [지역평통사 모임과 활동] 김제부안(준)

[평화누리통일누리] [지역평통사 모임과 활동] 김제부안(준)

모든 열매들이 익어가고 수확을 앞두고 있습니다. 김제부안모임이 시작 된지 여러 달이 지났습니다. 많은 일들을 계획했고 적지 않은 모임을 가졌습니다. 회원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이런 저런 일들을 진행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가을에 걸맞게 열매 맺는 김제부안모임이 될 것입니다. 농촌지역의 특성상 8월 모임이 열리지 못했고 아쉽지만 9월에 모이기로 한 것입니다. 다행히 조금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분들이 손은하 목사님이 새 살림터로 만들고 가꾸시는 임실 신덕에서 8월 25일 모여 1박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은 손은하 목사님 가족과 김형예님, 김판태 군산사무국장님과 황승원님이 참여하였습니다. 새벽까지 김제부안모임의 활성화를 위한 의견 나눔과 회원들 개인의 사는 이야기를 하며 조금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임실 신덕은 편백나무 숲과 해발 400미터가 넘는 지역으로 경치도 수려하고 공기가 맑아 정말 아름답고 아늑한 곳이랍니다. 이런 좋은 곳에서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로 밤을 세웠더니 모두가 바라보는 통일을 향한 그림이 보다 더 구체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아주 좋은 시간이었는데 다음엔 김제부안모임의 모든 회원들이 참여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번 모임에는 각자 하시고 있는 일들로 참여하지 못한 회원들이 많아서 중요한 문제들은 조금 뒤로 밀어놓고 조금은 편안한 친목회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음식은 김형예 회원님이 준비하셨는데 갈치조림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부안에 김영표님은 지역농민회 사무국장직을 수행하고 계신데 내부의 급한 일로 참여 하지 못했고, 부안 격포의 심성희 회원은 도예가로 활동 중이신데 전시회가 예정 되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이밖에 몸이 불편해서 참석하지 못하시고 여러 가지 사정상 참여하지 못한 회원들과 다음모임엔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이날은 계속 미루어 놓고 있는 사업인 김제부안 강연회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올해 꼭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회원들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군산평통사가 계획 중인 9월 12일 대행진에 참석하자는 뜻을 모았습니다. 9월 12일 오후 1시30분에 군산 옥서면에서 개최된 ‘군산 평화 대행진’은 미군기지의 확장 중단과 아파치 헬기 반대, 전쟁연습으로 인한 공동체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고 동아시아에 미군 없는 평화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다른 지역 평통사 회원님들도 함께하여 더욱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모임은 부안 변산공동체에서 생활하고 계신 양창인 회원님 자택에서 모이기로 예정되었습니다. 우선 9월 말에 모이기로 되어있고 바쁜 수확의 계절이라서 조금은 조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약하지만 멈추지 않는 지속적인 통일운동이라면 이 가을의 수확만큼이나 좋은 열매들을 맺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하반기 김제부안 평통사 결성을 위한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하반기 김제부안 평통사 결성을 위한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김제부안 회원들이 6월 모임을 가졌습니다. 지난 12일 이서에 있는 기독교 농촌 개발원에서 모였고 간단하게 주변 정세에 대해 듣고 군산 김판태 사무국장이 준비한 자료를 함게 검토하는 것으로 6월 모임을 치렀습니다. 이번에는 농촌개발원 대표이신 이태영 목사님께서 함께 해주셨고 회원으로 가입해 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직접 재배하신 허브로 차를 끓여 주셨고 맛있는 저녁을 사주셨습니다. 다음 모임은 7월 10일 6시에 부안 농민회 사무국에서 모이기로 정했습니다. 많은 관심바랍니다.

지금은 ‘평화훈련’이 필요한 때

지금은 ‘평화훈련’이 필요한 때

군산미군기지 앞 정기집회가 북측에서 지난 5일 ‘한국 국적 민간항공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발표하고 10일에는 군 통신선을 차단하는 등 남북관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열렸다.

