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갈등? 최저임금 ‘도적질’만 멈춰도 없어진다

[최저임금] 최저임금 1만 원...일자리도 창출하고 저임금도 없애고

# 대학 청소노동자 윤명순(68) 씨. 12년 전 대학에서 처음 빗자루를 잡은 순간부터 그녀는 최저임금 삶이 돼 버렸다. 5년 전 노조를 결성해 매년 임금인상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보다 970원 가량 높은 시급으로는 팍팍한 삶을 변화시킬 수 없었다. 윤 씨는 남편을 부양해야 했다. 윤 씨가 벌어온 140만 원 가량의 월급은 부부의 한 달 생활비다. ‘용돈 연금’으로 전락한 국민연금은 매달 17만 원이 나왔다. 월 17만원에 노부부의 노후를 맡길 수는 없었다. 자연스레 부부의 노후는 윤 씨가 벌어오는 최저임금에 저당 잡혔다.

# 대학생 조 모(21)씨는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다. 한 학기 300만 원이 넘는 등록금과 생활비까지 벌어야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멈출 수 없다. 지난해에는 돈을 벌기위해 휴학을 선택하기도 했다. 졸업은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요새는 수업을 병행하며 일주일에 사흘간 빵집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11개월 동안 최저임금을 받아왔지만, 6월 들어 시급이 5,700원으로 올랐다. 월급을 받으면 30만원은 등록금으로 저축하고, 25만원은 생활비로 쓴다. 한 학기 100만 원의 국가장학금을 받지만, 나머지 250만 원은 고스란히 조 씨가 감당해야 한다. 6개월간 쉬지 않고 모아봐야 한 학기 등록금도 되지 않는다. 그녀에게 취업준비보다 중요한 것은 당장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어떻게 충당하느냐다.


최저임금 ‘도적질’ 멈추면 세대갈등 없어질 걸?

최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요구를 ‘세대 간 도적질’로 비유해 논란을 일으켰다. 대통령과 정부도 일자리를 놓고 세대 간 싸움을 부추겼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조금 양보해서라도 아들딸에게 희망을 주는 소명의식”이라고 강조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정년을 연장해 1~2년 더 다니고 월급 더 받는 게 중요한가, 아니면 아들딸이 취직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라고 물으며 싸움의 불씨를 지폈다. ‘청년실업’을 볼모로 임금피크제, 저성과자 해고제도 등을 골자로 한 노동시장 구조개악이 추진됐고, ‘노후 연금’은 세대 이기주의로 치부됐다.

과연 정부의 말대로 일터에서 밀려난 기성세대가 용돈 연금과 최저임금을 받으며 조악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청년세대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인 걸까? 지난해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 수혜자는 약 121만 명으로 집계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임금’의 끝인 최저임금 영향권에 가장 밀접한 연령대는 청년층과 노년층이었다. 최저임금 영향률은 34세 이하 청년세대(19.2%)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고, 55세 이상 고령세대(12.2%)가 그 뒤를 이었다. 심지어 청년 및 노년층은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8월 기준 최저임금 미달자는 227만 명이다. 연령별 최저임금 미달자 비율은 청년이 28.1%, 고령자가 29.5%로 가장 높았다. 세대 간 밥그릇 싸움은커녕 청년과 노년층이 나란히 사회적 약자로 내몰려 있는 셈이다.

[출처: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그렇다면 정부의 주장대로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는 기성세대의 전유물이 됐을까? 실제로 정규직 청년층의 비율은 나날이 감소 추세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정규직 중 20대 청년 비율은 27.1%였지만, 지난해 8월에는 17.5%까지 하락했다. 지난 14년간 정규직 중 청년 비율이 10%가량 감소한 셈이다. 문제는 장년층도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고용정보원이 올해 1월 발표한 <고용동향 브리프>에 따르면, 비정규직 중 50세~54세 장년층의 비율을 2007년 9.3%에서 2014년 10.9%로 늘어났다. 비정규직의 55세~54세의 비율도 2007년 대비 2.6%가 상승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도 늘어나고 있어 불안한 일자리와 낮은 임금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비정규직 규모에서 각 연령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반적으로 과거에 비해 고연령 계층으로 이동되고 있다”며 “55세 이상의 장년층이 비정규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년 일관되게 증가하고 있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8월 기준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낮은 세대는 30대(30.5%)다. 20대 중 비정규직은 47.2%, 40대는 38.8%, 50대는 49.5%, 60대는 79.7%에 달한다. 20대에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은 청년들이 비정규직으로 고착화되고, 30대 정규직도 40대에 들어서는 비정규직 일자리로 내몰리는 추세다.

