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이 자본에 넘긴 노동자 죽음…국가는 유령?

[워커스 이슈①] 공공 공사 사망만인율, 건설업 평균보다 높아

워커스 58호 이슈 [정부의 의뢰, 자본의 살인] 순서
1. 권한의 분리, 세 명의 죽음, 책임의 소멸
2. 공공이 자본에 넘긴 노동자 죽음…국가는 유령?
3. 반복되는 ‘공공 공사’ 사망 사고…책임은 누가?

공공 사업이 자본으로 넘어간 곳에서 노동자의 죽음이 되풀이되고 있다. 7월 31일 서울시가 발주한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노동자 3명이 사망한 데 이어, 지난 18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공사현장에서도 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김용균 사망 사건 이후 ‘죽음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싸움이 전국으로 퍼졌지만, 노동자 죽음은 ‘발주 사업’이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계속되고 있다. 《워커스》는 정부가 주문하고 개입한 공사, 사업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 사고를 ‘발주처 책임’ 문제를 중심으로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국방부와 한진중공업

고 김종길 씨는 지난해 8월 12일 공군 17비행전투단 청주공항 군전용 활주로 개선 공사에서 사망했다. 국방부가 발주하고 한진중공업이 수주한 사업이었다. 8월 1일부터 이날까지 최고 기온이 34~38도였다. 1994년 이후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되던 때다. 이날 오전 6시 40분경 김 씨는 홀로 작업을 시작했다. 김 씨가 사망한 곳은 주요 작업장에서 약 3km 떨어진 곳이었다. 이곳에서 안전 요원도 없이 혼자 작업을 하니 안전사고에 곧바로 대응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폭염에 굴삭기 에어컨은 고장 난 상태였는데도 회사는 작업을 강행했다.

현장 소장이 오전 9시 53분 쓰러진 김 씨를 발견했다. 그런 김 씨는 7월 19일부터 사망 시점까지 25일 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다. 당시 건설기계 작업일지에 따르면 하루 9시간 노동을 초과한 기록들이 즐비하다. 김 씨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3시간에 육박했다. 과로사, 온열 질환이 충분히 예견된 정황인데도 경찰은 사고를 ‘실족사’로 봤다. 당시 건설노조는 사고를 ‘폭염 속 과로에 의한 실족사’로 규정한 바 있다. 노조는 국방부를 규탄하는 천막 농성을 국방부 앞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김 씨의 동료 A씨는 당시 국방부의 태도가 무책임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발주하고 대기업이 수주한 공사였는데 국방부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리가 책임질 소지가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A씨의 동료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현장은 70%가 공공 공사다. 대부분 공공 공사가 최저입찰제로 진행된다. 원가 절감을 목적 으로 진행하는 사업에 안전요원 배치 등 노동자 안전이 미흡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A씨는 “평소 건장하던 동료가 그렇게 갔다. 나는 당시 현장에 안전 관리 체계가 없었고, 쓰러진 뒤 1시간 넘게 방치한 것은 명백한 살인 행위라고 주장했다. 최저입찰제로 진행되는 공공 공사에서 개인 사업자(특수고용노동자)인 기계 노동자들은 최말단 이다. 지금도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방부의 해당 사업 입찰안내서를 보면, ‘안전관리 업무의 책임 한계’ 조항에 “안전관리 미흡으로 인한 안전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은 계약상대자에 있고, 손해 발생에 대해서는 계약상대자 부담으로 처리해야 하며, 안전 시공 계획서의 심의 및 안전 점검을 이유로 그 책임이 소멸되거나 전가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발주자가 계약자에 안전 관리 지침은 내리지만, 책임은 사실상 질 수 없다는 뜻이다.

경북도와 GS건설

지난 3월 18일 경북 환경에너지종합타운 공사 현장에서 데크플레이트가 붕괴해 하청 노동자 3명이 추락사했다. 1월 25일 한국환경공단이 해당 작업장을 점검한 지 51일 만에 일어난 대형 사고였다. 노동자 3명은 24m 위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딛고 서 있던 데크플레이트는 목재가 떠받치고 있었다. 목재가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철근 콘크리트 보에서 이탈해 무너진 것이다. 노동자들은 안전모는 쓰고 있었으나 추락 방지 와이어를 연결하지는 않았다. 추락방지망도 없었다. 건설 현장은 10m마다 추락방지망을 설치하게 돼 있다. 분명한 인재였다.

