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여름휴가를 잊은 사람들
명동성당 농성장에서
작열하는 태양! 민주노총 단골 피서지?
새벽 두 세시 훌쪌 넘겨…”모기가 물어가도 몰라요”
올 여름에도 명동성당 어귀에는 천막이 늘어서 있다. 천막 앞, 그리고 파이프로 만든 계단 난간에는 ‘섬뜩한’ 사진들이 내걸려 있다. 지나던 사람들이 이따금 발길을 멈춘 채 ‘대학살’이라 이름 붙여진 사진벽보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 사진은 호텔롯데노조와 사회보험노조를 짓밟은 경찰이 무슨 짓을 했는지, 국민의 정부가 파업이라는 정당한 사회권을 행사한 노동자들을 어떻게 다뤘는지 생생이 보여주고 있다.
천막의 주인은 대부분 부당하게 체포영장이 떨어져 오갈 곳 없는 파업노동자들이거나 정치수배자들이다. 이들은 노동자들에게 오만하기만 할 뿐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려 않는 권력에 맞서 싸우고 있다. 권력만이 아니다. 아스팔트에 달궈져 푹푹 찌는 무더위와도 이들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성당어귀 맨앞에 자리잡은 건 민주관광연맹과 롯데호텔노조 천막이다. 그 뒤를 이어 민주노총과 매향리 폐쇄·한미주둔군 지위협정(SOFA)전면개정 범국민대책위, 보건의료노조, 한총련 정치수배해제 농성단, 사회보험노조 천막이 나란하게 어깨를 겯고 있다. 이 가운데 제일 ‘고참’은 한총련 수배자들. 길게는 수배생활 7년에 이르는 이도 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이 곳에서는 학생들로 불린다. 지난 5월16일 들어와 7월24일로 농성 67일째를 맞은 이들은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은 국가보안법 철폐로부터’라 쓰인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사회보험노조는 게 중 제일 ‘막내’다. 경찰력이 투입된 7월1일 들어와 안호빈 위원장 직무대행을 비롯해 4명의 수배자가 전국에 퍼져있는 사업장 상황과 거리선전전은 잘 되는지, 정당 항의방문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매일같이 점검하고 있다. 27일에는 전국의 조합원들이 상경해 노숙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조합원들은 이날 오전부터 2박3일간 국민의료보험공단 앞에서 집회를 갖고 민주노총 집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이 기간 동안 명동성당은 또 한번 노동자들로 빈틈없이 채워져 ‘공안탄압 분쇄’ 함성이 울려 퍼질 것이다. 안호빈 위원장 직무대행은 “우리보다 이틀 먼저 폭력경찰에 인권을 유린당한 호텔롯데노조와 자매결연을 맺을 계획”이라고 밝혀 투쟁 속에서 동지를 얻은 기쁨을 자랑했다.
민주관광연맹과 호텔롯데노조는 경찰투입 다음날인 6월30일 사회보험노조보다 하루 먼저 명동성당에 들어왔다. 7월13일 체포영장이 떨어진 연맹 조 철 위원장과 롯데노조 김경종 위원장 직무대행, 이남경 사무국장을 비롯해 5명이 천막을 지키고 있다. 김경종 위원장 직무대행은 경찰의 폭력진압을 저지르기 직전 조합원들이 호텔 천장으로 통하는 환기구에 숨겨주는 바람에 구속을 모면했다. 그는 9시간 동안 그곳에 숨어 있다가 극적으로 탈출해 롯데투쟁을 이끌고 있다.
한편 롯데 천막에 가면 김정근 민주노총 조직2국장을 만날 수 있다. 초기부터 롯데 투쟁에 결합하는 바람에 요즘 민주노총 사무실에 찾아와도 그를 만날 수 없다. 지난 7월10일에는 소공동 호텔롯데 앞에서 진격투쟁을 벌이다가 경찰이 내리찍은 무전기에 이마가 찢겨 얼굴이 피범벅이 됐는데도 다시 승합차 위로 올라가 투쟁을 지도했다. 민주노총 안팎에서 지금 그의 별명은 ‘호텔롯데노조 위원장’.
이들은 오전 10시 쟁의대책회의를 시작으로 밤늦게까지 회의 속에서 산다. 성희롱 고소고발, 구속자 대책, 회사쪽과 교섭 대응방안 등 쉽지 않은 문제는 쌓여있어 하루가 짧기만 하다. 저녁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조합원 정리집회가 열리고 사회단체나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등 지지·지원을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다보면 어느덧 새벽 두 세시를 훌쩍 넘기기 십상이다. 조 철 위원장은 아빠를 보고싶어 하는 두 딸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모기가 무는지 어쩌는지 정신없이 쓰러져 잔다”고 말했다. 원래 마른 체격인 그는 뙤약볕 집회로 얼굴까지 새까맣게 타 더욱 야위어 보인다.
매일 회의로 바쁘기는 보건의료노조 천막도 마찬가지. 차수련 위원장을 비롯해 나순자 서울본부장 등 모두 7명이 벌써 명동생활 52일째다. 차 위원장이 성당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노조의 주요회의는 모두 성당에서 이뤄진다. 깔판이 반듯하지 않은지 이들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두통과 허리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차 위원장은 “7월초 장기수 선생님들께서 맥을 짚은 뒤 약을 몇 재 지어다 주셔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뙤약볕 아래서 고생만 할 팔자인지 몇 해전부터 한여름만 되면 길거리로 나서 결국에는 명동성당에 찾아올 일이 생긴다. 국제통화기금(IMF) 원년이던 98년 여름에는 그 해 5월말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파업으로 노조 지도부에 대거 체포영장이 떨어져 명동성당에서 보냈다. 가족들과 시원한 휴가 대신 성당 시멘트바닥이 내뿜는 지열과 싸웠던 이들은 당시 금속산업연맹 위원장이었던 단병호 위원장, 유덕상 부위원장을 비롯해 25명이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의 ‘폭탄주 발언’이 터져나온 뒤 민주노총 모든 지도부와 산별연맹 지도부는 ‘공작적 노조탄압에 대한 진상규명과 관련책임자 구속처벌’을 촉구하며 단식투쟁에 들어가 빨리 찾아온 더위 속에서 20여일을 보내야 했다.
보건의료노조와 롯데노조 사이에 민주노총 천막이 있다. 롯데노조와 같은 날 명동으로 들어와 지난 7월18일부터 임원과 실·차장 1명, 사무총국원 2명이 한 조가 돼 천막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늦은 밤까지 계단에 둘러앉아 다음 날 투쟁에 대해 진지한 얘기를 나눈다.
그런데 이 고통스런 명동성당 천막농성도 이젠 ‘행복한 추억’이 될 것 같다. 민주노총 지도부와 산별연맹 대표자들은 27일부터 서울역광장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이 곳 명동성당보다 훨씬 힘든 곳이지만 공안탄압이 풀릴 기미가 안 보이니 더욱 강도 높은 싸움이 필요한 까닭이다.
몇 해째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켜보고 있는 고딕양식의 첨탑 시계가 자정을 알린다. 그러나 천막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은 꺼질 줄 모르고 있었다.
정경은 joungke@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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