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1] 금융노조 파업일지

△6월7일=금융노조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발표 직후 은행파업 결정

△7월1일=금융노조, `관치금융 청산을 위한 금융노조 총파업 진군대회’ 열고, 11일부터 총파업 선언

△7월3일=금융노조 산하 22개 금융기관의 노조원 6만여명 은행파업에 대한 찬반투표

△7월4일=금융노조 사복 출근 등 준법투쟁 돌입. 김호진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이용근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에게 노·정 협상에 나설 것 제안

△7월5일=금융노조와 시민단체 대표 `관치금융 청산과 한국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범국민 대책위원회’ 결성

△7월7일=서울 명동 은행회관서 열린 노·정 제1차 협상 결렬

△7월9일=제2차 협상도 결렬

△7월10일=제3차 협상 개최와 실무소위원회 가동

△7월11일 오전 5시=금융노조 파업선언

△ 〃 오전 8시20분=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 담화문 발표

△ 〃 오후 1시=명동성당에서 제4차 협상 시작

△ 〃 〃 4시=금융노조 위원장, 협상장 퇴장

△ 〃 〃 6시40분=금감위원장·금융노조 위원장 협상 재개

△ 〃 〃 7시25분=협상 타결

[기사2] 은행파업 극적타결 의미·전망

노-정 한발씩 양보 ‘실리’찾았다

금융노조가 이번 파업에서 내세운 최대쟁점은 관치금융 청산이었지만, 사실상 가장 집착한 것은 금융지주회사제였다. 노조는 그러나 금융개혁에 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뚫지 못했다. 노조는 대신 정부로부터 관치금융 재발방지책을 따내는 등의 일부 양보를 얻어냈다.

노조가 더이상 대치하지 않고 타결에 이른 것은 정부의 원칙 고수의지가 완강했던데다, 파업참여 조합원 이탈 가속화로 노조의 협상력이 떨어진 점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 합의내용 뭔가?=노조는 관치금융청산 철폐를 위한 특별법 제정은 포기하는 대신 앞으로 은행의 자율경영을 규제하는 과다한 법령이나 규정을 규제개혁 차원에서 일소하고 이를 총리령으로 명문화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금융지주회사제는 애초의 정부 방침대로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정부와 노조는 또 자기자본비율이 자구노력으로도 8%(6월말 기준)에 미달되는 은행들에 대해서는 먼저 공적자금을 투입해 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린 뒤, 지주회사 산하의 자회사로 편입시킨다는 데 합의했다. 지주회사제 대신 공적자금을 얻은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한빛·조흥·외환 등이 대상인지 여부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어느 은행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며 “오는 9월쯤 경영평가위원회를 만들어 대상은행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책임에 의한 은행부실을 정부가 책임지라는 노조의 요구에 대해서는 정부가 러시아에 제공한 경제협력차관 가운데 미상환금액 13억달러와 수출보험공사의 대지급금 4800억원, 종금사에 지원했다가 예금보험공사로 이관된 4조원 등을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해결해주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지방은행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예금부분보장제 실시와 관련한 것이다. 정부는 예정대로 내년 1월에 실시하되 금융개혁의 정도와 자금이동 상황을 감안해 보장한도에 대해서는 오는 9~10월쯤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 타결 의미=양쪽이 전격적인 합의를 봄으로써 정부는 앞으로 구조조정이라는 큰 틀을 사회적 합의 속에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좀더 강력한 추진력을 갖추게 된 셈이다. 금융지주회사법이라는 보루를 지켜내고, 금융구조조정이라는 대원칙에 대한 노조의 공감을 끌어냈다는 점이 큰 힘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최근 의사폐업 등으로 정책수행 의지와 능력을 비판받아오던 정부는 가장 뜨거운 현안 가운데 하나였던 금융구조조정과 관련한 논란을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결실을 거뒀다.

금융노조로선 애초 요구한 △관치금융청산 특별법 제정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유보 등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실리를 얻었다. 관치금융의 존재를 인정받는 데는 실패했지만 앞으로 정부 간섭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과, 예금부분보장 한도폭 재검토 약속 등이 파업투쟁이 끌어낸 성과다. 하지만 고용안정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사3] 이용득 위원장 일문일답

금융노동자 힘으로 관치금융 청산

정부와의 극적합의를 이룬 뒤 이용득(47) 위원장은 몸시 지친 표정이었지만 노조원들에게 “우리 금융 노동자들의 힘으로 관치금융 철폐를 이룩했다”며 파업 결과를 `승리’로 해석했다.

