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의 파리통신

좌파주택과 우파주택

지난 번 통신에서는 르망에 있는 르노자동차 노동자들이 법정에 서게 된 사연을 전했다.

알콜 중독에 걸린 동료 노동자를 해고하려는 데 격분한 노동자들이 경영진 두 사람을 ‘감금’했다는 죄로 고발당했다는 사연이었다. 그런데 마침 르노회사가 노동자들에 대한 신상카드를 작성하여 보관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경영진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노동자 각각의 정치적 성향, 노조에 대한 태도 등을 기록했다는 것인데 그 중에는 ‘교란자’, ‘적색분자’, ‘부정적인’, ‘협잡꾼’, ‘일만 생기면 노조로 달려가는 자’, ‘믿을 수 없는’ 등의 악의적 표현도 들어 있었다.

르노회사의 사장인 루이 슈베쩨(그는 아프리카의 의사로 유명한 슈바이처 가문이다. 슈베쩨는 ‘슈바이처’의 프랑스어 발음)는 이에 대해 “나 자신 놀라움과 분노와 함께 그런 신상카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법에 위반되는 행위이고 르노회사의 자체 규정에도 어긋나는 짓이다”고 말하며 카드를 파기할 것과 관계자 처벌을 약속하면서 동시에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사장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간부들 중에 굴절된 충성분자가 있었다는 얘기다. 사실 이런 쓰레기 같은 충성분자는 어느 나라, 어느 땅에나 존재한다. 이제 곧 삼성자동차를 르노가 인수할 예정이라고 하니 나중에 혹 그런 굴절된 충성분자가 나오면 즉각 슈바이처 박사의 후예에게 알릴 일이다. 아무튼 이 신상카드 때문에 강성 노조를 약화시키려던 르노 경영진은 한 대 얻어맞은 꼴이 되었다.

르노 노동자들의 ‘감금’관련 재판에 대하여는 지금 진행 중에 있으므로 나중에 전하도록 하고 이번 통신에서는 서유럽 국가에서 이른바 ‘사회민주주의’가 주택정책에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잘 알다시피 주택정책은 건강정책, 교육정책과 함께 사회정책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

며칠 전에 프랑스의 좌파 연합정권은 ‘연대와 도시 재개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인구 1만 명이 넘는 도시들은 총 주택수에서 ‘저임대료 주택(HLM)’의 비율을 20%로 지키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이다. 참고로 프랑스에 전세제도는 없으며, 총 가구수의 약 55%가 집주인으로 살고 45%가 사글세를 살고 있다.

또 사글세의 55% 정도는 일반 임대주택에 살고 40% 정도가 ‘저임대료 주택’의 혜택을 받고 있는데, 같은 조건에서 임대료 차이가 두 배에서 세 배에 이르기 때문에 저임대료 주택의 혜택을 받자면 몇 년씩 기다려야 한다. 좌파 연합정권이 저임대료 주택을 확충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법안에 대해 부유한 도시들의 시장-이들은 모두 우파 출신이다-과 시민이 반대하는 것 또한 어쩌면 당연하다.

그것은 예컨대 강남구 압구정동에 총 주택수의 20%에 이르는 저임대료 주택을 건설하라고 요구했을 때를 상상해보는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파리 서쪽에 위치한 부촌인 베지네시의 한 시민은 “내 자식이 가난한 서민의 자식과 한 학교에 다니는 것부터 싫다”고 아주 솔직히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법안의 이름에 ‘연대’라는 말을 집어넣었는지 모른다. 이 법안에는 가난한 도시의 게토(빈민가-편집자)화를 막으려는 정책의지도 들어있다. 아무튼 프랑스 하원에선 이 법안을 놓고 좌우파 사이에 논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끝으로 좌파가 계속 집권한 한 지방정부의 주택정책에 나타난 저임대료 주택의 예를 보기로 하자. 물랭(Moulins)이라는 도시는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3백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알리에(Allier) 도(道)의 도청소재지로서 인구 약 2만인 곳이다. 부르봉 왕가의 근거지로서 중세 때부터 도시가 들어섰는데 15세기에 도시 전체가 불에 타는 불운을 겪었다. 그런데 곧바로 도시 전체가 재건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가장 오래된 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도시 주변에는 광활한 농지가 펼쳐 있어서 대지주가 많았고 따라서 성(城)도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민중들의 투쟁이 격심했던 역사적 사실 때문에 지금도 좌파 성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물랭시 시장은 좌파 출신이고 알리에도 하원의원 4명 중 2명은 사회당 출신, 2명은 공산당 출신이다. 이 도시의 시청 가까운 곳에 돌로 지어진 아주 멋진-옛날에 고관대작이나 대지주가 살았음직한-건축물이 여러 채 서 있다. 이 건물들이 다름 아닌 저임대료 주택이다.

시청은 그 건물들의 내부를 개조하고 여러 가구로 나누어 서민과 노동자에게 저가로 임대한 것이다. 파리라면 ‘특별’자(字)를 붙여서 ‘특별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을 텐데 물랭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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