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새롭게 움트는 민중연대
왜 다시 노·농·빈 연대인가
“너와 나, 고통의 근원은 같다”
DJ 앞세운 초국적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가 원흉
‘사안별 연대’론 한계…”차근차근 그러나 단단하게”
올해 들어 근로계급인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교류와 연대가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땀흘려 일함으로써 이 사회를 떠받치는 사람들, 그래서 흔히 ‘기층민중’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은 이 사회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런 이들을 대표하는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이 긴밀하게 움직이는 건 사실 심상치 않은 일이다. 왜 이리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는가.
IMF 사태를 시작으로 지난 2∼3년 동안 퍼부어진 신자유주의 공세는 이 사회를 극심한 고통으로 내몰았다. 그 가운데서도 생존이 벼랑 끝에 내몰리며 가장 크게 고통받은 게 바로 노동자, 농민, 빈민이다. 몰아치는 정리해고와 임금삭감, 수입개방에 따른 농산물가격 폭락에 늘어만 가는 농가부채, 살인적 강제철거와 노점상 탄압. 각자 피부로 부딪는 고통의 양상은 다르지만 그 근원은 하나라는 걸 절감한 것이다. 초국적자본의 이해를 실현하고, 독점재벌의 지배력을 높이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희생양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노-농-빈 세 조직의 실질적 연대가 움트게 된 배경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3월9∼10일 이틀간 열린 3자 합동수련회는 소박한 시작이었지만 이후 민중운동진영의 단결과 연대를 강화하는 역사적 출발점이라 할 만 하다. 이번 수련회 참가자들이 민중연대가 절박한 이유로 “김대중정권에 맞서기 위해”라고 입을 모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9일 지역별로 나뉘어 진행된 분반토론에서 나온 ‘김대중 정권의 성격규정’은 단호하다. 경남지역의 경우 “DJ는 철저한 신자유주의 선봉장으로서 빈익빈부익부를 심화시켰고 민중생존권은 물론 경제주권 마저 초국적자본에 내주었다”는데 의견이 일치됐다. 흔히 ‘DJ의 텃밭’으로 알려진 광주전남지역의 시각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DJ정권이 “호남지역 민중의 민주성을 말살한 정권”이라고 호되게 꾸짖었다. 오늘날 민생을 파탄낸 정권에 대한 연대투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공유한 셈이다.
전농 충북도연맹 안승원 의장은 “사실 우리는 DJ가 우리를 대변해줄 것으로 알았는데 정작 자본가 몇 명만을 대변하며 초국적자본에 모든 걸 넘겨줬다. 그 결과 우리는 일터를 잃고 농터를 잃고 살터를 잃었다”며 “빨리 단합해서 우리 몫을 찾아야 한다” 목소리를 높였다.
전빈련 간사를 맡고 있는 전국철거민연합 문연임 총무위원은 “민중연대란 노동자, 농민, 빈민을 중심으로 민중이 하나되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의했다. 그는 “지금은 노동자가 언제라도 농민이 될 수 있고, 또 노점상이 될 수 있는 혼란한 시기”라며 “따라서 우리 모두가 한 사람이라는 한 마음으로 정권을 바로잡기 위해 연대해야 하고, 그럴 때만이 우리요구도 관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농 경남도연맹 강기갑 의장 역시 “농민, 노동자, 빈민이 함께 반민중적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일관하는 정권을 격파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 의장은 “우리 농민의 절박한 요구는 농산물값을 보장해달라는 것인데, 어찌 보면 도시빈민이나 노동자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저농산물가격 정책은 저임금정책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어 “공동투쟁으로 유통구조를 개혁해 농민은 제값을 받고, 노동자와 빈민은 농산물을 값싸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생산지에서는 2백원 하는 배추 한 포기가 도시 소비자에게 팔릴 때는 2천원에 거래되는 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 의장은 얘기 끝에 “노동자나 도시빈민이 밥을 먹을 때 농민이 피땀 흘려 지은 쌀을 값싸게 먹고 있음을 아프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참가자들의 이런 절박하면서도 전투적인 상황인식과 달리 연대에 관한 한 목적의식적 사업보다는 낮은 차원의 자연스런 연대를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일단 지역차원에서 꼭 만남의 자리를 만들자”, “인간적 교류가 필요하다”, “정보와 소식을 공유하자”는 얘기가 주류를 이뤘던 것. 이처럼 ‘동지적 애정’이 특히 강조된 것은 연대의 현주소를 숨김없이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그 동안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일이 있을 때 잠깐 공동보조를 취했다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곤 했던 연대수준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조급히 서두르다 일을 그르치기보다는 더디 가더라도 단단한 동아줄을 엮자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세 조직은 이미 지난 98년부터 민중대회를 함께 열었고, 지난해에는 두 차례를 함께 치렀다. 이를 바탕으로 좀더 긴밀한 조직적 결합을 모색할 수도 있지만, 우선은 ‘신자유주의 반대·민중생존권 쟁취 민중대회위원회’로 조직을 재정비하고 상설 공동투쟁체 구성은 하반기로 미룬 것도 따지고 보면 이같은 상황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이번 수련회에서는 각 조직의 상황과 인식을 함께 나눔으로써 민중연대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거꾸로 앞으로 남은 과제가 만만치 않음을 뜻하는 것이다.
전철연 박원주 부의장은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는 노동자, 농민, 빈민이 탄압받고 고통받는 특수한 상황에서 필요에 따라 시기별, 사안별로 연대해왔지만 그것은 진정한 민중연대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슈중심의 연대나 평가에 의한 연대는 미약하다는 것을 모두가 느낀 만큼 이제는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지속적 연대틀’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여기서 정치세력화라는 것은 정치적 진출이 아니라 실질적 권리와 주도권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황미 leehm@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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