최저임금 1만 원...일자리도 창출하고 저임금도 없애고

질 나쁜 비정규직 일자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저임금으로 또 한 번 운다.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재계는 매번 ‘일자리’ 문제를 들먹인다. 최저임금 제도가 최저생계 보장이라는 정책 목표를 이미 달성했고, 최저임금이 인상될 경우 기업의 대량해고 및 도산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재계의 이야기를 믿지 못한다. 아르바이트 청년 노동자 조 모 씨는 “이제 더 이상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슬로건을 믿지 않는다. 매번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 임금 삭감을 가장 만만한 노동유연화 방식으로 활용해 왔다”며 “중소영세 상인들의 도산 문제는 최저임금 때문이 아니다. 너무 높은 임대료와 프랜차이즈업체의 과도한 로얄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노동계는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저임금 문제와 일자리 창출을 동시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실장은 4일 열린 ‘최저임금노동자 집담회’에서 “최저임금이 고용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통계적으로 의미 없는 수치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잔업, 특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청년고용이 이뤄질 수 있다. 기존 노동자들에게 수당을 붙여 주는 것보다는 신규 입사자를 고용하는 것이 회사 측도 이득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청년고용 확대를 동시에 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집담회에 참여한 서울고속도로 톨게이트 노동자 김옥주(46) 씨는 아직 미성년자인 두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다.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고작 200원이 많다. 김 씨는 “월급이 적어 연장근로를 해야 한다. 매일 16시간 이상 밤낮으로 일한다. 최저임금이 1만 원만 되도 연장근로를 할 필요가 없다. 이 자리에 노동자들을 고용하면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더라도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헛구호가 되고 만다. 이미 많은 노동자가 사업주의 꼼수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학교당직기사 오한성(75) 씨는 매일 오후 4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 30분까지 16시간의 노동을 한다. 하지만 학교 측은 그 중 5.5시간에 해당하는 임금만을 지급한다. 오 씨는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을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해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택시기사 출신인 이삼형(53) 씨 역시 “2010년 7월 1일부터 택시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법이 적용되면서 사업주가 소정근로시간을 4시간으로까지 줄여버렸다. 포항의 경우 소정근로시간이 2시간이다. 하루 13만 원의 사납금은 변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옥주 씨의 경우 임금은 올랐지만 임금총액은 오르지 않았다. 사업주가 임금이 오른 만큼 수당을 삭감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는 탓이다. 김 씨는 “해마다 월급이 오르지만, 그만큼 수당에서 제외한다. 통장으로 입금되는 임금 총액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조 씨는 지난해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급 5천 원을 받았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이다. 게다가 부당해고까지 당했다. 다행히 조 씨는 알바노조를 통해 미지급임금을 되찾았다. 하지만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를 처벌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렵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적발한 최저임금법 위반 건수는 6,414건에 달한다. 하지만 그 중 사업주가 사법처리된 사례는 16건(0.25%)에 불과하다. 과태료 처분을 받은 경우도 2건(0.03%)에 그쳤다. 전체 적발사례의 99.7%가 단순 시정지시로 끝난다.

한편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시민사회진영은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요구하며 대정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4일 제3차 전원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최저임금 심의에 들어갔다. 위원회는 매주 목요일 전원회의를 열고 이달 29일까지 최종 인상안을 의결한다는 계획이다. 아르바이트 노동자 조 씨는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에 대한 기대가 크다. 1만 원으로 인상되면 학생식당에서 백반을 마음껏 먹고 싶다. 한 달에 한 번 영화도 꼬박꼬박 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옥주 씨 역시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면 조금이나마 형편이 펴질 것 같다”며 “그때가 되면 (가계부에) 아이들 용돈 명목을 넣어 다달이 아이들에게 용돈을 줘 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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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임금 쟁취!

    임금투쟁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면 세상을 바꿀 무기는 또 어떻게 만들고 또 살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