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녹색연합 전 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개혁을 촉구해온 `진보세력’의 남성중심적 성의식과 운동문화를 정면으로 짚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진보세력 안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서울여성노동조합과 `운동사회 내 가부장성과 권위주의 철폐를 위한 노동·사회·시민·학생단체 여성활동가모임’ 등은 오는 20일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토론회를 연다.

이들 단체가 토론회를 계획한 것은 장씨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지난달 18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간부가 여성 간부를 성추행한 사건에 대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을 마무리하면서였다.

이들은 이 사건이 노조가 내부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전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지난해 12월 사건 발생 직후 가해자는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노조 집행부가 밖으로 함구령을 내린 채 진상 조사 없이 간부직 사퇴라는 미지근한 조처로 끝내려 하자 가해자는 별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양 뻔뻔한 태도로 나왔다. 사건 내막도 진실과는 동떨어진 채 퍼져갔다. 결국 `조직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 아래 가해자와 피해자의 처지가 서로 뒤바뀌는 진보세력 안 성추행 사건 처리과정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상부의 조처에 분노한 피해자가 사건을 조합원들에게 알렸고 서울여성노조 등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진상 조사와 가해자 징계를 요구해 한달쯤 뒤 220여쪽에 이르는 진상조사 보고서가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 여성은 심리적 충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 단체가 보기에, 노조나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남성 활동가들의 성 의식은 일반 사회인들과 거의 비슷하다. 노래방에서 돈 주고 여성을 불러 함께 노는 놀이문화를 두둔하거나, 남성 활동가만을 운동의 주체세력인 것처럼 여기고, 나아가 피해 여성을 오히려 몰아세우기까지 하는 것이 단적인 보기라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운동사회 내…여성활동가모임’이 꾸려진 것도 이런 풍토에 대한 반발에서였다.

이들은 원칙이나 대안은 없이 이런 사건이 터질 때면 막연히 반성하자는 주장은 오히려 본질적인 해법을 가로막는다고 말한다. 토론회를 열기로 한 것도 바로 사건 해결의 원칙과 구체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여성활동가모임’에 참가하는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엄혜진 간사는 “여성·장애인 등 소수의 인권 문제에 둔감한 데서 이런 잘못된 성 의식이 나온다”며 “차분하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서울여성노조 정양희 위원장은 진상 조사와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와 관련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심지어 죄질이 나쁜 가해자는 고발하는 규정도 둘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운동사회 안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는 것은 제 살을 찢는 아픔이 따르겠지만 운동사회의 건강성을 되찾는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수범 기자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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