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파리통신>

그 동안 한 달에 한 번 싣던 [홍세화의 파리통신]을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이번호부터 한 번 더 싣습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2주에 한 번씩, 홍세화님의 글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변함없는 성원을 바랍니다. 편집자.

민주노총 조합원님들, 안녕하신지요?

<노동과 세계>의 편집진으로부터 2주에 한 번씩 글을 쓰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나는 한참 동안 망설였습니다. 우선 <노동과 세계>의 귀중한 지면을 함부로 채울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4주에 한 번씩 쓰면서도 글 내용이 항상 미흡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해오던 차였습니다. 2주에 한 번씩 쓰게되면 더 미흡해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한테는 또 하나의 고민이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의 글이 과연 조합원님들의 머리와 가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가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특히 노동자의 생존조건들이 한국과 너무 다른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곳 얘기를 전하다 보면 자칫 ‘우리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얘기’이어서 허망한 감정을 주지 않을까 싶고, 나아가 ‘언제나 우리는 프랑스처럼 될 수 있겠나’하고 아예 포기하고 싶은 감정을 주지 않을까 싶어 항상 조심스러웠던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프랑스의 ‘기업가운동'(Medef : 한국의 ‘전경련’과 같은 것입니다)과 개량적 노조인 ‘프랑스민주노조'(CFDT)는 ‘PARE’라고 불리는 새로운 실업보험제도에 합의, 서명했습니다. 여기에 노동총동맹(CGT)과 ‘노동자의 힘'(FO) 노조는 서명하기를 거부했지요. 그런데 프랑스의 사회당정권 또한 이 합의문에 인증서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PARE가 실업자들을 둘로 나누고 그 중 장기실업자들을 더욱 사회추방으로 몰아간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100조원이 넘는 돈을 부실기업이나 은행 때문에 쏟아 부으면서도 사회보험에 약속했던 7천억원 지급을 거부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처사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얘기를 조합원님들께 전하기에 앞서 나 자신부터 비애감에 젖게 되는 것입니다. 그 위에 사회보험 노동자 한 분이 생존권 투쟁 중 비명에 저 세상으로 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면서는 비애감을 넘어 분노의 감정까지 치솟았습니다. 그러나 비애감과 분노는 그 자체로 사회 정의를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한 감정을 어떻게 운동 조직의 단결과 추동력으로 승화시키는가가 중요한데 먼데서 보내는 내 글이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컸던 것입니다.

이런 고민들 때문에 주저했지만 그보다는 조합원님들께 가까이 가고 싶은 바램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2주에 한 번씩 조합원님들께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또 앞으로는 차가운 칼럼 형식보다는 가까운 벗에게 보내듯 -실제로 나는 조합원님들을,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까운 벗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편지형식으로 쓰려고 합니다. 그리고 먼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로 시작하려 합니다. 비록 시시콜콜한 신변잡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 나의 생활이 있고 그것을 통해 프랑스의 구체적 현실이 드러날 수 있으며 또 한국의 현실에 대한 나의 생각이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보다 솔직한 모습으로 조합원님들과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지난 일요일(9월24일)에는 프랑스에서 국민투표가 있었습니다. 현재 7년인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줄이는 헌법안에 대해 찬부를 묻는 것이었지요. 프랑스 사상 유례가 없는 70 퍼센트의 유권자가 기권했는데 투표자 중 70%를 조금 웃도는 찬성으로 헌법안은 통과되었습니다. 이 국민투표에 대하여 ‘노동자의 힘’당의 대표인 아를렛트 라기예(여성)는 ‘우리를 조롱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하든 7년으로 하든 노동자의 현실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면서 그런 것보다 민생문제 중에 국민투표에 붙여야 할 사안이 쌓여 있다고 항의했던 것이지요. 하물며 한국의 노동자에겐 그런 얘기들이 무슨 상관이 있을런지요? 이 일도 틀림없이 한국신문에 보도되겠지만 말입니다. 실상 그런 얘기들보다는 한국의 사회현실을 바라보며 프랑스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의 구체적 체험과 느낌과 바램이 민주노총의 조합원님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나는 2년쯤 뒤에 영구귀국하여 조합원님들 곁으로 다가갈 예정입니다. 귀국하여 구체적으로 어느 부문에서 일할 것인지는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가지, 귀국하는 대로 민주노동당의 평당원으로 등록할 것이며, 소정의 당비를 내겠다는 것만은 정해져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겠다는 것은 나의 당연한 정치적 선택이며, 평당원이 되겠다는 것은 현장에서 오랜 동안 떨어져 있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백의종군을 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며, 또 내 정서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소정의 당비를 내겠다는 것은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는 당연한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2주 후에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를 이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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