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공관 집회 방패막이?
재벌 잔머리가 헌법보다 우선 하는 나라
파나마 대사관 “재벌 의도 나중에 알고 황당”
재벌들이 앞다투어 회사 건물내에 외국공관을 유치해 노동자들의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있어 집시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벌들이 외국공관을 유치하는 이유는 ‘국내주재 외국공관 1백미터 이내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집시법 조항(11조)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과 시민단체들은 이 같은 조항이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항이라며 지난 25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손낙구 민주노총 교선실장은 집회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지적한 뒤 “집시법11조의 취지가 외국사람들에게 우리나라가 시끄럽지 않은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면 오히려 거꾸로 된 것”이라며 “외국에서는 집회를 하는 것을 당연한 국민의 권리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종권 사회진보연대 기획실장 역시 “대사관 등 외국공관 앞에서 시위 방식을 조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시위자체를 막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 “재벌들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이 놀아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외국공관을 유치해 집회를 막은 사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세종로에 위치한 광화문 빌딩은 정부종합청사와 청와대에 가까운 위치에 자리잡아 대형집회가 계속되자 브루나이 대사관 입주시켜 집회를 열 수 없게 만들었다. 삼성의 경우 역시 외국공관을 유치해 집회란 있을 수 없는 ‘성역’으로 탈바꿈했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의 한 관계자는 “20층이 넘
는 건물에 이런저런 회사가 다 들어와 있다. 그 중에 공교롭게도 대사관이 있는 것”이라지만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삼성은 지난 97년 삼성계열사 이천전기 노동자들이 고용승계 및 복직을 요구하며 그룹본관에서 시위를 하자 싱가포르 대사관을 입주시켜 집회를 ‘평정’시킨 뒤, 작년부터 삼성해고자 원상 복직 투쟁이 계속되자 삼성생명 빌딩에 엘살바로드 대사관 입주시켰으며 종로1가 삼성국세청 건물에 온두라스 대사관을 유치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영숙(31) 삼성생명 해고자는 “집회를 하면 ‘왜’ 하는지를 듣고 해결을 해야 하는데 아주 귀를 막아버릴 작정인 것 같다”며 분개했다.
한편 재벌들이 회사의 건물내에 외국공관 입주를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 5월 26일 파나마 대사관을 입주시켜 ‘집회’에 관한 한 ‘무풍지대’가 됐다. 파나마 대사관은 올1월 대사관을 좀더 넓은 곳으로 이주하려고 했는데 현대상선이 이 같은 소식을 듣고 다른 곳보다 좋은 임대조건을 제시, 파나마 대사관에 구애를 요청했다는 것. 파나
마 대사관 직원에 따르면 “넓이는 지난번 대사관보다 커졌는데 가격은 비슷하다”고 밝힌 뒤 “이사하는 날 신문에서 집회를 막기 위해 싼값에 외국대사관을 유치한다는 말을 듣고 대사도 황당해 했다”고 전해 재벌들의 편법에 국제적 망신까지 초래하고 있다.
현재 한화그룹 내 그리스 대사관, 대우센터에 우루과이대사관, 교보빌딩에 7개국 대사관 등 재벌들의 주요 건물에는 외국공관이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정경섭jks@kdlp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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