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28일 진압 직후의 호텔내 전경 (오마이뉴스)

지난 6월 29일 호텔롯데 노조파업에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경찰 음주진압, 임산부·장애인 폭행 등 충격적인 고발이 있었으나, 이같은 사실을 최초로 보도한 MBC는 경찰특공대의 정정보도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여 7월 19일 ‘특공대는 통로만 개척하고 폭행을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정정보도를 하였다. 그후 이 사건은 세간의 관심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당시의 공포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편집자주>

호텔 롯데 노조원들이 MBC의 경찰특공대 관련 ‘정정보도’에 반발, ‘솔개’ 부대의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증언에 나섰다.

노조원 이은(잠실 면세점), 강성호(객실팀) 씨 등 96명은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며 야수같이 날뛴 솔개부대가 폭행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라며 “언론에서 이 문제를 면밀히 조사, 보도해 주길” 희망했다.

당시 36층 샤롯데 룸에 있었다는 이은 씨는 “29일 7시 15분경 ‘뚫렸습니다’는 동료의 다급한 소리와 동시에 하얀 헬멧을 쓴 경찰이 ‘야, 이 새끼들아. 니네 죽고 싶어? 대가리 박아. 대가리 드는 새끼 다 뽀개버릴거야’ 등의 욕설을 하면서 노란색 쇠파이프를 휘둘러 남자 조합원을 개패듯 팼다”고 당시 상황을 말했다. 이씨는 “(누군가) ‘허리 아프다’는 말을 하자 ‘시끄러, 이 새꺄!’하며 ‘퍽! 퍽!’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솔개부대의 무지막지한 초동진압을 증언했다. 나중에 같은 층의 밸뷰룸으로 오리걸음으로 이동한 이씨는 “임산부가 있다는 말에도 경찰은 머리를 박고 있는 조합원들을 밟고 다니며 마구잡이로 쇠파이프를 휘둘렀다”고 치를 떨었다.

“고개만 쳐박고 있는데 ‘솔개 빠져, 솔개 2대 빠져!’라는 무전후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의외로 조용해져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1023’이라고 표시된 방패를 든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쌌다”고 한혜수(객실팀 교환실) 씨는 밝혔다. 특히 김은정(잠실 면세점) 씨는 “우리가 경찰이 너무 심하게 한다고 항의하자 나중에 들어온 전경이 ‘우리가 안했어요. 우리 아니예요’라며 존대말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36층 중앙통로에 있다가 같은 층 밸뷰룸으로 피신한 김재훈(잠실 식음료부) 씨는 “초기에 들어온 부대는 파란색과 하얀색이 반반 칠해진 헬멧, 검정티셔츠에 청바지, 가슴보호대, 팔꿈치·무릎보호대를 착용해 나중에 들어온 경찰과 확연히 구분됐다”고 밝혔다.

동료 4~5명과 함께 37층 주방쪽에 있었다는 이우곤(본관 시설부) 씨는 “처음에 들어온 경찰이 ‘솔개 빠져!’ 등이 무전이 오고갈 때, 37층 벽에 있는 과일주를 보고 ‘술 많다, 이거 가지고 가자’ 면서 술을 가져갔다”고 증언했다.

한편 롯데 노조원들의 솔개부대원 폭행 증언에 대해 경찰청 경비1계의 진압반장 김상준 경감은 “공식입장은 이미 발표한 그대로”라고 밝혔다.

(인권하루소식/심보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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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원 증언 모음-호텔롯데 36·37층 상황> (인권하루소식 7월 27일)

6월 29일 새벽 4시 경찰 투입 이후 36·37층에는 각각 5백여 명정도의 노조원이 있었다.

경찰투입 전에 이 곳에서 자고 있던 노조원 5백여 명과 경찰 투입이후 2층에서 노조원 5백여 명이 더 올라왔다(잠실 연회팀 성기안).

36층의 여성노조원들은 샤롯데 룸, 로비 등에, 37층의 여성노조원은 주로 펄 룸에 있었고, 남성 노조원들은 밑에서 올라오는 세 개의 통로를 의자, 테이블 등으로 막았다.

