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선을 보는 또 다른 눈

진보후보 네이더,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주목

2000년 미국 대선은 민주당의 고어와 공화당의 부시 사이의 엎치락뒤치락하는 혼전으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재채기 한 번에 세계 민중이 혹독한 독감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이는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고어와 부시의 이전투구 뒤켠에서는 이제까지와는 뭔가 다른 흐름이 감지된다. 그것은 녹색당 대통령 후보로 나온 랄프 네이더의 선전이다. 네이더는 60년대에 미국의 독점기업들이 생산한 자동차 제품이 얼마나 소비자를 우롱하고 있는가를 폭로해 미국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전설적 소비자운동가다. 최근에는 노동조합과 사회운동단체들이 벌이는 세계화 반대 투쟁에서 지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96년에도 녹색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는 그는 올해 초 한때 7%에 육박하는 지지를 얻기도 했고, 민주당 주류에게 실망한 거대 산별노조의 지도자들한테서도 우호적인 반응을 얻었었다. 지금은 두 선두주자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래도 최근 미국 대선에 출마한 진보적 후보들 중에서는 가장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다.

바로 이 네이더 후보를 둘러싸고 미국의 진보진영 안에서는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민주당의 고어를 ‘비판적으로 지지’할 것이냐, 아니면 네이더라는 진보진영 ‘독자후보’를 지지할 것이냐 하는 논쟁이다. 네이더 뒤에는 녹색당뿐만 아니라 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다양한 사회주의자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노총(AFL-CIO) 지도부는 여전히 비판적 지지 입장이다.

고어 지지자들의 주장은 고어 지지가 “덜 나쁜” 선택에 불과할지라도 어쨌든 “덜 나쁜” 선택임에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악을 방치하는 당(민주당)”과 “더 많은 악을 만들려는 당(공화당)” 사이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나마 남아 있는 사회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기독교 광신도들의 진출을 막기 위해서, 클린턴이 추구한 정도의 평화정책이라도 지속시키기 위해서 고어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지명권을 지니는 대법원 구성을 진보 진영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가운데 그나마 미국 사회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네이더 지지는 오히려 부시 당선에 도움을 줄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네이더 진영의 대꾸도 만만찮다. 이들은 고어 지지자들의 주장이 결국은 “체제에 대한 도전은 체제를 더 나쁘게 만들 뿐”이라는 협박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고어 지지자들은 진보파를 자처하지만 사회의 진보적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지 못한다. 이는 조금 덜 타락한 정치인에 기대서가 아니라 사회운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고어 지지는 체제에 대한 지지다. 하지만 네이더에 대한 지지는 체제에 대한 유일한 대안, 즉 진보적 사회운동에 대한 지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어느 대통령 아래에서였는가? 민주당의 클린턴이 아니었는가? 더구나 클린턴 집권 말기에 콜롬비아 내전에 대한 군사개입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은 마치 케네디 민주당 정부 아래서 베트남 전쟁이 준비되었던 것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일 것인가?

사실 이 논쟁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다. 미국의 그늘 아래 신음하는 우리로서는 총 든 깡패보다는 몽둥이 든 깡패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미국의 두 깡패 중 하나가 온 세상을 주도하는 세계체제 자체다. 네이더 대선 운동은 비록 가능성의 차원에서이긴 하지만 이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안을 준비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우리에게 그런 것처럼 저 아메리카에서도 이는 바로 노동자·민중의 진보적 정치세력화다.

장석준(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 교육부장)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