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거리의 시인이라 불리는 벗 송경동 시인이 전화를 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대연합이 어떻고 진보대연합이 어떠니, 무슨 기자회견인가를 하니 나보고 서명을 하란다.
한 십년 전인가? 송경동 시인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찬성이다. 앞으로는 서명 같은 이름을 올리는 일이 있으면 묻지 말고 송경동 시인이 알아서 하라고 나의 정치생명을 위임했다. 하지만 송경동 시인은 꼬박꼬박 내게 전화해서 물었고, 어눌하고 긴 송경동 시인의 말을 이해했든 하지 못했든 나는 ‘좋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싫어’라고 말했다. “정말이냐?” 되묻는다. “정말이다.” 매정하게 말을 끊었다. 송경동 시인처럼 거리에 목숨을 내놓고 몸으로 시를 쓰지도 못하는 주제에 ‘싫어’라고 거부하고 나니 가슴이 아팠다. 경찰 방패에 찍히는 일도 아니고 개처럼 두들겨 맞으며 감옥에 가는 일도 아닌데, 내 이름 석 자가 뭐 중요하다고, 송경동 시인의 제안을 거절한단 말인가. 부끄럽다.
좀 쉬어야겠다는 송경동 시인은 쉬면서도 바쁘다. 오늘(29일)은 오랜 시간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위해 문화노동자들과 함께 홍대 앞 상상마당 라이브 홀에서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힘내자 콘서트 - 기세등등 기타등등’ 행사를 한다며 초대장을 보내며 자신도 갈 것이며 뒤풀이 술도 한잔 사겠다며 내게 낚시질을 한다.
어디 이뿐인가? 허구한 날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는 이유로 철거민과 함께 했다는 이유로 소환장이 날아오고 재판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지 않는가.
송경동 시인과 친구가 되려면 괴롭다. 끊임없이 소외된 이웃의 곁에서 몸으로 시를 쓰고 글을 쓰는 친구 옆에 있자면 좀 눈감고 세상일과 멀어져 살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그의 절절한 편지나 지쳐 있는 목소리가 흐르는 전화를 받으면 하던 일을 팽개치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용산 철거민 학살에 맞선 싸움이 한창일 때 송경동 시인은 그곳에 있었다. 문화제 사회를 볼 사람이 없다며 니가 한번만 봐달라는 전화가 왔다. 원체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싫어하는 나는 매번 이 핑계 저 핑계를 둘러대며 피했다. 한두 달이면 끝나겠지 했던 싸움은 언제부턴가 끝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사회를 보지 않겠다고 둘러댈 핑계거리조차 바닥이 났다. 사회를 보느니 어디 점거해서 구속될 일을 달라고 송경동 시인에게 사정을 했다. 문화제 사회를 보면 소환장이 날아오고 구속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럼 좋다. 난생 처음 사람들 앞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겐 소환장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반면에 송경동 시인은 용산 장례식이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소환장이 날아온단다. 송경동 시인은 소환을 거부하며 차라리 잡아가라고 저항하고 있다.
이런 벗한테 지방선거를 앞두고 성명서를 발표하려는데 서명 좀 하라는 요청이 왔는데, 감히 거부를 하다니, 낯 뜨거울 일이다. 하지만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변명을 해야겠다.
“경동아! 나는 민주대연합이나 진보대연합이 지금 내가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거 거부 운동을 할 때고, 선거를 무시하고 저항할 때라고, 아직은 선거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선도 차선도 아니라 생각한다. 아직은 말이야.”
안다. 그리고 배웠다.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도 뼈저리게 느낀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며, 특히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일이 아닌가. 혁명의 담론도 주체도 사라는 시절, 선거가 민중의 주름살을 펴주는 유일한 탈출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대안도 힘도 없지만 거부한다.
경기도의 외국투자기업 파카한일유압과 포레시아에서 해고된 이들은 지난 28일 수원역 앞에서 시민들에게 선전물을 나눠주다 수원서부경찰서에 연행되었다. 경기도가 외국투자기업에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정작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해고를 당했다. 또한 쌍용자동차의 경우처럼 국내 기술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어 부작용이 크다는 내용이다. 경찰은 경기도지사 선거에 재출마할 예정인 김문수 도지사를 비방한 선거법 110조 위반이라고 한다. 먹고살겠다고, 일터에서 쫓겨나면 밥줄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나라에서 사는 백성이기에 최소한의 권리를 말하는 노동자들은 선거 때문에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이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다. 이게 대한민국 선거가 노동자에게 주는 선물이다.
최소한의 생존권을 위한 목소리조차 법에 의해 짓밟히는 땅에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 될 수 없다. 민주 후보니 진보 후보니 목에 넥타이 매고 명함을 돌릴 때인가, 그리고 양복 깃에 배지를 달면 파카한일유압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까?
지역과 국가와 지구의 명운이 달려있는 4대강 문제에 대해서 입을 닥쳐야 하는 선거, 바로 이 선거판을 뒤집어엎을 선거운동을 할 정당과 후보가 있지 않는 한 이번 지방선거는 나 홀로로라도 거부하고 저항할 수밖에 없다.
송경동 시인께 미안하다. 희망의 작은 불씨를 소중히 여기며 싸우려는 송경동 시인에게 ‘싫어’라 말할 수밖에 없는 내게도 미안하다. 아직은 저항의 시절, 대안 없는 거부 밖에 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오늘이 많은 이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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