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의 파리통신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지은이
<르몽드> 눈에 비친 한국의 자동차파업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프랑스 신문을 통해서 자세히 알게 되는 경우는 꽤 드문 일이다. 4월8일자 <르몽드>신문에는 한국의 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 소식이 크게 실렸다. 기업면의 상단 삼분의 1을 차지하여 한국의 신문들보다 오히려 더 비중 있게 다뤘다. 외국 신문이 국내 신문보다 더 중요하게 다룬 셈인데 이 모순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프랑스의 르노 회사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리라는 전망 때문에 프랑스 여론이 한국의 자동차 업계 동향에 관심이 커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대다수 보수/수구 언론과 달리 <르몽드>는 기본적으로 노동운동 등의 사회운동을 중요한 뉴스로 바라보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르몽드>는 예컨대 96-97년 겨울의 총파업 때에 ‘한국의 진면목’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은 바 있다. 또 한 면을 할애하여 당시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나는 한국 신문이 권위원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이처럼 한국과 프랑스 언론 사이에는 사회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에 큰 차이가 있다. 이 시선의 차이는 아주 당연한 일이다. 보수/수구 언론과 진보적인 언론의 서로 다른 점이 다른 데 있지 않고 바로 그 점에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대중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대중매체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사건을 바라볼 때 대중매체가 크게 취급해야만 중요한 사건인양 인식하고 대중매체가 취급하지 않으면 하찮은 사건인양 생각하기 쉽다. 한국의 보수/수구 언론은 사회운동은 되도록 취급하지 않거나 취급하더라도 왜곡하여 취급함으로써 대중으로 하여금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부정적으로 인식시키게 하는 반면에 정치인들의 동향에 대하여는 열심히 보고하여 중요한양 인식시키고 있다.
하나의 예로 김종필씨를 들어보자. 프랑스였다면 벌써 오래 전에 정치 일선에서 사라져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멀어졌어야 할 인물이다. 5.16 쿠데타 이후 40년이 되는 지금까지 남긴 발자취로서도, 정치적 식견으로도 긍정적인 면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이다. 지금 그에게 남아 있는 밑천이라곤 ‘충청’ 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치 무대에서 한 자리를 누리고 있다. 김종필 신화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한국의 일그러진 언론에 있다. 그의 동향을 보수/수구 언론이 열심히 보고함으로써 그를 아직 가치 있는 인물인양 인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대부분의 기자들을 기자라고 부르지 않고 ‘동향보고자’라고 부르는데 이 동향보고자들의 활약에 힘입어 무가치한 수구 인물들이 가치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또 ‘충청’밖에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을 키워줌으로써 지역주의를 키워주는 결과도 가져오고 있다. 그런데 더욱 실소할 일은 그런 결과를 낳는 보수/수구 언론이 걸핏하면 ‘지역주의를 개탄하는’ 사설이나 주장을 편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자기가 보기 싫다고 한탄하는 꼴이다.
한국의 보수/수구 언론이 크게 떠들더라도 그게 꼭 중요한 사안이라고 믿지 말 일이다. 거꾸로 그들이 취급하지 않는다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도 말 일이다. 우리가 판단하여 중요하고 정당하다고 생각되는 길을 떳떳이 가면 그만인 것이다. 이번 연대 파업의 길처럼.
이제 르몽드의 기사를 살펴 보자. <르몽드>의 도쿄 특파원인 필리프 퐁스는 “한국의 자동차 제조업계에 파업 확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노조는 그들의 기업을 해외에 매각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이 사회적 움직임은 김대중 정부의 개혁정책과 관련하여 중대한 분기점이 되는 4.13총선을 바로 앞둔 시점에 일어났다”고 중간 타이틀을 단 뒤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한국 제일의 자동차 회사인 현대자동차노조는 해외매각에 반대하여 3월31일부터 파업에 들어간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에 연대하기 위해 6일간 파업에 들어갈 것을 선언하였다. 4개의 외국기업(GM, 포드, 피아트 그리고 다임러-크라이슬러)이 한국의 두 번째 자동차 회사(대우자동차)를 인수하려는 지원자로 나선 바 있다. 파업 운동은 기아와 쌍용에까지 파급되어 세계 제5위인 한국의 자동차산업 전체에 번지고 있다.…”
이어서 삼성자동차의 ‘무노조’에 대하여도 언급하고 있다. “르노-삼성 협상의 경우, 노조의 요구 문제는 없다. 왜냐하면 삼성 사용자측의 압력에 의해 삼성자동차에도 또 하청업체에도 노조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가격 문제 때문에 난관에 부딪혀있는(특히 삼성자동차의 숨은 빚 안기 문제) 르노의 삼성자동차 매입은 한반도의 제일 큰 항구 도시인 부산에서 기대되고 있다.”
21세기에도 무노조를 고집하는 삼성왕국은 19세기적 성채이다. 삼성맨들이 삼성의 무노조 원칙을 자랑으로 알고 있을까? 노조 설립을 하지 않아야 처우를 더욱 잘 해준다는 사용자의 말에 현혹되고 있다면 그것은 노예 근성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르노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면 노조 설립은 당연한 일이 될 텐데 그것을 삼성맨들은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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