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세화의 파리통신 (1) >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지은이
르노자동차 노동자들의 ‘감금죄’
새천년의 동이 튼 지 며칠 뒤에 프랑스의 르망시(市)에서 특이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자동차 경주로 유명한 까닭인지 한국에서도 ‘르망’이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생산했는데 이 르망시엔 르노 자동차 공장이 있다. 한 때엔 1만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일했으나 자동화시스템을 확대하고 구조조정을 하여 지금은 3천명으로 줄었다. 바로 이 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 마흔 여섯명이 르망 법정의 피고석에 섰던 것이다. 그들 중 한 명만 ‘프랑스 민주노조(CFDT)’ 소속 조합원이고 나머지 마흔 다섯명은 모두 ‘노동총동맹(CGT)’ 소속이었다. 그들에게 걸린 죄목은 감금죄. 최대한 5년의 징역형과 5만 프랑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무거운 죄목이다. 법정에서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들은 한 사람씩 일어나 생년월일과 주소를 말했다. 그들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동료들에게 ‘다다’로 불리는 다니엘은 이 공장에서 30년 동안 일했다. 지금 나이 51살. 그런데 작년 11월에 회사는 그에게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이유는 자주 결근했다는 것. 그는 알콜 중독자였다. 동료들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부당하다!(injuste!)’고 외치며 중역실로 몰려가 항의 농성을 벌였다. 이 항의 농성으로 중역 두 사람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감금’되었다는 것이다.
다다의 한 동료는 “그는 알콜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치료받는 중이었다”고 밝힌 뒤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30년 동안 일을 시킨 뒤에 51살 먹은 사람을 내쫓는다는 것, 그것은 사회로부터 추방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삶을 이해해야 된다. 그는 열 살에 아버지를 잃었고 월급 받아 누이들을 공부시켰다. 그는 지금도 혼자 살고 있다. 알콜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한 행동, 그것은 노동자끼리의 연대이다. 우리는 자랑스러울 뿐이다.”
30년 동안 한 공장에서 일한, 그러나 알콜중독자가 된 노동자. 한 인간을 바라보면서 노동자 동료와 회사의 시선은 이처럼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아무튼 ‘노동자끼리의 연대’를 말하는 노조측과 ‘중역을 감금’했다고 주장하는 회사측 사이에 타협점은 쉽게 찾아질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노조와 회사가 이처럼 팽팽하게 대립하게 된 배경에는 ‘노동의 유연성’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르망 공장의 노동자들은 주축 노조인 CGT(노동총동맹)아래 강고히 단결하여 그 동안 회사측의 ‘노동의 유연성’ 요구를 뿌리쳐 왔다. 예를 들어 르노 공장 중에서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을 갖고 있는 곳은 오직 르망공장뿐이다. 이번의 항의 농성은 고소로까지 발전될 사항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회사측이 고소를 강행한 것은 이 기회에 강성 노조를 약화시키고 노동자들의 기를 꺾어 노동의 유연성을 관철시키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프랑스의 좌파 연합정권은 주 35시간 근무제를 입안하여 통과시켰다. 종업원 20명 이상의 기업은 올해 2월부터, 20명 미만의 기업은 2002년부터 주 35시간 근무를 시행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기업가(MEDEF) 측은 맹렬히 반대하고 있다. 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계속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까닭은 35시간 근무 실시에 따른 일종의 반대급부로 일요일근무, 초과시간 수당율 삭감, 3교대실시, 연총시간산정(예를 들어, 필요할 때엔 주 48시간까지 초과수당 없이 근무) 등 ‘노동의 유연성’을 획득하려는 데에 있다. 쉽게 말해, 노동강도를 높여 줄어든 근무시간을 만회하겠다는 계산이다. 노동자들 중에서 35시간 근무제를 반대하는 사람이 나오는 까닭은 봉급은 늘지 않고 노동강도만 심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르망 르노자동차회사의 강공에는 이런 사회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재판은 3월에 속개될 예정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 노조측과 회사측의 후속조치가 있게될 터인데 노동의 유연성을 둘러싼 노사 사이의 힘의 관계도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때에 다시 전하기로 하고 첫 통신은 이만 마치고자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님들께 프랑스땅 파리로부터 연대의 인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소중한 지면에 글을 싣게 해주신 <노동과 세계> 편집진께 마음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는 것도 부족하고 글쓰기 능력도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일단 한 달에 한 차례 <파리통신>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보내고자 합니다. 글의 내용은 주로 이곳 프랑스-그리고 유럽의-노동자들의 생활상과 노동운동 그리고 파업투쟁 등이 될 것입니다. 일반 노동자나 노동조합의 일꾼과 직접 인터뷰도 하여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할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구체적 현실과 한국의 현실을 견주어봄으로써 유럽 땅에 비해 훨씬 열악한 한국의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해, 즉 한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보는 장(場)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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