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노동자 생명 갉아먹는 ‘점심개장’

증권거래소 노조와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강행

일인다역 업무특성에 꼼짝없이 점심 굶을 판

증권거래소가 지난 3월16일 이사회를 통해 기습적으로 점심시간 개장을 결정해 증권노동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이번 결정은 노조와 아무런 논의를 거치지 않고 노동조건을 개악한데다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 미국의 증시시스템을 무조건 도입하려 한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점심시간 증시개장은 우선 증권사 영업직 노동자들의 점심시간을 빼앗았다는 점에서 급격한 노동조건의 저하를 예고하고 있다. 전국증권산업노조(위원장 정용건)에 따르면 현재 증권사 노동자들은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 하루 11∼12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순간의 판단착오로 1초에 수천만원을 잃을 수 있는 업무특성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점심시간마저 없어지면 건강과 생명에 직격탄이 될 거라는 게 증권노조의 진단이다. 객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IMF 이후 원형탈모증, 불면증, 암 등 건강악화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거래소쪽은 증권노조의 공청회 등 대화요구를 묵살한 채 아무런 협의도 없이 지난 2월23일 점심개장 방침을 발표한데 이어 3월16일 기습적으로 이를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거래소쪽이 주장하는 점심개장의 근거는 간단하다. 미국이 그렇다는 것이고, 현재 코스닥시장의 매매회전율에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에 대해 “미국 증권노동자들은 회사쪽이 추천하는 종목만 팔면 되는 수준이어서 우리와는 노동조건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한국 증권노동자들은 펀드매니저에 증시분석 등 일인다역인데다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영업방식이어서 점심시간까지 개장하면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밝혔다. ‘교대로 점심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거래소쪽의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라는 것이다. 노조는 또한 증시선진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은 제쳐두고 점심개장만 밀어부치는 것은 관료들의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점심개장은 오는 3월24일 금감위의 승인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증권사노조들은 이에 따라 23일 금감위 앞에서 집회를 열기로 하는 등 점심개장 철회투쟁도 집중될 전망이다. 증권산업노조는 3월16일 거래소 이사장실 점거농성을 벌인데 이어 20일부터는 거래소 앞 연좌농성과 함께 점심개장 철회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정경은 joungke@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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