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최저생계비, 아무것도 보장 못해"

2013민생보위, 수급가구 가계부조사 결과발표

주거비 부담 등으로 절반 가량이 적자에 허덕

  2013민생보위 주최로 22일 늦은 2시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수급가구 가계부 조사 결과발표 및 올바른 기초생활보장제도 민생보위 요구안 마련 토론회가 열렸다. [출처: 비마이너]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책정한 현금급여로 생활하는 가구의 실제 가계실태를 살펴보고, 이 제도의 취지대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요구안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기초법 개악 저지!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2013민중생활보장위원회(2013민생보위)는 22일 늦은 2시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수급가구 가계부조사 결과발표 및 올바른 기초생활보장제도 요구안 마련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2013민생보위는 지난 7월 15일부터 8월 14일까지 22개 수급가구(1인가구 14개, 2인가구 4개, 3,4인가구 각 1개, 5인가구 2개)를 대상으로 한 달 간의 수입과 지출을 기록한 가계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수급가구는 최저생계비에서 다른 법으로 지원하는 비용을 뺀 금액을 현금급여로 받는다. 따라서 올해 최저생계비는 57만 2168원(1인 가구)이지만, 수급가구는 월 최대 46만 8453원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2013민생보위의 이번 분석 결과를 보면 전체 22개 가구 중 절반이 넘는 12개 가구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또한 최저생계비에서 주거비 비율은 15.8%이지만, 가구 대부분은 이 비율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대도시 월세 가구는 지출 중 30% 이상을 주거비로 부담하고 있었다.

이처럼 높은 주거비 부담은 식료품비에 대한 낮은 지출로 이어졌다. 최저생계비에서 식료비품비 비율은 37.6%였지만 이 비율을 넘는 가구는 6개 가구에 불과했고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구가 태반이었다. 즉 높은 집세를 내느라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비 부담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생계비에서 교육비 비율은 4.5%인데 자녀가 학령기인 5개 가구의 지출내역을 살펴보니 1개 가구를 제외하고 2~3배가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었다.

  이날 토론회장에서 전시된 최저생계비 품목들 [출처: 비마이너]

가계부 분석 결과를 발표한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김선미 간사는 "기초생활보장제도상의 최저생계비 현금급여의 수준이 매우 낮아 가계부 작성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가구는 한 달 생활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응답했다"라면서 "특히 주거비와 식비를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비목에 대한 지출이 거의 불가능해 저축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병원비가 많이 나올까 봐 병원에 가지 못하거나 채무를 지게 되는 점이 어려운 점"이라고 설명했다.

김 간사는 "결국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책정된 현금급여로 생활하는 수급가구는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최저선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라면서 "따라서 필요한 욕구에 대한 적정한 급여가 확보되어야 하며, 그를 전제로 한 최저생계비의 위상 정립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수급당사자들의 사례 및 요구 발표가 이어졌다. 동자동사랑방 김창현 대표는 "쪽방 월세는 20만 원 내외인데 현재 주거비로 단지 9만 원이 나온다"라면서 "따라서 주거비를 내고 나면 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주거비를 현실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홈리스행동 정승문 활동가는 "이번 가계부 작성에 참여했는데 그 과정에서 최저생계비는 정말 죽지 않을 정도로만 주는 바닥 생계비라는 것을 절감했다"라면서 "나의 경우에도 한 달 방세로만 24만 원을 내야 하고 여기에 교통비와 통신비 등을 쓰고 나면 짜장면 한 그릇 사 먹는 것, 옷 한 벌 사는 것도 사치가 된다"라고 토로했다.

정 활동가는 "그렇다고 24만 원을 내는 방이 좋은 것도 아니다. 바퀴벌레가 우글우글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흘러내려 찜질방에 갈 필요가 없다"라고 꼬집고 "주거비를 현실화하든지 저렴한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달라"라고 요구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어머니, 아내, 자식 두 명과 함께 살고 있는 이현수(신장장애 2급) 씨는 "겨울이면 난방비가 30~40만 원이 나오고 아이들 학원비를 내고 나면 수급비와 장애인연금을 합해 받는 백만 원 정도의 수급비로 생활하기가 너무 어렵다"라면서 "과연 5인 가구가 백만 원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질타했다.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활동가는 "현재 수급비로 38만 원, 장애인연금으로 20만 원을 받고 있는데 병원에 자주 가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의료비에 대한 부담이 크다"라면서 "또한 내가 직접 음식을 하기 어려우므로 반찬도 사서 먹어야 해 식료품비 지출이 많을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박 활동가는 "더구나 전동휠체어가 한 번 고장이라도 나면 수리비도 많이 든다. 최근 전동휠체어가 고장이 났는데 수리비용이 70만 원이라는 견적을 받았다"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이 체험홈과 자립생활가정에서 최대 7년간 거주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지역사회에서 거주지를 확보하기 위한 돈을 저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구나 장애인은 편의시설과 접근성을 고려해 집을 구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박 활동가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밥만 먹고 살 수 없다. 장애인 역시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며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고, 최소한 내가 존엄한 사람이라고 느끼며 살아야 한다"라면서 "그러나 지금의 최저생계비는 결코 이러한 생활을 보장해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2013민생보위 요구안을 발표하는 빈곤사회연대 최예륜 활동가 [출처: 비마이너]

이어 빈곤사회연대 최예륜 활동가가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2013민생보위 요구안을 발표했다.

최 활동가는 "부양의무제 폐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통한 사각지대 해소 없이 개별급여를 도입하는 것은 권리를 쪼개는 것"이라면서 "개편방안 내용으로 검토되는 중위소득 30% 수준의 기준선은 현행 제도보다 후퇴하는 것이기에 반대한다"라고 밝혔다.

최 활동가는 "근로능력, 연령, 성별, 장애, 질병 유무 등 가구 특성에 따른 차별적 조치가 아니라 맞춤형 지원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라면서 "진정한 맞춤형 급여체계는 수급당사자들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2013민생보위는 세부 요구안으로는 △상대빈곤선 도입! 최저생계비 현실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비현실적인 재산과 소득 기준 개선 △조건부 수급조항 폐지, 일하는 수급자에 대한 실질적인 자활지원체계 마련 △수급자 권리 보장 강화 △종합적 빈곤정책으로서 기초생활보장제도 강화 등 6가지를 제시했다.

이어 질의응답 시간에 참가자들은 "현재 연 5만 원씩 주는 문화바우처를 10만 원씩 주면 문화생활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에 최저생계비가 조금 오른다고 하지만 겨울에 난방을 할 정도는 아닐 것 같다", "생활비와 주거비가 부족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교통비도 큰 부담이다. 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액을 교통카드로 지급해주면 좋겠다"라고 각자의 의견을 밝혔다.

한편, 2013민생보위는 23일 늦은 2시부터 종로 보신각에서 수급권자 하루잔치를 연다. 늦은 2시부터 각종 장터와 수급, 건강, 파산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며 5시에는 만민공동회, 6시에는 대동한마당을 차례로 진행할 예정이다. (기사제휴=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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