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의 파리통신
64년전 프랑스에서
주5일근무를 도입할 때
97년에 나는 난생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았다. 유럽 땅에서 18년 동안 산 뒤의 일이었다. 도착한 날 저녁 무렵 도쿄 시내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 나는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적지 않은 승객들이 피곤한 표정으로 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랬지!’ 잠시 뒤에 나는 혼자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여지없이 서울의 시내버스와 지하철 풍경이 떠올랐던 것이다. 피로에 지친 승객들의 모습, 고단한 삶의 표정들은 서울의 시내버스나 지하철에 오르면 항상 볼 수 있었다. 그 모습과 표정을 나는 18년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파리의 시내버스나 지하철에선 보기 어려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리의 시내버스나 지하철에선 청소년이건 어른이건 꾸벅대며 조는 승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프랑스보다 국민소득이 높다는 일본에서 피로에 지친 듯한 승객들의 모습을 본 것이다. 아직 어린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공부에 시달린 모습이었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피로의 기색이 역력했다. ‘서울은 도쿄보다 더 심하겠지.’ 나의 이 짐작은 작년에 서울에 가서 보았을 때 사실로 확인되었다.
‘삶의 질’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프랑스와 일본 사이에 ‘삶의 질’을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한국의 민중들에겐 ‘삶의 질’이란 말을 꺼낼 여유조차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잘 살아보세’식 성장제일주의는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는 반면, 각자의 삶을 객관화시켜 바라볼 여유를 완전히 앗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항상 무언가에 쫓기면서 불안하게 살아야하는 고단한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 그러한 삶은 운명적인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운명적으로 지워진 게 아니라, 다만 사회적 힘의 관계에서 한국의 민중들이 아직 제대로 생존권을 획득하지 못한 것뿐이다. 지금껏 수십년을 달려왔음에도 아직 부실하기만 한 사회보장제도. 노후연금, 의료보험, 실업보험, 주택정책 등 모든 게 부실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또 하나 구체적인 예로 자식들 교육문제만 해도 그렇다. 철저히 개인주의 사회인 프랑스에서는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모든 학비를 국가가 부담하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아직 국가주의적이며 집단주의적인 교육을 시키면서도 학비를 개인에게 부담시키고 있다. 모순이 분명하지 않은가. 거꾸로 되었어야 온당하겠으므로.
결국 한국의 민중들이 피곤한 몸을 시내버스와 지하철에 시달리며 아둥바둥 살아야하는 까닭은 아직 제대로 된 생존권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프랑스 민중들이 나름의 민중문화, 노동자문화를 향유하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것은 사회정의에 기초한 생존권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감히 말하건대, 한국의 민중들도 프랑스 민중들이 향유하고 있는 제반 혜택의 절반 정도만 획득한다면 ‘삶의 질’에 있어서 알찬 향상을 맛볼 수 있고 소외감을 내던지고 문화를 창조하며 살 수 있으리라고 본다. 요컨대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을 바라보던 삶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과 대화하는 삶이 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금년 노동절을 기해 불붙고 있는 ‘주5일근무제’ 요구는 ‘삶의 질’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올해 총선에서 국회진출에 실패하는 안타까움을 겪었지만 주5일근무제만큼은 꼭 쟁취하여 한국사회 진보의 중대한 전기를 이뤄내야 할 것이다.
프랑스 민중이 주5일근무제를 쟁취한 것은 1936년의 일이었다. 64년 전의 일이다. 그들은 그 때 2주 동안의 유급휴가도 함께 획득하였다(지금은 주35시간 근무에 연5주 유급휴가다). 그래서 당시까지 부르조아들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해변에서의 바캉스’를 노동자, 민중도 즐기게 되었는데, 부르조아들과 다른 점은 자동차 대신 주로 자전거와 기차를 이용했다는 점과 ‘수영복 아닌 수영복’을 착용했던 점이었다. ‘수영복 아닌 수영복’을 입고 바닷물에 뛰어드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기 싫어 부르조아들이 자리를 피했다는데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응수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옹상푸!”(알게 뭐야!). 한편, ‘프랑스 일주’ 자전거 경기가 프랑스 민중의 사랑을 받게된 것도 주5일근무제와 유급휴가가 계기가 되었다.
주5일근무제 요구는 정당하다. 오히려 때늦은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최장의 노동시간이라는 점으로도 알 수 있다. 그 위에 노동강도가 심해졌으므로 더욱 그렇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느니 혹은 ‘국가경쟁력’이니 하며 반대하는 입들이 있다. 남들은 64년 전에 자전거 타고 휴가가면서 주5일근무를 했는데 자동차가 천만 대를 넘는 나라에서 아직 때가 이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에게 내일은 언제나 내일이어서 정작 내일이 와도 또 내일을 말할 뿐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에는 대학교수도 있는가본데 그들은 재충전이 필요하다며 7년마다 1년씩 안식휴가제를 갖기도 한다. 그들의 몇 배 이상으로 노동자, 민중도 재충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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