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국민의 힘)의 대선 후보로 윤석열이 뽑혔다. 당심이 민심을 이겼다고 했다. 여하튼 이번에도 보수우익정치는 자신의 성격을 정확히 드러냈다. 입당한지 3개월도 안된 ‘외부자’를 끌어다 대통령 후보를 만들 정도의 ‘당심’을 표출하는 정당이다. 이렇듯 그들은 권력욕이 강하고, 개방적이다(개방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이 사회 권력 인사들이 대동소이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어떤 면에서 보수 우익정당에게 배울 점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자기 내부를 흔들고 재편하는, 권력욕이라는 목적의식. 그리고 외부자를 받아들여서 내부를 정리할 정도의 개방성. 그들은 오래된 당원이자 베테랑 정치인이자 내부의 ‘재야’ 같은 존재인 홍준표가 대선후보로 나오자 이를 극구 막아섰다. 홍준표가 그들이 그렇게 오매불망했던 청년의 지지를, 민주당 후보보다 더한 지지를 받으면서 일어서는데도 그를 선택하지 않은 당심이라는 면에서, 그들은 확실히 조직의 보존이라는 면에서 당파적이기도 하다. 국힘의 중요한 뒷배인 개신교 단체 한교연이 경선 하루 전날 윤석열 지지를 선언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것은 국힘과 보수세력 내부를 향한 정확한 메시지였다.
하지만 사실은 이것은 국힘, 보수우익만이 아니라 정치의 일반성에 해당할 얘기다. 그리고 사회운동과 진보/좌파정치에도 해당된다. 내부의 적이 색깔 없는 외부자보다 더 두렵고 불편하고, 그래서 더 경계하는 것, 하나의 ‘진영’ 혹은 판에서 자신들의 편이 절대 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자에 대해선, 유력하든 필요하든간에, 정치에서 일단 배제하고 쳐버리는 것 말이다.
칼 슈미트 표현으로 정치는 ‘피아’의 구분이고, 이러한 정치의 ‘피아’ 구분 의식은, 한국의 진보정치, 좌파정치/운동까지 다 포함해서 사실은 ‘정치’가 있는 곳 어디서나 흔한 풍경이다. 진보, 좌파정치에 사람이 없네, 인물이 없네, 입장이 없네 하지만, 그들 역시 그냥 자신들의 사람, 인물, 입장을 부여잡고 가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람, 인물, 입장을 한 번도 내놓을 생각은 하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끔 보수우익의 권력욕은 이마저도 넘어서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정치의 신선한 모습을 보여준다, 예컨대 보수우익 정당이 윤여준, 남재희, 김종인 등을 중용한 것이 그렇다. 이번에도 윤석열이라는 외부의 대체재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모두 자유주의 정당과 보수우익에서 귀 기울이고, 양 쪽 문지방을 넘나들기 좋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결국 보수우익과 자유주의는, 진보 아닌 보수라는 점에서 오십보백보다. 그러나 과연 진보정치, 노동정치, 좌파정치는 어떠한가. 어쩌다 진보, 노동, 좌파로 분화되었고, 또 이 분화가 당연시될 정도로 ‘피아’ 구분이 생겼는가. 원칙적이라기보다는 폐쇄적이면서 개방성은 없는 진보/노동/좌파정치의 현주소가 아닌가 말이다.
2. 양당 대결
윤석열이 국힘 대선 후보로 당선되는 순간, 두 가지 아니 결국 한 가지 반응 혹은 예상이 나왔었다. 이재명이 졌다는 예상(혹은 희망사항) 말이다. 이 예측이 도처에서 나왔다. 조국사태이후 그 미움이 이재명까지 연장된, 허약한 자유주의자들은 윤석열을 지지하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윤석열이 대선 후보가 되는 날 “축배”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진보나 좌파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이들도 윤석열이 이재명을 이길 것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과연? 민주당이 아닌 국힘의 후보가 된 윤석열이 과연 홍준표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을까? 그리고 윤석열이 국힘 후보가 된다고 해서 이재명이 과연 불리하거나 심지어 패배할까?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게 예상하지 않는 편이다.