―고용안정이 보장되지 않았는데.

=정부가 강제합병을 주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절대로 강제합병은 없다. 이는 포괄적으로 고용 안정을 약속한 것이다.

―관치금융청산특별법 제정은 아예 언급이 없다.

=정부가 불필요하고 과다한 금융규제를 규제개혁 차원에서 일소한다고 약속했다. 앞으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금융노동자들의 힘으로 관치금융을 청산하게 된 것이다.

―정부의 관치에 의해 발생했다고 주장한 부실채무 해소방안은?

=가급적 이른 시일안에 처리방향을 결정하기로 했다.

―협상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정부쪽에서 실무자들의 협상 내용에 여러번 제동을 걸었다. 오후 4시께 협상장소인 명동성당 교육관에서 뛰쳐나온 것도 이헌재 재경장관이 전화로 협상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미 거의 합의까지 갔었다.

―결과에 만족하는가?

=만족한다. 믿고 따라준 조합원들에게 고맙다.

이 위원장은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74년 한빛은행 전신인 상업은행에 입사해 81년부터 이 은행 노조를 통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금융노련 부위원장 시절인 지난 90년에는 노동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1년간 동남아로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지난해 금융노련 위원장을 맡은 뒤 이번 총파업을 진두지휘했다.

[기사4] 2년전 ‘퇴출’ 은행원 김상구씨의 항변

“한꺼번에 그많은 희생 치르고도 달라진게 없으니 말이 됩니까”

김상구(39·사진)씨는 2년전 이맘때 자신을 비롯해 1400여명의 직장동료들과 함께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렸다. 김씨는 당시 충청은행 대전 태평로지점 대리였다.

퇴출과 함께 대출금 따위를 정산하고 김씨가 아내 손에 쥐어준 돈은 300만원. 그 뒤로는 아내가 영업사원 일을 해서 생계를 책임지고, 김씨는 생업과는 거리가 먼 충청은행재건동우회 사무국장 일을 하고 있다.

“2년이 지나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5개 은행 직원들이 한꺼번에 희생을 치르고도 달라진 게 없다니….” 금융노조의 파업 결정 소식을 듣고 10일 서울에 올라온 김씨는, 11일 하룻내내 엎치락뒤치락이 하던 노-정협상을 지켜보며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김씨가 불안해 하는 건 또다시 많은 은행원들이 일자리를 잃는 사태를 예상해서 만은 아니다. “1차 구조조정에서 은행에 비정규직 직원이 늘어나고 노동강도가 세진 걸 빼면 남은 게 있습니까. 100조원이 넘는 국민 혈세를 쏟아부어 헐값에 외국자본에 팔아넘기는 게 구조조정입니까. 그러면서 은행장 인사는 ‘낙하산’을 고집하는 까닭은 뭡니까.”

김씨는 “정부도 밀어부치기만 할 게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은행노동자들과 마음을 열고 충분한 논의와 설득과정을 거친 뒤, 금융지주회사 설립 뒤의 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노동자들도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5] 왜 발표 하루 늦춰지나?

정부와 금융노조가 합의내용을 12일 오전 노사정위원회가 발표하기로 한 속내는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연세대에 조금은 흥분상태인 조합원들이 잔뜩 모여있는 상황에서 자칫 발표내용이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생길 수 있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한 게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와 노사정위쪽 설명은 다르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노조쪽에서는 위원장이 연세대로 가서 조합원들에게 합의내용을 설명하기 때문에 발표를 늦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부와 협상중재자였던 노사정위원회쪽 사정 때문에 공식발표를 하루 늦췄다는 것이다.

금융노조와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노사정위 의결을 거쳐 발표하자는 제안은 김호진 노사정위원장이 내놓았다. 정부와 금융노조간 갈등이 노사정위 금융특위에서 논의되던 사항이었던 만큼 마무리도 노사정위를 거쳐 최종합의를 도출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게 그 이유였다고 한다. 노사정위로서도 생색나는 모양새다.

정부 역시 노·정간 직접협상에 따른 합의문을 남기는 것은 자칫 `좋지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부담스러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상황이 급박해 정부각료들이 협상에 나섰지만, 정부정책은 협상대상이 아니라는 큰 원칙은 훼손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사정위에서 노동계가 요구하고, 금감위가 받아들이기로 해 노사정위가 의결하는’는 식으로 마무리짓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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