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어느새 강건너온 성폭력
파업 1백40일째를 넘기고 있는 이랜드에서 불거져나온 ‘성폭력 시비’는 우리사회에 성폭력이 지독히 일상화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은 지난 5월17일부터 7월31일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1박2일 일정의 ‘서비스 역량강화 훈련’이란 이름으로 휴전선 근처의 한 부대를 다녀왔다. 이 부대에서 장병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문제는 이 사진을 소개한 이 회사 사보의 내용. 사보는 이들 사진에 ‘두 미녀를 내 품안에?’, ‘미녀들 사이에 멋진 청일점’, ‘앗, 아무리 좋아도 너무 잡아당기지 마세요’, ‘미인은 뭘 입어도 예쁘다니까’ 등의 낯뜨거운 설명을 달았다. 여성노동자들이 이를 강력히 항의하자 사보 담당자는 “그게 왜 성폭력이냐”며 되레 “명예훼손 당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를 어찌 봐야 하나. 지난해부터 시행된 고용평등법과 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직장내 성희롱은 ‘사업주, 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성적 언어, 행동 등으로 또는 이를 조건으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거나 또는 성적 굴욕감을 유발하게 하여 고용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유형별로 성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주겠다고 강요하거나 이를 받아들였을 경우 이익을 준다고 하는 고용조건형,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불쾌감과 모욕감을 받게돼 노동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상황의 노동환경형이 있다. 행위별로 나눈 성폭력은 육체적 행위, 언어적 행위, 시각적 행위 등 포괄적이다.
여성들은 직장에서 남성상사나 동료노동자들로부터 회식 때 옆자리에 앉기를 강요당해 왔고, 몸을 맞댄 채 춤을 춰야 했으며, 신체와 관련된 음담패설을 들어왔다. 이를 거부할 경우 승진제외 등 여러 형태로 압력을 느껴왔던 것이다.
여성단체들에 따르면 한국은 성폭력이 세계 1위 수준이라고 하니 이같은 작태가 한국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같이 광범위한 성폭력이 진보진영 내부에서마저 제기되고 있다니 매우 충격적이다. 그동안 노조는 이 문제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고, 일부 노조는 교섭이 벽에 부딪쳤을 때 직장상사의 성희롱 문제를 돌파용 ‘카드’로 쓰는 경우가 간혹 있어 여성계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 진보진영내에서 성폭력 추문이 불거져나와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에 따라 노조가 조직 안팎으로 성폭력근절을 위한 대책위를 꾸리고 노사교섭에서 이를 적극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내부성찰보다 외부의 고발이 있어야만 조직이 움직인다면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며 진보성을 의심받게 하는 일이다. 인구 절반이 당하고 있는 문제를 언제까지 모른 척할 것인가.
정경은 joungke@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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