일단 대통령선거 본선에서 맞붙는다면, 이재명으로선 윤석열이 좀 더 겨루기 좋은 상대라고 본다. 홍준표는 사실 이재명과 비슷한 과이고, 정치 감각이 출중한 인물이며, 심지어 서민적이다. 이 모든 것이 이재명이 후보가 되면서 스스로 장점이라고 내세운 점이다. 겹친다. 그리고 홍준표는 이재명과 비슷한 과인데, 이재명보다 더 노회하고 말장난을 더 잘한다. 이재명이 지금 대통령 되기 위해 기를 쓰고 조심하고 있는 기질(temper)과 성질을 홍준표 같은 누군가가 계속 건드리면 이재명은 흔들릴 가능성 높다.
반면 윤석열은 입만 열면 설화를 일으킬 것이고, 미래 지향적인 입장보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복수혈전을 하듯이, 마치 검찰이 보복수사 하듯이 나오는 모습이 대통령감이라는 인상을 계속 갉아먹고 불식시킬 것이고, 결국에는 스스로 자충수를 두게 될 것이다. 윤석열을 통제할 이가 국힘에 없다는 것도 문제다. 해서 또 권력욕으로 가득 찬 국힘은 드디어 나이와 양당을 넘어서는 이력서로 윤석열을 제어 가능한 김종인 원톱 선거체제를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옳지! 이러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하지만 얼마나 달라질지.
3. ‘검찰이 칼자루 쥔 선거’
나는 여전히 2022년 3월 9일 대선에서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을 국힘의 윤석열과 동일한 수준으로, 그리고 이재명의 당선 가능성을 좀 더 높게 보고 있다 (이 글 초고를 국힘후보로 윤석열이 확정되고 난 후에 썼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 때 윤석열은 오차범위 밖 15%로 앞선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유는 앞서 말한 후보들 사이의 강약점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번 선거는 철저히 ‘검찰 선거’ 이기 때문이다. 당락보다 기가 막힌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대선이 온통 법조인들 천지라니. 대선 후보 하나는 변호사 출신, 또 하나는 검사 출신, 그리고 양자 다 검찰이 줄줄이 기소하고 있는 터이다. 그리고 그에 연루된 자들도 모두 변호사, 검사들이다. 아니 이게 뭔 나라냐? 이 질문을 하고 싶으면 지금이 질문할 때다. 이게 무슨 나라니? 검사가 변호사가 대선 후보이고, 검사가 대통령 후보를 선택하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이런 선거가 무슨 민주주의이니? 이게 무슨 민주공화국이니? 단지 윤석열만이 아니라 이재명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죄목의 혐의로 인해 검찰의 자장에서 벗어난 인물이 아니다.
정치의 사법화의 정점: 촛불시위
퇴진촛불이 한창일 때 나는 특별검사와, 검찰과,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힘을 빌려 박근혜를 퇴진시키는 집합행위가 박근혜 퇴진 이후 정치의 사법화와 법복귀족의 강화를 더욱 공고화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 결과가 19대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변호사 출신이고, 20대 대통령 후보도 윤석열이라는 검사이거나 이재명이라는 변호사 출신이다. 그리고 이제 대선후보의 당선여부를 좌우할 칼자루를 검찰이 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대체 촛불은 누구 좋으라고 들었던 것인가?
사람들이 윤석열이 국힘 후보가 되는 순간 이재명 낙선이라고 예상하는데 그 근거는 매우 감정적이고 즉자적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대장동 스캔들이 과연 이재명을 넘어뜨릴 수 있을까? 나는 한국의 주택정책, 아니 ‘부동산’이란 재테크 정책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것 자체가 철저히 이해관계 동맹이다. 이로써 이재명 낙선을 확정지으려면, 사람들이 대장동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못된 일로 여겨야하고, 이재명의 이중성에 대해서 분노해야한다. 과연 그럴까?