[평화누리통일누리] 안동평통사 소식

[평화누리통일누리] 안동평통사 소식

9월 25일(수) 오후 7시 나섬학교에서 9월 회원 만남의 날 행사인 통일영화 상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초 영화 속 북측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북측의 일상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에 목표 를 두고서 북측 영화 “한 여학생의 일기”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이 영화의 CD본을 구하지 못해 불가피하 게 영상물을 한 이방인의 눈으로 본 평양방문기 르포로 급히 바꾸게 되었습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평통사를 통해 작은 희열을 느낍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평통사를 통해 작은 희열을 느낍니다.

작년 ‘작전통제권 제대로 되찾기 1만인 선언’에 참가한 것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선언을 조직하면서 보수적인 교육과 언론의 문제점을 새삼 느꼈습니다. 함께 해주신 분들께 이런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50대 이상의 연령층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보람 있고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안동 평통사, 제5기 시민학교를 돌아보며]

[평화누리통일누리] [안동 평통사, 제5기 시민학교를 돌아보며]

분단된 이 땅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며 지역의 대안적 발전을 위한 자발적 시민단체 “안동, 평화와 통일 을 여는 사람들”이 이번 2007년 가을을 맞아 연례적으로 행사해오던 안동 시민학교의 제5회째 개교를 맞았다. 기간은 11월 2일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 저녁(19:00~21:30)에 개강하여 11월 30일까지 연 5주간 진행됐다. 장소 는 안동가톨릭상지대학교 셀린관과 세미나실로 지역의 매우 뜻 깊은 행사인 만큼 대학 측에서 장소 및 시설을 전 격 후원해 주었다. 이번 제5기 안동시민학교의 제목은 “민족주의 이후의 민족”으로 큰 틀을 정했다. 정치, 군사, 외교적으로 점차 가속되어지는 전 지구적 미 제국주의와 또 신자유주의라는 미명하에 진행되는 경제 적 예속을 탈피하고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이뤄내는 진정한 대안이 무엇일까 하는 일종의 모색에서 출발했다. 즉, 글로벌화 된 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사고의 필요성과 함께 분단된 이 땅에서 어렵게 싹이 트기 시작한 “우 리 민족끼리”의 남북화해 협력이 내포하는 진정한 민족주의와 또 우리에게 과연 “민족”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깊이 성찰해 보기 위한 기회로 활용해 보기 위함이었다. 이번 제5기 안동시민학교를 실제적으로 기획하고 입안한 피재 현 정책실장의 “민족주의 이후의 민족”으로 정한 화두의 웅변이다. 이러한 관계로 이번 제5기 안동시민학교의 초빙 강사진은 이 “민족”이라는 큰 주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가 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면면만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평화누리통일누리] 평통史(3) – 자주적 민간통일운동의 새로운 조직적 전망을 모색하여,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를 결성하다. 1999년

[평화누리통일누리] 평통史(3) – 자주적 민간통일운동의 새로운 조직적 전망을 모색하여,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를 결성하다. 1999년

98년 8월 통일행사 과정에서의 쟁점은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 구성에서의 한총련, 범민련 남측본부의 가입 배 제와 관변단체인 민화협이 결성된 것 두 가지였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평통사는 9월, ‘자주적 민간통일운동진영 의 새로운 조직적 전망을 모색’하기 위해 통일운동단체의 대표자들의 좌담회를 조직하는 등 자주통일진영의 재편 논의를 주도한다.(1998년 9월20일, 회지 통권 17호) 좌담회에 개인자격으로 참가한 대표자들(민족회의, 민자통, 범민련, 민주노총, 전국연합, 사월혁명회, 평통사)은 민족회의의 민화협 가입문제를 강하게 비판하였고, 민화협과 정부에 독자성을 가진 자주적 민간통일운동 진영의 단결과 재편의 필요성을 공감한다. 한편 정의구현사제단의 일원으로 평양 장충성당 건립 10주년 기념미사를 위해 북을 방문했던 문규현 상임대표는 그 시기에 열린 북의 통일대축전 행사에 참가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른다. 이전정권과 달리 북에 대한 전향적 태도를 취하며 북과 통일대축전을 함께 치르자고 했던 김대중 정권이 취임 첫 해에 저지른 행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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