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파리통신>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지은이-
국회의장 포르니가 <퓨조607>을 타는 이유
지난봄에 프랑스의 하원 의장이 바뀌었다. 전임 의장이었던 로랑 파비우스가 조스팽 총리의 부름을 받아 ‘경제와 재무장관’으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의장을 새로 선출한 것이다. 로랑 파비우스는 미테랑 대통령 밑에서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 이번에 하원 의장직을 마다하고 국가 서열로는 한참 뒤지는 장관이 되었다. 서열과 명목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정서로 보기에는 언뜻 그가 울상을 짓거나 불평을 늘어놓았으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는 정반대여서 그는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거의 모든 프랑스인처럼 그에게는 명목보다 실질이 중요하다. 나라의 경제를 책임지는 자리이면서 또 사회당 안에서 조스팽 총리 다음의 제2인자 자리를 굳힐 수 있는 자리이므로 그의 즐거움은 오히려 당연했다. 프랑스에선 아무도 그의 총리->하원의장->장관이라는 ‘내리막길’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았다. 사실 이 얘기는 별로 흥미 있는 게 아니다. 나도 파비우스에 관한 얘기는 여기서 끝내련다.
파비우스 후임으로 하원 의장에 선출된 사람은 역시 사회당 출신의 레이몽 포르니라는 사람이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 이주 노동자의 아들이다. 이 얘기도 프랑스에서는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한다. 최근에 총리를 지냈던 피에르 베레고부아나 에뒤아르 발라뒤르가 각각 우크라이나와 아르메니아 출신이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주민 자식의 이른바 출세는 비교적 흔한 이야기이다. (북아프리카 출신의 아랍계는 이 점에서도 예외이다.)
아무튼 레이몽 포르니는 의장 취임 연설에서 프랑스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이주 노동자의 자식으로 하원 의장에까지 이르렀으니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프랑스의 유명한 배우였던 알랑 들롱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었다. 알랑 들롱은 금년 봄부터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스위스 사람이다. 프랑스의 높은 과세율을 피해 스위스로 국적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알랑 들롱의 세금 망명과 관련되는 프랑스의 조세제도와 사회보장의 관계, 즉 분배정의에 관한 얘기는 다음 기회에 쓰기로 하고 여기서는 다만 한 가지 질문만 슬쩍 던지고 넘어가기로 하자.
“한국의 내노라하는 사람들, 예컨대 골프채로 정치를 주무르고 경제도 만지는 사람들은 알랑 들롱에 가까운 사람들일까, 레이몽 포르니에 가까운 사람들일까?”
하던 얘기를 계속하자. 새로 하원 의장이 된 레이몽 포르니는 집무용 승용차로 퓨조 자동차회사에서 새로 나온 <퓨조607>를 타기로 결정하였다. 이 얘기도 별난 얘기가 아니다. 하원 의장쯤 되면 그럴 권리 정도는 갖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가 퓨조를 타기로 결정하게된 사연은 그리 흔한 얘기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전인 1960년에 그는 쏘쇼라는 곳에 있는 퓨조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그 곳에서 1년 반 동안 <퓨조403>의 계기판을 만들었는데 당시 그는 체인에서 노예처럼 일했다고 말했다. 하루에 9시간 반 동안 일하면서 화장실에 한 번 밖에 갈 수 없었다고도 했다. 그가 정치에 뜻을 둔 것이 바로 그 때부터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곳이었다. 내가 불평등과 불의를 발견했던 곳은 바로 그 곳이었다.”
“그 곳”은 물론 퓨조공장을 말한다. 기자 두 사람이 그에 관해 책을 썼는데, 책제목이 “좌파로 살기”이다. 결국 퓨조공장 노동자의 경험이 그에게 “좌파로 살기”로 결심하게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좌파로 살기. 나는 그 책을 읽지 않아서 그의 ‘좌파로 살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사회의 불평등과 불의에 항거하여 싸우는 삶이란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제는 하원 의장이란 일상생활로 ‘캐비어 좌파(캐비어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음식이다.)’라는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건너기 어려운 차이가 있는 법이다. 그 점은 그가 <퓨조607>을 일부러 택한 작은 이유에서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퓨조607>의 내항성이 떨어진다는 문제 때문에 생산공정에 차질이 생겨 쏘쇼 공장 노동자들의 일자리에 위험이 닥쳤다는 소식이 오히려 그에게 문제의 자동차를 타게끔 했다는 것이다. 과거에 동료였던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 의식이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대개 노동자에 대한 작은 친화력이라도 없으면 노동자의 문제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거의 모든 정치인들처럼. 그렇다. 노동자, 민중의 아픔과 설움은 노동자, 민중만이 알 수 있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 세력화는 우리에게 진정 눈물겹도록 중대한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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