6시 30분경 이 곳의 상황은 ‘저항해봐야 소용없다’, ‘저항하다가 시간이 지연되면 날이 밝아져 경찰이 포기할 것이다’는 논의가 분분할 정도로 비조직적이었다.(본관 시설부 이우곤)

7시 15분 경에 36층 백남빌딩 쪽 통로가 맨 먼저 뚫리고, 이어 18분 경에 신관통로 쪽으로 경찰이 들어왔으며 중앙 게스트 엘리베이터 쪽(중앙통로)을 21분 경에 경찰이 뚫고 들어왔다.(잠실 연회팀 성기안)

백남빌딩 쪽 통로로 들어온 경찰은 미처 엎드리지 못한 여자한테도 군화발로 짓밟고, 동색의 긴 파이프로 마구 휘둘렀다. 여자들 속에 있던 남자를 발견한 경찰은 여자들은 마구 짓밟고 들어가 그 남자를 패서 끌어냈다.여성 조합원을 보호하려 온몸으로 감싸주던 남자 조합원에게 여러 명이 한꺼번에 몽둥이를 휘둘러 그 조합원이 몸을 비틀며 고통을 호소하는 걸 보고 광주항쟁의 기억이 떠올랐다. (객실팀 프론트 담당 김희정)

36층을 진압한 경찰은 백남빌딩 쪽 비상사다리, 신관쪽 비상사다리와 36층에서 37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통해서 7시 45분경에 37층으로 진입했다. 37층은 특히 여성조합원이 많았고 이들은 대부분이 펄 룸에 집결해 ‘공권력 철수’ 등의 구호를 외치고, 노동가요 등을 부르고 있었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경찰이 시민을 의식해 자진 철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때까지 버텨보자고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본관 시설부 이우곤)

37층에서 바리케이트를 치는데 건너편에서 ‘상황 끝’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고 그랬더니 ‘솔개’라고 대답했다. 비상사다리 쪽에서 솔개부대가 이미 대기중이었다.(고인수)

7시 45분경 방어벽이 무너지고 4~5미터 정도되는 불기둥이 앞으로 치솟았다. 경찰 2명이 뛰어 들어오며 ‘대가리 쳐들면 찍어버려, 머리 쳐들면 눈알을 파버려’라는 욕을 하며 쇠파이픈지 곤봉인지로(머리를 못들어 군화발만 봤음) 고개숙인 머리위를 마구 훑었다. 또 밖에서는 남자 직원의 비명소리가 연신 들렸다. 펄 룸 안에서는 군화발로 앞사람의 발을 차고 등을 밟았다. 아비규환이 바로 이런 거라고 생각했다.(잠실 면세점 백윤희)

’37층 진압완료, 솔개 빠져!’라는 소리가 들린 지 잠시후인 8시경에 다른 전경이 들어와서 상황이 조금 진정됐다. 이에 한 직원이 너무 심한 폭력에 항의하는 투의 질문을 하자, 전경이 “우리가 때린 것 아닌데요”라고 존댓말로 말했다.(잠실 면세점 정향숙)

니년들 때문에 잠도 못잤다. 집구석에 있지 왜 나와서 우리 고생 시키면서 지랄이냐고 “씨발년들”하며 방패로 무조건 찍었다.(객실 관리과 신명숙)

“솔개 철수해”라는 말이 들렸으며 기자가 들어와 후레쉬를 터트리며 현장을 찍기에 바빴고 한 부대원이 “그만해 기자들 들어왔쟎아”하자 조금 진정되었다.(잠실 식음료부 김재훈)

<“너무도 기막히고 억울하고 서러웠다”> (인권하루소식)

이 은(호텔롯데 잠실 면세점) – 맞춤법 등 고려않고 원문 그대로 게재: 편집자

계속되는 연막탄, 섬광탄, 공포탄 등으로 인해 숨이 막혀 몇몇 남자동지가 “뚫렸습니다. 뚫렸으니까 시키는대로 하십시오. 반항하면 맞습니다. 시키는대로 하고 앉으세요”하는 말과 동시에 계속되는 연막탄과 함께 하얀색 하이바(헬멧)을 쓴 거구의 특공대(?)가 들어왔고 쇠파이프가 휘둘러지면서 그 위에서 말하던 남자 동지가 개 패듯이 맞았고 그걸 보고 소리지르는 여직원들에게도 몽둥이 세례는 가해졌다. “야. 이 새끼들아. 니네 죽고싶어? 대가리 박아. 대가리 드는 새끼 다 뽀개 버릴꺼야 이 새끼야.” “내가 니 새끼들 때문에 36층까지 걸어왔어” 등등과 함께 군화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리고. 남자들은 거의 개패듯이 팼고 우리는 흐느낄 수조차 없었다. 또다시 몽둥이가 가해질까봐 ···.

