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경유착-남북대결을 기리자고?
“극복과 청산의 대상일 뿐”…건립반대 국민연대 활동시작
한 때 박정희 대통령이 최고급 승용차인 ‘롤스로이스’를 타지 못한 이유가 장안을 떠돌았다. 얘기인 즉 “박정희 같은 독재자에게는 차를 팔 수 없다”는 롤스로이스 제작사의 방침 때문이라고 했다. 진위 여부를 떠나 그만큼 박정희는 국내외에 인권과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자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다’고 죽은 박정희가 살아 있는 김대중 대통령 위에 있다. 김대중 정부는 올해 국민세금을 1백억원이나 퍼부어 독재자의 기념관을 서울 상암동에 짓겠다고 발표했다. 김대통령은 박정희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고 건 서울시장은 상암동에 5천평이나 되는 부지를 내줬다. 김대통령은 이른바 ‘동진정책’의 하나로 히틀러나 피노체트와 다를 바 없는 ‘희대의 독재자’에게 기념관을 헌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김대통령에게 오랜 기간 우호적이었던 ㅎ신부 등 여러 재야인사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고 건 시장의 경우 박정희 재임 때 핵심 수석비서관을 지낸 이력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여야간의 정쟁으로 텅 비어 있는 국회도 영수회담을 계기로 개원할 경우 별 이견 없이 기념관 건립을 통과시킬 전망이다. 국민이 끌어내린 이승만 전대통령의 동상을 세운 국회였다. 한 손으로는 박정희를 비롯한 군사독재가 죽인 넋들을 위해 민주화운동보상법을 제정하고 기념사업을 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그 원흉을 기념하는 역사적 모순을 후세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안고 지난 9월28일 민주노총, 참여연대를 비롯해 2백47개 시민사회단체가 총망라된 ‘박정희기념관 반대 국민연대’가 출범했다. 국민연대는 이날 결성선언문을 통해 “박정희는 결코 기념할 인물이 아니라 식민지와 분단, 남북대결로 이어진 오욕의 20세기를 극복하고 21세기 새 지평을 열기 위해 반드시 극복·청산돼야 할 대상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광주에서 올라온 한 재야운동가는 “독재자 기념관이 건설된다면 윤봉길 의사가 그랬듯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심정으로 폭탄을 투척해서라도 저지해야 한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국민연대는 이어 10월5일 집행위 수련회를 통해 반대서명, 단체별 국회앞 순회집회 등 향후 투쟁계획을 짠다.
그러나 국민연대가 넘어야 할 벽은 그리 간단치 않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정희에 대한 찬반은 언제나 8대2로 앞선다. 국민들은 기념관을 국고로 짓는다는 문제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다. 국고지원 뿐 아니라 기념관 건립 자체가 역사적 오류임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득하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 사회에서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는 ‘박정희 추종자들’과 싸우는 것도 만만찮은 과제다. 이들은 박정희 집권 20여년 동안 군국주의, 성장주의, 왜곡된 반통일적 가치관, 고질적 정경유착, 족벌경영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회악을 찬양해마지 않던 자들이다. 이들은 이미 박정희인터넷기념관(http://www.516.co.kr), 대통령박정희기념관(http://kumi.presidentpark.or.kr) 등 사이버공간에 각종 기념관을 지었다. 이들은 박정희 비판세력에 대해 사이버테러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시 쿠데타추종세력답다는 평판을 낳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해 8월 ‘이달의 친일인물’로 박정희를 꼽았는데 이 연구소 홈페이지가 해킹을 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박정희 추종자들이 내세우는 경제기적은 오늘날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불러와 나라를 경제식민지로 전락시켰다. 반민특위가 좌절된 뒤 4·19와 5·16이 모두 혁명이라는 역사왜곡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 박정희기념관 건립반대투쟁은 역사투쟁이다.” 서우영 국민연대 사무처장(민족문제연구소)이 힘주어 말했다.
정경은 joungke@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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