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대통령을 문재인 ‘씨’라 부르면 안 됩니까? 2013년에 박근혜 대통령이라 안 부르고 ‘박근혜 씨’라 부른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정청래 의원은 새누리당과 여당 성향의 언론, 일베 같은 극우 사이트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대통령에게 버릇없이 ‘박근혜 씨’라고 부르느냐고.
▲ <한겨레21> 표지 캡처 |
한겨레21이 대선 직후인 14일 표지사진으로 문재인 씨의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그러자 누리꾼들은 사진 속 얼굴이 어둡다며 수백 개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보기 좋은 사진은 놔두고 악의적으로 좋아 보이지 않은 사진을 골라 표지사진으로 실었다는 겁니다. 사진이야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것이라 한겨레21 편집장이 나서서 해명을 했습니다.
한겨레21 편집장의 해명에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전 편집장이 자기 페이스북에 논란의 글 ‘덤벼라 문빠들’을 남겨 오히려 비난이 더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또 미디어오늘 기자는 이런 일을 빗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개떼’ 운운하자 독자들의 분노가 폭발했지요. 그런데, 기자들의 처신도 잘못됐지만, 이 문제의 원인제공을 과연 기자들이 한 것일까요?
▲ <한겨레21> 안수찬 전 편집장 페이스북 캡처 |
이런 비슷한 일들이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트위터에 대통령의 취임 3일째 동정을 전하면서 ‘밥도 혼자 퍼서 먹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 대부분 문재인 씨 지지자들일 텐데요, ‘어떻게 대통령에게 버릇없이 얘기하냐’며 들고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퍼서 먹다’, ‘김정숙 씨’ 같은 말이 국어 문법상 존댓말인지 반말인지를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한겨레21 사진이 근엄함을 보여주는 것인지, 일부러 어두운 사진을 실어 대통령을 디스하려는 의도였는지를 검증해 볼 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논란의 맥락입니다.
이 논란들은 (기자들의 무책임한 발언 때문에 논란이 더 커지긴 했지만) 새 정부에 대한 악의적인 비판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왜 대통령과 여사님을 그렇게 부르고 그런 사진을 싣는가’하는 기자와 언론의 ‘싸가지’ 없음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논란은 2013년 ‘박근혜 씨’ 논란의 재판과 같습니다. 다만, 그 대상과 주체가 뒤바뀌어 있을 뿐이지만.
하지만 최근의 사태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 <경향신문> 트위터 캡처 |
언론과 민중운동에 대한 억압입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정리해고 됐다는 이유로 일터에서 쫓겨났던 노동자들이 한 달여 동안 광고탑 위에 올라가 단식 농성을 했습니다. 단식과 농성을 풀고 광고탑 아래로 내려와 한 기자회견을 전한 참세상 기사에 대해, 이제 막 들어선 새 정부를 비판한다며 ‘입진보는 입을 닫으라’는 댓글이 수백 개가 달렸습니다.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자며 6월 30일 사회적 총파업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홈페이지 기사와 노조파괴 사업장으로 알려진 갑을오토텍 사측을 법률 대리한 박형철 변호사를 청와대 반부패 비서관으로 지명한 것을 비판하는 글에도 “박근혜 때 그러지 답 없다, 귀족노조들”, “비정규직 차별하는 노조”, “정부 들어선 지 얼마나 됐다고 까기부터 한다”는 댓글들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 기간제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기간을 연장하는 기간제법을 참여정부가 개악했을 2006년 당시, 한겨레신문 등 이른바 개혁언론들이 앞장서서 기간제법 개악은 한국경제가 살기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비정규직법 개악에 동조하고 나선 사실을 기억합니다. 한미FTA에 대해서도 유사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회에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참세상 같은 민중언론 외에는 더욱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 비정규직 법은 개악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커져갔습니다.
개혁언론도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지지 세력과 대상일지라도 비판할 것은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3기 민주정부의 성공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심각해 보이는 것은 문제가 된 여러 언론사에서 해명을 넘어서 사과 성명과 입장을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집권 초기라고, 이렇게 간단한 비판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새 정부의 정책 오류와 문제를 어느 때에 가서 비판할 수 있을까요? 권력에 동조하는 비판, 권력화 된 비난에 언론이 스스로 몸을 낮출 때야 말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가장 크게 위협받는 때입니다.
▲ 해당 논란에 대한 <한겨레신문사> 사과문(좌), <미디어오늘> 사과문(우) |
의심하고 있습니다
새 정부는 3기 민주정부라고 했습니다. 10년 만에 정권교체를 했고, 당선과 동시에 인수위도 없이 바로 임기를 시작한 새 정부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잇는다는 뜻이겠지요. 이는 앞선 정부의 공은 물론 과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새 정부와 문재인 씨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인천공항을 돌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 일자리 수십 만 개를 만들겠다, 호언을 하고 공언 하지만, 정말 약속을 지킬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와는 달리 3기 민주정부가 과연 노동자들을 위해 삶을 바꿔낼 개혁을 해 낼 수 있을지.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작과 동시에 손배가압류, 노조탄압으로 절망에 빠졌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던졌을 때, 당시 노 대통령은 “분신으로 투쟁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노동자들의 아픔을 풀어주기는커녕 이들을 질책하고 나섰습니다. 그 때의 손배가압류 문제는 10여 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노동자들의 심장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앞선 민주정부 1기와 2기에서 벌어진 비정규직 양산법, 정리해고법 어느 하나 제대로 얘기조차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씨도 박형철 반부패 비서관처럼, 변호사 시절 노동자들의 해고와 노조탄압으로 유명한 풍산의 사측 변호사를 맡았습니다. 당시 31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됐습니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다시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고, 엄청난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문재인 씨의 해명을 아직까지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여론조사를 보니, 문재인 정부가 삶을 바꾸겠냐는 질문에 20~40대 여성의 3분의 2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주로 젊은 층이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많습니다. 정말로 새 정부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 정부에 실망하고 더 이상 삶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여긴다면 오히려 더 보수화 되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보좌파 진영이 더 열심히 해야겠지만, 새 정부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비판과 투쟁을 통해서 새 정부의 성공을 기원해야 할 걸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야 임기 말에 이 정부가 노동자와 서민, 민중을 위해 국민들의 삶을 좋게 바꿨구나 하는 칭찬을 들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