이 공사는 경북도가 11개 시·군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고 에너지 자원을 만들기 위해 2013년에 시작한 사업이었다. 총 사업비가 2097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였다. GS건설 등이 구성한 컨소시엄이 경북도에 이 사업을 시행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경북도가 민간투자 사업(BTL) 제안서를 접수하고, 공공투자관리센터에 검토를 의뢰, 민간투자심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사업을 공고했다. 컨소시엄은 경북그린에너지센터라는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고 BTL 사업을 진행했다.

공공 영역이지만 BTL 사업이라는 명분 아래 경북도는 사고의 책임을 면했다. 대형 참사였기에 경북도, 안동시, 고용노동부 안동지청, GS건설 등이 사고대책본부를 꾸리긴 했다. 하지만 활동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경북도청 관계자는 “조사 결과 보고서는 따로 없다. 우리는 공사 설계도면도 갖고 있지 않다. 사업을 도에서 승인한 것도 아니고, 주무관청으로서 사업 공고를 냈을 뿐”이라고 했다. 작업 안전 매뉴얼이 있느냐는 질문엔 “시시콜콜한 노동자 안전 수칙이나 매뉴얼은 알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방위사업청과 한화

지난 2월 14일 한화㈜ 대전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노동자 3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지난해 5월 노동자 5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발 사고 이후, 바로 옆 공정에서 또 다른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한화에 일감을 준 정부기관은 방위사업청이다. 한화는 방위사업청과의 사업 계약에 따라 과거부터 무기 제조 사업을 수주해 왔다. 2010년 이후 한화와 방위사업청이 체결한 계약 금액 규모는 72.3조 원, 계약 건수는 1,323 건에 달한다. 현재까지도 한화는 방산업체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사고 당시 유족은 “국가가 관여한 업체라서 안전을 믿었던 자신이 원망스럽다”며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책임을 묻기도 했다.

사고 희생자 김 모 씨의 외삼촌은 《워커스》와의 통화에서 “한화는 방위사업청의 오더, 물량을 받아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면 방사청이 한화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라며 “작년 사고 이후 대전공장 노동자들은 작업위험요인 발굴 보고서를 여러 차례 작성했다. 1인당 많게는 열 몇 건씩 올렸다. 그런데 한화 옥경석 (화약방산부문) 사장은 이걸 보지 못했다고 우리에게 밝혔다. 그럼 방사청이 이를 확인하고 조처했어야 한다. 주문을 내린 방사청이 관리·감독을 하지 않으니 사고가 반복된 것이다. 오히려 국가 발주 사업이 안전에 더 소홀한 것 같다”고 밝혔다.

방위사업청은 《워커스》의 정보공개 청구에 최근 5년간 한화와 체결한 계약 내용 중 노동자 안전과 관련된 조항은 없다고 답했다.

발주하고 ‘재해 통계’도 안 내는 정부

지난해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발주청은 한국전력공사 (12명)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9명), 한국도로공사 (8명), 한국농어촌공사(5명), 서울특별시(4명)가 그 뒤를 이었다. 이중《워커스》는 서울시의 발주공사에서 일어난 사망 재해 통계 자료가 있는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측에 7일 정보공개 청구했으나, 노동청 관계자가 ‘일일이 사례를 확인해야 한다’, ‘정리된 것은 없다’고 답변해 왔다.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에서 사망한 노동자가 몇 명인지 확인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공공기관 재해자 수는 2015년 1,557명(71명 사망), 2016년 1,508명(53명 사망), 2017년 1,360명(59명 사망), 2018년 1월~9월 1,165명(37명 사망)으로 나타났다. 전체 재해자는 감소하는 추세지만 사망자 수만큼은 줄지 않았다. 또 사고사망자의 85.2%는 발주 공사에서 발생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공공 공사의 특징은 엮인 기관이 많다는 점”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공사, 사업 구조가 더욱 복잡하다. 권한과 역할이 나뉘어 있으니 책임을 해태한다. 연장 선상에서 컨트롤타워가 세워지지 않는 문제도 발생한다. 발주자에 공사 책임도 있지만, 노동 안전을 위해 관제의 책임도 더욱 중요하게 얘기할 때”라고 말했다. [워커스 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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