부동산개혁과 검찰 개혁 둘 다 불가능한 이유
먼저 대장동은 한국에서 수십 년간 부동산-아파트개발 정책의 산물이다. 주택공사라는 이름의 간판을 내걸고 집장사하는 국가, 개발만 하면 큰 이익을 보장받는 부동산개발에 나선 건설 회사들과 은행 금융 등 민간 자본이 조성해온 거대한 부동산 경제. 국가와 자본(시장)은 부동산 경기의 불을 끌 생각이 애초에 없다. 부동산 경제를 해체시킬 생각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지이익을 일부 누리는 원주민(토지 소유주)들, 개발되는 아파트에 입주하고자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잠재적 주택 구매자 혹은 분양 대기자들인 도시의 중산층들. 과연 그들이 지금까지 임대주택 100%의 공영 개발을 찬성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들이 과연 국가가 수용한 택지를 전면 공공개발만 하겠다면 지지할 것인가? 혹은 국가가 공공개발한 아파트들을 모두 국유화하고 시장 가격과 무관하게 개인들에게 임대아파트로 내놓는 정책을 편다면 과연 동의할까? 그리고 이미 주택을 보유한 이들은 또 어떻겠는가?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는 정책을 시행해 부동산 과열이 완화되고 해소되면, 자신의 아파트가격이 떨어지는 현 시세를 용납할까? 심지어 소규모 서민 아파트에 사는 이들 역시 지금도 20억짜리 아파트를 부러워하며 자신의 5억짜리, 3억짜리 아파트를 재개발하여 그런 ‘자산상승’을 원할 것이다.
이재명은 대장동 스캔들을 통해서 확실히 보여줬다. 그는 후보로서 지금 내놓는 공약과 다르게 실천할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대통령이 된 이재명의 부동산 정책은 지금의 대장동 사태와 판박일 것이다. 이재명이 자본을 시장을 넘어설 진보적 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흔한 현실론과 경제라는 핑계거리로 말이다. 검찰은 이에 맞춰 적당히 끝낼 것이다.
다른 한편 윤석열의 경우 고발장 사주라는 혐의에 대한 검찰 선거는 어떻게 될까? 손 모라는 검사와 김웅이라는 검사출신 의원으로 입막음이 될지, 그것이 성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검찰에게 유명한 ‘직업윤리’가 있다. ‘검사 카르텔’이라고. 아무리 미워도, 입장이 갈라지고 이해까지 달라진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야말로 ‘검사출신’ 대통령이 나올법한 상황인데, 검찰이 과연 제대로 칼을 뽑고 제대로 수사할까? 설사 그게 문재인 정부 편에서 충성하고 있는 수뇌부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윤석열은 문재인 대통령이 뽑아 올린 검사 아닌가 말이다. 이는 허약하고 정체불명의 공수처를 만들고 ‘검찰개혁’입네 하는 이 정부와 추미애 장관의 탓도 없지 않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번 대선은 검찰이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최초의 대선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군부독재 때 ‘권력의 주구’였던 검찰이, 보수 양당 세력이 너나없이 ‘부려보겠다’고 개혁하지 않고 두더니, 스스로 잡아먹힐 선거가 되고 말았다.
4. 진보 후보 단일화냐 좌파 후보 정립이냐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결국 한국 정당정치는 다당제이지만 언제나 선거는, 그리고 특히 대선은 보수 양당이 겨루는 형상으로 전개된다. 이것이 바로 87년 6월항쟁과 한국의 민주화이행이 부활시킨 ‘48년체제’라고 불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만약 1987년에 독자후보 백기완이 완주했다면, 그리고 이후 권영길, 심상정까지 완주했다면 한국의 소위 진보/좌파정당정치는 어땠을까? 그리고 그다음으로 진보정당을 이끌었던 노회찬 심상정의 연정 정치 구상이 좌파연합의 구상을 계속 펼쳤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연정 구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민주당 일부를 끌어들여 진보정당을 만든 것도 그렇고, 대통령 출마를 하면서 중도에 그만 둔 것도 그렇고, 모두 진보, 나아가 좌파정당정치에 치명상을 입혔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 살아남아서 유일 진보정당으로, 제3지대 정당의 ‘프리미엄’을 누린다는 정의당은 여전히 그 연합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심상정 후보는 얼마 전에 “이제 단일화의 역사적 시효가 다 됐다”고 말했다. 역사적 시효? 정말 웃기는 표현이다. 단일화가 이전에는 역사적 시효성이라도 있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제”라니. 탄력근로제 연기기한 연장 등 노동법을 개악할 때도 가만히 있으면서 그렇게 만능의 비책인양 움켜쥐었던 비례대표제 선거개혁이 민주당의 배신적인 위성정당 놀이로 물 건너가면서, 더 이상 불가능해진 것 덕분이 아니고? 근데도 제대로 된 비판 없이 그냥 넘어간다. 마치 언제나 그랬듯이.