한쪽 구석으로 몰린 상태에서 곁에 있던 여성동지에게도 군화발 세례와 몽둥이는 가해졌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등에 가방을 메고 있었기에 상처가 덜 났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많이 다친 사람도 속출했을 것이다. 하여튼 다른 ROOM에서도 진압이 끝났는지 오리걸음으로 큰 ROOM으로 이동했다. 그 사이에 복도에 쓰러져 피범벅이 되어있는 남

성동지를 보았지만 손길조차 뻗어보지 못한채 몽둥이와 군화발에 의해 이동되었고 그 큰 ROOM에는 대부분이 여자들이었다. 그 중에 끼여있던 남자들은 무자비하게 끌려나갔고 욕은 계속되었다. 누군가 “허리 아프다”는 남자동지와 “임산부 있어요”라는 말이 들렸지만 “시끄러워. 이 새끼야.”하며 “퍽!퍽!”때리는 소리가 들렸고 잠깐 후 기자들이 들어와 후레쉬가 터지며 바로 “솔개 빠져·솔개 빠져” “여자들은 때리지마!” “니네들 영창가고 싶어?”하는 소리(7시 40분경). (솔개부대에게 상황을 인수받은 경찰임 : 편집자) 그 다음에 좀 나이든 목소리의 남자가 “임산부 있으면 나오세요. 부상자 나오세요” “여러분을 때리려고 하는게 아닙니다. 안심하세요” 하며 존대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며, 그 놈들이 빠지면서 분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는 듯이 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아이씨. 이런 새끼들은 더 죽여놔야 되는데, 머리에 든 게 없어 이 지랄들이야.”

‘도대체 왜 우리가 뭘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런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아야 하나?’하는 생각과 함께 두 주먹 불끈 쥐었다. 그때 부턴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연속해서 터지는 카메라 후레쉬와 함께 여자들은 여경들에 의해 힘없이 이동되었고 그 여경들은 천사와도 같았다. 36층에서부터 줄지어 걸어내려오다. 중간 22층인가에서 내 앞부터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며 나부터 계속해서 걸어서 내려왔고 중간에 사복을 입은 기동대(?)인가 하는 건장한 남자들이 올라오며 우릴 보고 또 욕설을 해댔다. “얼굴 반반한 것들이 왜 지랄이야?” 등등···. 그리고는 1층으로 도착, 엄청난 전경들의 호위(?)를 받으며 닭장차 앞으로 갔고, 아마도 여자중에 제일 먼저였던 것 같다. 내가 탄 차는 끌려나온 우리 여자 7명이 합승했다(대략8시경). 차를 타고 그 분노로 떨며 밖을 쳐다보는데 호텔 주차장 화단 난간에 앉아 있던 사복의 남자 두명이 날 보며 했던 말, “저 고개 뻣뻣이 들고 가는거 봐!” 우리가 36층에서 “SOS”를 유리창에 쓰고 창 밖으로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던 상대는. 시민도, 기자도 아닌 사복 경찰이었다. 너무도 기막히고 억울하고 서러웠다. 그날의 기억은 내가 죽는날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답게 사는 게 뭔지, 파업을 통해 어렴풋이 알았다”> (인권하루소식)

“날이 밝을 때 까지만 견디면 경찰이 물러갈 줄 알았다”, “경찰 진압후 한 삼일정도 더 견디면 단체협상이 잘 마무리 될 줄 알았다”

백윤희(잠실 면세점) 조합원은 면세점에서 일하는 조합원의 파업 참가율이 아주 높아 보인다는 말에 “면세점에 근무하는 조합원들은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지금 대의원으로 활동하는 언니가 혼자 싸우다가 해고되고 복직하는 동안 우리는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며 “그 언니가 또 다시 다치는 걸 볼 수는 없었다”고 답을 했다.

면세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단체로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은경(잠실 면세점) 씨는 “오랜 파업이 힘들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평안해 보기도 좀처럼 없었다”며 “파업을 통해 다른 직종끼리 서로 반목하고 시기했던 것을 떨치고 같은 노동자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정향숙 씨는 “우리는 명동성당이나 집회장으로 출근한다. 이전에는 명동성당에서 농성하거나 집회에 참가하는 것이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교섭위원이기도 한 성기안(잠실 연회팀) 씨는 “우리 조합원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잘 버틸 것이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지대장들이 몇 명이 참가했다고 보고를 하면 도저히 믿기지 않아 집회장이나 시위대열에서 숫자를 세본 적도 있다”고 밝히기도.

“이번 파업을 통해 민주적인 노조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 조합원들이 깨달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이전 노동조합 집행부들이 얼마나 조합원들을 우롱했는가를 깨달은 것이란다.

성씨는 “이미 우리는 이겼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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