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③
안녕하신지요.
최근에 한국의 노사정위원회에서 주5일근무제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이제사 프랑스 노동자들이 1936년에 총파업 투쟁으로 획득했던 주5일근무제를 획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정부나 사측에서 번번이 노사정위 합의사항을 번복했거나 무시해 왔다는 점을 잊어선 안되겠지요. 입법화될 때까지 예의 주시하면서 계속 압력을 행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의 마지막 장으로 영혼, 또는 정신에 관한 얘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웬 영혼 이야기냐고 하실 분이 있겠지요. 하지만 ‘한국을 사세요!’라는 표어에 분노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영혼이며, ‘세계를 모두 상품화하려는 신자유주의’에 맞서기 위한 무기도 물질 아닌 인간의 정신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며칠 전에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금수선생이 <한겨레>신문의 가리사니 칼럼에 기고하신 <여자답게 살고 싶어라>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습니다. 전북 군산 대명동의 ‘쉬파리골목’ 화재 현장에서 안타깝게 숨진 매춘 여성 다섯명에 관련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글 내용 중에 이런 대목이 있더군요.
“현재 여성단체의 대략적인 추산으로는, 전국에 걸쳐 ‘향락업소’는 30만 곳이 넘고 여기서 일하는 여성은 120만명 가량으로 15-29살 여성 전체 인구의 20%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다섯 여성 중 한 명이라니! 나는 이 대목에서 분노와 슬픔에 그만 치를 떨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정치인이란 어떤 자들이며, 번영하는 교회란 무엇이며, 대학교수란 어떤 인물들이며, 글을 쓴답시는 나는 또 어떤 인간인가? 그 수많은 영혼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꽃다운 젊은 육체와 함께 피폐해지고 있는데… 눈물이 글썽일 만큼 기가 막혔습니다.
영혼이 피폐해진다는 것,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80년대 초중반이었지요. 전두환의 무리가 광주시민항쟁을 압살하고 폭압정치를 펴던 때였습니다. 몇 달 몇 년 동안 끝간데 없는 외로움과 무력감에 시달리면서, 그리고 남민전 동료와 선배들에 대한 죄의식으로, 쇠붙이 갈고리가 앙상한 뼈와도 같은 내 영혼을 후비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었습니다. 그렇게 영혼이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래, 나에겐 아무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 그렇지만 내 영혼만큼은 가난하지 않다!” 이렇게 혼자 외치기도 했는데 실상 그 외침은 하루하루 피폐해지고 있는 영혼을 간수해보려는 안간힘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처절하다면 처절했던 자각 증세가 없어지게 된 것은 독일 땅에서 한국 출신의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나면서, 또 나 자신 택시운전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지금은 거꾸로 내 영혼에 살이 찌거나 기름기가 끼고 있는 게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곤 합니다. 책을 낸 뒤 제법 유명해졌다는 것이 자칫 그렇게 될 소지를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자각 증세가 없어서 더욱 경계하고 있는데 자각 증세 없이 살이 찌고 기름기가 끼고 있다면 더욱 치유하기 어려운 병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혼 피폐의 경험은 나에게 아주 값진 교훈을 주었습니다. 이전부터 갖고 있긴 했지만 사회구성원들을 비참하게 만들고 억울하게 굴종시키고 급기야 영혼마저 피폐케 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투쟁 의식을 더욱 강고히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 시간에 20%의 젊은 여성이 ‘향락업소’로 나서야 되는, 이 지독한 모순과 불평등과 불의로 가득 찬 사회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우선 내 영혼이 내 육체에 침을 뱉을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읽은 글 중에 “신은 모든 인간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의 탐욕도 만족시켜 줄 수 없다”라는 간디의 말이 있었습니다. 신조차 단 한사람의 탐욕을 만족시켜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는가 봅니다. 우리의 싸움은 결국 이 탐욕과의 싸움일 것입니다. 가진자들의 탐욕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욕심과도….
지식을 가진 자들도 그 지식을 사회개선과 변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보단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유리한 자리매김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있는 듯합니다. 나 또한 오늘도 무엇인가를 알기 위하여 읽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많이 공부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도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만, 그 앎을 통하여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지, 진정 한국사회의 개선과 진보를 도모하려는 글쓰기를 위한 것인지 스스로 묻습니다. 내 영혼은 그것이 나의 유리한 자리매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진보와 개선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 또한 욕심을 갖고 있는 인간인지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자신을 거듭 돌아보면서 자기 검증하려 노력할 뿐입니다.
이상이 오늘 전해드리고 싶었던 영혼 이야기였습니다. 조합원님의 영혼은 단아하면서 굳건하기를 바라면서 이만 그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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