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자치권 확대 움직임, 남미 좌파정권 흔드나

에보 모랄레스, 자치권 확대 투표 통과로 최대 정치적 위기

볼리비아 동부 산타크루스 주에서 4일 실시된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가 사실상 통과된 것으로 보인다.

4일 저녁 현지 언론 출구조사 결과 85% 이상의 찬성을 얻었다는 결과가 발표되자 에보 모랄레스 정부의 개혁에 반발해왔던 야당세력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루벤 코스타스 주지사는 "오늘 산타크루스에서 우리는 새로운 공화국, 새로운 국가를 시작한다"며 앞으로 펼쳐질 에보 모랄레스 정부와의 힘겨루기를 예고했다.

그러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 주민 투표는 실패했다. 불법이고, 위헌이다"라며 투표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지난 3월 7일 선거 법원은 산타크루스 주를 비롯한 4개 주의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가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아울러 "누구도 80% 이상을 득표했다고 말할 수 없다"며 기권율이 카미리 지역 42%, 푸에르토 수아레스 31%, 사이피나 60% 등을 기록해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출신의 사회주의운동(MAS)은 산타크루스 주의 지지자들에게 기권을 통해 투표를 무력화시키자고 독려해 왔다.

투표 현장에서는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를 막으려는 사회주의운동(MAS) 지지자들과 야당 지지자들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68세의 벤야민 티코나가 사망하고, 35명이 부상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출범 이후, 최대 위기 맞은 에보 모랄레스

한편, 이번 자치권 확대 투표를 통해 에보 모랄레스 정부가 출범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자치권 확대안으로 각 주는 연방정부에 준하는 지위를 얻게 되어, 에보 모랄레스 정부가 추진해왔던 개혁 조치들이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자치권 확대안에 따르면 산타크루스 주는 사법권부터 세금과 재정, 토지, 주택, 천연자원에까지 통제 권한을 가지게 된다. 또, 주지사는 독자적으로 국제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자체 경찰 병력을 구성, 운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현행 볼리비아 헌법과 이후 추진될 개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현행 헌법 136조는 천연 자원에 대해 국가적 통제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이후 국민투표에 붙여질 개헌안 349조는 국가의 천연자원에 대해 "집단적 이익"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정신에 따라 에보 모랄레스 정부는 집권 이후부터 가스, 석유 및 광물 등 천연자원에 대한 연방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면서, 국유화 조치를 단행해 왔다. 1일 볼리비아 정부는 석유메이저 BP(브리티시 페트롤리엄)가 지분을 갖고 있는 차코(Chaco) 등 에너지 관련 4개 기업을 국유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자치권 확대 조치로 인해 볼리비아의 국유화 정책에 반발해 왔던 초국적 에너지 기업들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 되고, 12월 통과된 개헌안은 사실상은 무력화될 것이라고 사회주의운동(MAS)은 주장하고 있다.

토지 개혁도 반발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 개헌의회를 통과한 개헌한 397조에서는 대규모 토지 소유를 "공동체의 이익과 국가 개발"에 반하는 것으로 보고 제한을 두고 있다. 에보 모랄레스 정부는 토지 소유를 5,000~10,000헥타르까지 상한선을 두는 정책을 주진하고 있다. 현재, 산타크루스의 일부 부유층들은 20만 헥타르까지 소유하고 있다고 볼리비아 국립토지개혁연구소(INRA)는 밝히고 있다.

자치권 확대 움직임은 "남미 사회주의에 제동을 거는 시도"

그러나 이번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는 볼리비아뿐만 아니라 확산되고 있는 남미지역 좌파 정권에도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투표에 앞서 주민투표가 미국 등의 영향을 받아 추진되고 있다며 "주민투표는 남미지역 사회주의에 제동을 걸기 위한 의도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으며, 볼리비아는 남미 좌파 정권의 미래에 대한 시험장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산타크루스 주 정부의 주민투표를 인정할 수 없다며 비난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볼리비아 야권을 자극해 자치권 확대 움직임을 지원하고 폭력사태를 부추기고 있다"며 "미국 정부는 볼리비아의 분열을 바라고 있다"고 주장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서부 지역에서도 내년 중 분열주의 움직임을 제기할 것이라는 정보를 갖고 있다"며 미국이 석유 및 천연 가스 등 자원이 풍부한 지역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부추겨 남미 좌파 정권을 흔들려고 한다며 비난했다.

사비에르 사라테 에콰도르 주재 볼리비아 대사는 현지 방송을 통해 에콰도르 경제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과야스 주에서 자치권 확보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또, 2006년과 지난해 여러 차례에 걸쳐 산타크루스와 과야스 대표들이 자치권을 주제로 회동을 가지기도 했다는 점을 폭로해, 이것이 볼리비아만에 국한된 상황만은 아니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출신 미국 변호사 에바 골링어는 미국이 2005년부터 한해 1억 2천 달러 이상을 국제개발처(UNAID)와 전국민주주의재단(NED)을 통해 볼리비아 여당 세력과 NGO에게 공급해 주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4일 산타크루스 주를 시작으로 6월에는 베니, 판도, 타리하 등 반 모랄레스 노선을 걷고 있다는 다른 3개 주에서도 주민투표가 실시될 예정이어서 모랄레스 정부와의 긴장을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산타크루스 주는 천연가스, 석유 등 에너지와 철광석, 금 등을 자원을 바탕으로 볼리비아 국내 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고 있고, 경작가능면적으로 65%를 차지하고 있다. 산타크루스 주와 베니, 판도, 타리하 주는 볼리비아 천연가스 생산의 80%를 차지하고 있어, 정부의 주 세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