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소리]환경의날 유감

——————————————————————————–

-서 주 원(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환경이란 인간과 이를 둘러싼 자연적·사회적 관계를 말한다. 이러한 환경은 인간의 생존 및 생활을 직간접으로 규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환경에 대해 사람들은 그 중요성을 최근에 들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통해서만 자신의 생물적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 인류가 지구상에 탄생한지 40만년이 흘렀지만 사람과 자연과의 물질대사 즉, 크게 보아서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자연 속에 조화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오히려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였다.

환경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너무 크고 필수적인 것이어서 사람들은 이를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동시에 이러한 환경은 너무나 거대하고 풍부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인간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자연은 결코 인간이 무한히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자연은 인간이 배출해낸 온갖 쓰레기들을 아무 대가 없이 받아 들일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공장폐수 속의 중금속이 먹이사슬을 타고 수십 만 배, 수백 만 배 농축되어 사람의 몸 속에 되돌아 왔고, 산업발전의 상징으로 추앙되었던 공장의 검은 연기가 불치의 병을 인간에게 안겨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자연환경은 이제 인간들의 환경수탈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인간에게 ‘보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보호운동 정도로 생각되던 환경문제는 이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매년 되풀이되는 수돗물 오염문제, 대기오염문제, 공해병 등 수 많은 환경문제가 발생하여 사람들은 위기의식마저 갖게 되었다.

그런데 환경파괴에 따른 피해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지 못하다. 사회적 약자·정치적 약자·그리고 생물학적 약자에게 보다 많은 피해가 돌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구의 위기로 표현되는 환경문제는 산업혁명 이후 19세기에 이해되었던 것과 현재 이해되는 것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19세기에는 자연환경의 불변성 및 무한성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고 있었다.

자연환경을 체계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생태학이 아직 자리잡지 못했고, 아울러 파괴된 환경의 복구 불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전혀 확립되지 못하였다. 자연에는 파괴나 오염을 정화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관념은 생태과학이 등장하여 이를 검증하고 나서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들어와서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체계가 구축되면서 오염물질의 배출량이 급속히 증가함에 따라 미시적이고, 국부적이었던 환경문제는 오염물질의 광범위한 확산으로 전지구적인 규모로 확대되었다.

지구온난화나 오존층 파괴, 환경호르몬의 확산 등 어느 지역도 지구환경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지구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의 지구 파괴 규모는 훨씬 대규모적으로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대라는 삼협댐이나 새만금 간척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환경의 날은 기념식이나 구호를 외치자고 만든 것이 아니다. 지구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구환경보전을 위한 방안을 만들고 실천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수도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개발과 경인운하 건설 시도, 새만금 간척사업을 억지 사실까지 만들어서라도 강행하기 위하여 기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환경의 날에 대한 유감(有感)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