그러다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정의당 대선 후보인 심상정 의원의 선거복안이 나왔다. 하나는 안철수, 김동연까지 포함하는 ‘제3지대’ 연정 제안이다. 물론 대통령이 돼야 연정을 하지. 근데 그보다는 이런 의구심이 든다. 어쩌다 소위 진보정치는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이건 후보 단일화가 ‘연정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해서 버전만 바꾸고 나오는 것인가. 그런데 애초에 ‘제3지대’라는 탈 이념적이고 중립적인 개념이란 무엇인가? 진보정치를 제대로 정립하자고 해도 자기 색이 분명할까 말까한 상황에서 다시 물타기의 ‘3지대론’이 가당키나 할까.
모 학생 좌파단체가 포플리스트 이재명보다 자유민주주의 윤석열을 지지하는 전략이 좌파의 현재 전략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이구동성으로 비판을 퍼부으면서, 심상정의 몰 이념적인 ‘제3지대’ 제안은 왜 그냥 넘어갈까? 왜 여전히 대체로 침묵일까?
맞다. 이미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정의당은 ‘민중경선 단일화’ 테이블에 참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정의당 내 ‘좌파’는 더욱 모호한 태도다. 그들은 사사건건 당내 비판은 하는데, 결론은 언제나 우리 모두 버킹검일세이다. 정의당이라는 프리미엄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정말 정의당 안에서 좌우는 모두 용광로에서 녹임을 당하는 건가.
정의당의 대선후보처럼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한, 진보정치의 앞날은 요원하다. 즉 진보정치가 제도권 정당정치에서 ‘대안’으로 보일 리 없다. 무엇보다 진보정치를 ‘볼모’처럼 두고 있는 자유주의 정치로부터의 독자화도 이룰 수가 없다.
하지만 정의당은 여전히 이런 후보와 함께 민주노총의 ‘민중경선후보’ 단일화 논의에 참가하고 있다. 즉 두 손에 떡 들고 있는 형국이다. 왼손은 녹색당부터 진보당, 변혁당까지 함께 하고, 오른손으로는 안철수와 김동연의 손을 잡고 있다. 아, 그리고 중간에 또 하나의 떡이 있더라. 기본소득당 등과 함께 하는 중도좌파의 테이블이 있다. 맨 앞은 좌파 테이블이라고 보는지, ‘불평등’을 화두로 잡고, 그 다음은 우파 테이블이라고 보는지 ‘제3지대’라는 모호한 화두를 두고, 그리고 맨 마지막의 중도파들과는 ‘기후위기’를 얘기한다.
[출처: 노동과 세계] |
참으로 현란한 ‘연대연합정치’ 기술인데 의문이다. 왜 정의당의 연합정치는 매번 죽 쑤고, 나무에서 고기 찾기이며,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기가 될까? 그 당 지지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볼 일이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말이다. 좌파가 문제다. 저 당이 이렇게 3가지 카드를 쥐고 이쪽저쪽에 다 머리 내밀고 있는데도 저 넓은 스펙트럼을 보면서도, 이 당은 여전히 ‘민중경선’에 함께 할 세력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또 무슨 생각일까? 이 문제가 벌어지는 이유는 그 지향과 이념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민중경선’은 왜 정확히 이념을 밝히지 않을까? 민중경선이든 노동자민중후보든, 그것 자체는 대선의 플랫폼이거나 강령이거나 심지어 이념일 수는 없다. 노동자가 민중이 정치 이념인가? 민중후보라는 말은, 이념을 밝히지 못했을 때, 국가보안법으로 누구나 잡혀갔을 때, 좌파가 힘도 조직도 없었을 때 회피적으로 썼던 말이다. 하지만 그 말들은 이미 효용을 다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후보가 없어서, 민중후보가 없어서, 지금 진보정치가 갈지자이고, 자유주의 정치에서 탈출하거나 독립을 못하고 있는 것인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투표하면 좌파 후보가 바로되는건가?
지금 제도정치와 대선에서 부재한 것은 무엇인가? 질문은 정확히. 그렇게 할 때 답도 정확히 나온다. 하지만 먼저 어정쩡한 진보정치가 진보의 미래, 아니 계급정치와 좌파정치의 미래를 좀먹는다. 그 말도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