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②
민주노총 조합원님들, 안녕하신지요?
멀리서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이 곳 파리의 날씨는 이제 완연한 가을입니다. 파란 하늘이 아니라 온통 잿빛 하늘의 가을이랍니다. 자주 불어대는 바람은 비를 몰고와 차가운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중충하고 음습한 날씨는 내년 4월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나는 이 곳 날씨를 겪으면서 하나님이 그래도 조금은 공평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7개월 동안 햇볕 보기 어렵고 흐린 날씨가 계속된다는 것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2-3월에는 잿빛 날씨에 숨이 막혀 송곳으로 하늘을 뚫고 싶다는 환상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간혹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노천 카페는 멋이 아니랍니다. 햇볕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곳 사람들은 햇볕에 굶주린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흔히 남의 복은 커 보이고 내 복은 작아 보이며, 또 남의 불행은 작아 보이고 내 불행은 커 보이는 법인데, 우리의 파란 가을 하늘만큼은 큰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적어도 햇볕에 굶주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나는 2년 후에 귀국할 예정이며 귀국과 함께 민주노동당의 평당원으로 입당할 것이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이 곳에서 평범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아내의 예를 통하여 이 곳 노동자들의 봉급과 사회 보장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글을 쓴답시고 반실업 상태에 있는 나와 달리, 아내는 일주일에 35시간씩 일하는 정규 노동자로서 유명한 상표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 5일 동안 하루에 7시간씩 일하고 있지요. 꼬박 서서 일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면 몹시 피곤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아내의 봉급은 연 130,790프랑(실수령액. 98년 통계)인 프랑스의 사기업 봉급 생활자의 평균에 가깝습니다(공공기관 : 148,120프랑). 프랑스의 최저 법정 임금은 월 5800프랑(실수령액 기준)으로 평균 임금의 반을 조금 웃돕니다. 1프랑이 150원 가량이므로 프랑스 봉급 생활자의 평균 임금은 월 170만원 정도가 되는데, 프랑스의 일인당 국민 소득이 한국의 두 배 반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소득이 아닙니다.
그러나 봉급액의 크기만으로 단순 비교하면 큰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왜냐하면, 실수령액이 170만원인 봉급자를 고용하기 위해 회사가 지출하는 금액은 280만원 가량 되기 때문입니다. 즉 110만원 정도가 각종 사회보장비로 지출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을 합친 총소득을 통하여 보면, 45%라는 큰 비율의 금액이 세금과 사회보장으로 지출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봉급액과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사정은 바로 사회보장과 세금에 있으며, 그 차이에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교육비 무료, 의료비 거의 100% 보장, 비교적 탄탄한 실업보험과 연금을 받는 차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연금과 실업수당에 대하여는 생각지 않더라도 자식 교육비 걱정 없고 의료비 걱정 없는 것만으로도 생활상의 큰 시름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경제력이 한국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보장의 확충 의지, 그리고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사회보장비와 세금을 많이 내도록 하는 제도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프랑스는 지금의 한국보다 훨씬 낮은 소득수준이었을 때에도 사회보장은 탄탄했습니다.
프랑스의 이와 같은 소득균등과 사회보장은 노동자들의 자기인식, 즉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즉, 소득균등과 사회보장 수혜로 시민과 노동자를 구분할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파리에서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면 아내 같은 노동자들은 골탕을 먹습니다. 30분 정도 걸리는 출근 시간이 2-3시간까지 걸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파리 시민의 과반수 이상이 항상 파업 노동자에게 연대하여 찬성합니다. 이렇게 서로 연대하는 시민의식은 시민이 곧 노동자이며 노동자가 곧 시민이라는 자기인식이 바탕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대부분의 서울 시민들은 등을 돌립니다. 서로 연대하는 시민의식의 부족에서 오는 것인데 이것은 우선 시민과 노동자를 구분해 오던 타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랜 동안 ‘노동절’이라는 말 대신 ‘근로자의 날’이라고 강요해 왔듯이 한국의 지배계층은 노동이라는 말을 기피해 왔거나 그 의미를 축소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지금도 노동자를 단지 생산직 노동자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노동이란 ‘일한다’는 뜻인데 말입니다. 한국에서 요즈음 각광받고 있는 ‘시민운동’조차도 노동자와는 별 인연이 없는 것인 양 인식되고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시민이 곧 노동자이고 노동자가 곧 시민인데 말입니다.
아내의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저녁밥을 짓습니다. 주 5일 동안만입니다. 아내는 물론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나 또한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밥을 지어서가 아니라 글쓰기도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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