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현장③ 신선대·우암부두의 민주노조 지키기

“항운노조예? 그기 무신 노존교?”

노동자 대변 뒷전, 파견업체 노릇만…우리가 ‘진짜’ 노조를 만들었다

‘노-노싸움’ 치부 언론태도 못마땅, “대정부투쟁 끝까지 간다” 사기충천

부산 대연동에 자리한 경성대 교정은 때아니게 부두노동자들로 가득하다. 민주노조 설립 뒤 항운노조원들의 폭력이 극에 달하자 운송하역노조(위원장 김종인) 신선대와 우암지부가 지난 2월27일 파업을 선언하고 이곳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간다”는 신선대지부 조합원 강인호(33)씨는 “합법파업인데 이럴 수가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백주대낮에 항운노조원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돌아다닌다. 지난 2월25일 태업에 들어갔더니 수십명이 몰려와서 우리를 마구 폭행했다”고 전한다. 항운노조가 사업장을 점거한 셈이다. 조합원 임대성(37) 씨도 “파업은 현장에서 해야 하는데 주인이 오히려 쫓겨난 꼴”이라고 맞장구친다.

항운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생각은 한결같다. “노조는 무슨 노조냐?”는 것. 신선대 조합원 장재승(33)씨는 “처음엔 어쩔 수 없이 항운노조에 가입했는데, 노동자 복지나 근무조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며 “더이상 항운노조의 부정을 참을 수 없어 하역노조 지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장씨에 따르면 운송하역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의 경우 항운노조의 협박전화에 시달리고, 심지어 항운노조원을 피해 여관에서 자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장씨는 “우리는 단지 노조를 만든 것 뿐”이라고 말한다. “신명나게 일하고 싶어서 노조를 만들었고, 그것은 입도 벙끗 못하던 정신적 억압을 표출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공채로 입사해서 2년 가까이 노조활동을 안 하다가 IMF로 구조조정을 한다기에 항운노조에 가입했다. 그런데 노동자를 대변해야 할 노조가 인력파견업체 노릇만 하는 걸 보고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대성(37)씨의 말이다. 임씨는 “1년이든 2년이든 끝까지 버틸 작정”이라며, “죽어도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회사한테 4천5백만원 손해배상청구까지 받고 있는 임씨는 “오죽했으면 우리 집사람도 ‘4천5백만원은 나중에 전세를 빼서 줘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싸워서 이기라’고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가족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건 임대성씨만이 아니다.

경성대에 들어온 지 벌써 1주일이지만 가족들은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들고 ‘지지방문’을 온다. 조합원들은 가족한마당이 열리는 3월5일을 ‘소풍날’이라며 기다리고 있다. 아내가 매일 도시락을 싸온다는 신선대 이종목(46)씨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집사람도 좋아한다”며 여유로운 웃음을 짓는다.

지난 해 12월9일 지부를 결성하고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힘겨운 투쟁을 시작한 지 어느덧 석 달이 지났다. 끝내는 현장에서도 내몰려 낯선 대학교정에서 파업한 지 1주일이지만 조합원 누구한테서도 ‘두려움’의 기색을 찾을 수 없다.

4일 열린 ‘단결의 밤’. 장기를 선보이겠다고 나선 신선대 배종환(48)씨는 “50평생 대학 문턱도 못 밟아봤는데, 이번에 파업하면서 대학이라는 곳엘 처음 와봤다”고 운을 뗀 뒤 “파업하며 누리는 ‘대학생활’이 너무너무 낭만적이다”고 말해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이제 이들에게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을 뿐이다.

파업중이라 처남의 대학입학식도 못갔다는 우암지부 안수근(30)씨는 2일 부산시청 앞 집회가 끝나고 잠깐 처남을 만나 소주를 한잔 걸쳤단다. “택시타고 돌아오는 길에 ‘끝까지 간다. 나중에 잘리면 택시라도 몰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는 안씨는 “내가 끝낸다고 끝날 싸움도 아니다”며 “언론은 노노싸움이라고 떠들어대지만 우리가 하는 것은 나라를 상대로 한 싸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가 왜 싸우는 지 제대로 좀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회사쪽이 멋대로 정한 복귀시한인 3월4일 자정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강인호씨는 “부두에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날까지 똘똘 뭉쳐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정의로운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는 집단에 속할 수는 없지 않느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또한 “연대투쟁이 중요하다. 다른 민주노총 조합원에게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모두 한통속인 항운노조, 회사, 노동부, 해양수산청, 경찰을 상대로 싸우는 이들의 외로운 투쟁을 아직도 ‘노-노싸움’이라 치부하고 있는 언론에 대한 분노 역시 극에 달한 것이다.

김창구(37) 우암 부지부장은 “힘들어도 끝까지 할 수밖에 없다”며 “회사쪽이 복귀시한을 정해 해고위협을 하는 바람에 몇몇 조합원이 되돌아가기도 했지만 후회하며 다시 파업현장으로 오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남은 동지들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그에게서 결연한 의지가 묻어났다.

김종인 위원장은 “이미 노사간의 투쟁을 넘어선 만큼 해결의 열쇠는 정권이 쥐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김대중정권의 반개혁적·반노동자적 노동정책을 깨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며 “전체 민주노총 차원에서 연대한다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 위원장은 “이것저것 재지 않고 원칙대로 싸워서 김대중정권의 잘못된 노동정책을 분쇄하고 합법적인 노조로 인정받겠다”고 다짐했다.

이황미 leehm@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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