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지난 10월13일 김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발표되자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때만큼이나 온나라가 법석이다. 몇몇 식당의 때아닌 무료음식대접은 그렇다 치고, 언론은 ‘인동초 생애’를 재탕했고, 자본들도 뒤질세라 ‘노벨상 마케팅’에 나섰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이니 크게 축하할 만 하고, 그리도 염원해온 노벨상 수상자를 낸 나라 국민이 됐으니 뿌듯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마냥 축하하고 좋아하기엔 썩 마뜩치가 않은 게 솔직한 느낌이다. 수상자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어느 외신기자가 질문한 대로 DJ의 노동정책은 분명 노벨상과 어울리지 않는 까닭이다.

수상자 발표 다음날인 14일, 정부에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던 전교조 조합원 3백여명을 잡아 가두고, 알몸수색에 성희롱까지 저질렀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 96년 정리해고돼 10월16일로 1천4백일 째 고용승계투쟁을 벌이고 있는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올 한해에만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매 2백86명을 구속했고, 생존권을 지키려 싸운 노동자 20여명을 가뒀으며 또 다른 수십명을 뒤쫓고 있다. 넉 달 전에는 정당한 파업을 벌이고 있는 호텔롯데와 사회보험노조 조합원 4천여명을 닥치는 대로 패며 잡아가뒀고, 집회를 열어 공안탄압 분쇄를 외치는 노동자들을 매번 온 몸이 찢기고 멍들도록 때렸다.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위해 제 나라 민중을 제물로 삼기 시작한 지도 이미 오래다.

이처럼 ‘평화’나 ‘인권’은 간데 없고,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폭력’ 뿐인데 ‘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마냥 축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마치 잘못된 채점 덕에 우등상을 받고 좋아하는 꼴이다.

어린아이에게 ‘위인전’ 읽히기에 유난히 집착하는 우리사회의 독특한 풍토 탓에 어렸을 적부터 노벨상이 어떤 상인지 잘 알고 자랐다. 그래서 ‘노벨상’이 흔해빠진 연말 가수왕뽑기도 아니고, 관변단체들이 체면봐서 돌려가며 주는 표창장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DJ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더욱 개운치가 않다.

일말의 기대가 있다면 착한 일을 하라며 사탕을 받아쥔 어린아이가 부채의식에서라도 착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듯, DJ도 이번 수상을 계기로 ‘개과천선’하길 바랄 뿐이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나서서 ‘축하’하는 판에 흥을 깬 듯 하지만, 최근에 무려 한끼나 굶어가며 고려대 진입투쟁을 벌이다 DJ의 수상소식을 듣고 “상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고 논평한 자칭 민주주의 수호자, 바로 김영삼과 동급으로 분류되는 것이 다만 두려울 뿐이다.

이황미 leehm@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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