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위에 군림하는 안기부
안기부법,노동법이 날치기 개악된 후 연일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들끓
던 97년 새해 벽두.
당시 투쟁을 전하기 위해 발행된 병원연맹의 소식지에는 시위 현장에
나와 구경하던 한시민의 말을 실어 눈길을 끌었다.
“노동법 철회만 주장하지 왜 안기부법까지 들먹이고 그러는 거야!”
실제로 당시 항의 시위에 참가한 이들 대부분은 안기부법 개악 철회
보다는 노동법 철회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으며 안기부법 철회를 주
장하는 구호에서는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낮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당시 많은 이들은 안기부법이 일반 국민들과는 별
로 관련이 없는, 즉 특별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법률이라고 생각하
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 특별한 사람들은 바로 공안기관이 주장하는 이른바 불순한
사람들 -북에서 남파된 간첩이라든가 불순, 좌익사범 등-이며 더불어
‘나는 안기부와 아무런 관계가 없을 사람’이라는 사상적 자기 검증의
표현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과연 안기부가 일반 국민들과는 동떨어진 기구일까?
안기부가 보유하고 있는 5천회선의 도청장치
국가안전기획부법은 제1조 목적에서 안기부의 역할에 대해 ‘국가안전
보장 업무의 효율적인 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적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안기부는 정보 수집을 비롯하여
보안업무와 각종 범죄행위에 대한 직접 수사까지 광범위한 권한을 가
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공식적으로 규정된 권한외에 안기부는 또 하나의 권한
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안보 논리를 내세운 국민 감시, 통제 활동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전자 주민카드 사업이며 안기부는 이
추진기획단에 대공요원을 참석시켜 모든 국민들을 철저히 통제, 제어
하는 톱니 바퀴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인권하루소식 7월 9일,10일
기사 참조)
더우기 우리를 경악케 하는 것은 안기부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5천 회
선의 도청 장치이다.
96년 1월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두차례에 걸쳐 폭로한 이 안기부
도청 회선 보유 사실은 이후 국정감사에서 도청 회선 보유 사실을 묻
는 질의에 대해 안기부측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말로 간접 확인되
었다. 이 도청 장치의 사용처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
린하는 불법임은 자명한것이다. 이렇듯 진정한 민주주의는 투명한 정
부와 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오히려 현재
의 정부와 공안기구는 베일에 가린채 국민 개개인의 정보를 독점하는
형태가 됨으로써 이는 독재 국가로 가는 전주가 될 것으로 심히 우려
되고 있다.
송씨 일가 사건을 아십니까?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른 세련된 국민 통제 방법외에도 안기부는 어
느날 갑자기 당신의 집에 방문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예기치 않은 방문으로 한 일가족이 아무런 증거나 영장없이
수십일간 불법 구금된 채 간첩이 되어야 하고 온갖 고문과 가혹행위
속에서 허위자백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상황이 될수도 있다. 그 단
적인 예가 바로 81년 안기부 창설 이래 최초, 최대의 간첩 적발사건으
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이 바로 그
것이다.
당시 안기부는 29명에 달하는 일가족을 영장없이 간첩혐의로 연행하여
무려 50일에서 100일에 걸친 불법구금속에서 간첩 자백을 강요하는
물고문과 잠 안재우기를 비롯하여 각목 구타등 잔인한 고문을 가했다.
그리하여 결국 공포와 두려움으로 허위 자백한 이들 일가족 간첩단 사
건은 이후 대법원까지 가는 오랜 진통 끝에 인권변호사의 헌신적 노력
으로 무죄판결을 받을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안기부 피해 사례는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95년 11월 박충렬·김태년 씨 간첩 무죄 사건, 96년 12월 경희대 김
형찬군 오인 연행 분신사건등이 그것이다. 한편 이러한 피해에 대
해 가해자 처벌은 고사하고 안기부로 부터 사과를 받은 피해자는 아
무도 없다. 1993년 이후 96년 8월 31일까지 안기부직원이 가혹행위, 변
호인 접견 불허등 인권침해 및 직권남용과 관련해 고소·고발된 것은
모두 397건에 이르는데 이 중 처벌 또는 징계를 받은 사례가 단 한건
조차 없는 것만 보아도 법 위에 존재하는 초법적인 안기부의 힘을 확
인할 수 있을것이다.
안기부는 언제나 여러분의 곁에 있다.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국가보안법 7조 및 10조 수사권을 회복한다고 해서 우리가 이 혐의
자를 모두 수사한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간첩 용의자로 의심되는 이
를 일단 이 혐의로 연행한 후 이들에 대해 간첩 혐의를 수사하겠다는
것이다.”
96년 안기부법이 개악되기 이전 안기부는 수사권 회복의 당위성에 대
해 이렇게 강변하였다.
그러나 실상 안기부의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향후 심각한 인권유린과
더불어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안기부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반증
하는 것이다.
안기부의 근거없는 의심만으로 한 일가족이 철저히 파괴된 송씨 일가
사건만 돌아보아도 언제 누가 고문과 가혹행위 속에서 우리사회의 천
형과도 같은 간첩자백을 안기부로부터 강요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
다.
1997년 7월 23일 수요일 인권하루소식 제9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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