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보험아줌마’의 하루>

“인간대접을 받고 싶었다”

조회 ‘다금침’으로 시작해 마감 ‘추궁’으로 끝나

‘자가보험’ 때문에…남는 건 옷, 신발, 해약보험증

대한생명 보험설계사 장씨는 아침 9시반 전에 영업소로 출근한다. 처음 하는 일은 영업소장의 책상을 치우고 재떨이와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이다. 왜 그런 일까지 하느냐고 묻자 “물론 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젊은 사람들한테 이런 일 시키면 되겠어? 나이든 내가 그냥 하고 말지”라고 대답한다. 그의 나이는 이미 환갑을 넘겼다.

‘국기에 대한 맹세’로 하루 시작

9시반, ‘국기에 대한 맹세’로 조회가 시작된다. ‘오늘은 몇 건을 해라’, ‘언제까지 얼마를 해라’ 등 소장의 일방적인 업무지시나 ‘왜 이것밖에 못 했느냐’는 다그침이 전부인 조회는 11시쯤 끝난다. 장씨는 “보험회사 관련 책을 보니 미국에서도 설계사 1백명 중 출세한 사람은 5명뿐이더라”며 “저마다 그릇이 있고 그만큼 하는 것인데, 무조건 다그친다고 다 잘할 수 있겠느냐”고 푸념했다. “저 사람은 이만큼 했는데 너는 왜 이것밖에 못하냐고 그러면 딱 싫다”는 것이다. ‘증원하라’는 다그침도 고역이다. 보험모집할 사람을 데려오라는 것인데, 증원을 못하는 사람은 조회 때마다 무안을 당함은 물론 별도교육까지 받아야 한다.

조회가 끝난 뒤 ‘개척’을 나간다. 계약을 맺기 위해 고객을 만나러 사무실 밖으로 나온다는 뜻이다. 장씨는 대개 조회시간에 생각나는 사람부터 찾아 나선다. 많은 날은 하루에 10여 군데를 돌아다닌다. 그 중엔 사무실도 있어서 만나는 사람수로 치면 50여명에 이른다. 물론 회사에서 교통비를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니, 택시라도 한 번 탈라치면 하루에 쓰는 돈이 만만치 않다.

장씨의 방문에 사람들은 “안해요”, “바빠요”라며 피하기 일쑤다. 그래도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다. “나를 무슨 거머리나 거지 보듯 하면 ‘사는 게 뭔가’ 하는 생각에 기도 막히지. 그래도 난 신경 안 써. 내가 열심히 살면 되지 뭐.”

장씨는 열네살 때 이북에서 서울로 내려와 스물여섯에 혼인했다. 사업하는 남편과 오순도순 살며 세상물정 모르던 그가 보험모집인으로 나선 것은 지난 94년. 남편이 위암에 걸려 가진 현금을 치료비로 날렸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남편도 떠나고 무일푼이 돼 막막하던 터에 뜻하지 않게 보험금을 받게 됐다. 그제서야 장씨는 보험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고 한다. 미래를 위해 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보험가입을 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보험모집인이라면 제일 하층으로 보는데, 실제 그 사람들이야말로 개미처럼 일하는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을 존중해줘야 하는 거 아냐?”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근했다고 일당 까는데도 개별사업자야?”

장씨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보험이야기부터 꺼내지는 않는다. 우선은 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법이나 생선을 맛깔스럽게 조리는 법 따위의 사는 이야기를 나눈단다. 그래서 여러 차례 방문해서 친해진 다음에 보험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 보험가입을 권한다.

사람을 많이 만나다보니 이제는 관상도 볼 수 있다는 장씨. 보험모집 일을 시작한 뒤 맨 첫 계약을 맺은 고객은 양복점 재단사였다. 당시 양복점 사장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외면했지만 마음씨 좋은 재단사가 계약을 맺어준 것이다. “관상을 보니 사장님 될 상이더라고. 지금은 그 사람이 사장됐어”라며 흐뭇해한다.

다리 아픈 것도 아랑곳 않고 돌아다니면 어느덧 오후4시다. 사무실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하루 동안 받은 가입서나 설문, 고객자료 따위를 PC에 입력해야 하고, 무엇보다 일지를 써서 소장한테 결재를 받아야 한다. 일지는 월 단위, 주 단위로 계획을 세운 다음 매일 시간대별로 나누어 어디서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언제 어떤 계약을 맺기로 했는지 하루 업무를 빠짐없이 기록해야 한다. 계약계획이 없어도 다그치고, 계약을 이루지 못해도 추궁을 받는다. 완벽한 감시체계인 셈이다.

“사무실에 출퇴근 사인 안하면 결근했다고 하루에 3만원씩 까는데, 무슨 놈의 개별사업자는 개별사업자야? 게다가 우린 세금도 1백% 다 낸다고” 장씨가 목소리를 높인다. 그나마 ‘마감’이 있는 화요일과 금요일은 정신이 없다. 쉽게 말해서 얼마 짜리 보험을 몇 건 올렸는지 통계로 내는 것이다.

평가당하고, 무시당하는 건 못참아

한 두 시간 하루일을 정리하고 나면 명목상으로는 ‘퇴근’이지만, 집으로 가지 못한다. 다시 고객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집으로 찾아가 설거지를 해주기도 하고, 가게라면 일을 거들어주기도 한다. “우리집 아이들은 내가 그런 일까지 하는 거 몰라. 그래도 어떻해, 나중엔 다 계약 맺을 고객들인데…” 장씨가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밤 10시가 넘은 뒤다.

이렇게 해서 장씨가 받는 돈은 매달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1백20만∼2백만원 사이다. 같은 영업소에는 이십대 처녀부터 일흔 넘긴 할머니까지 일한다. 게 중에는 5~6백만원씩 버는 이도 한 둘 있지만 대부분은 60만원쯤 번다고 한다. 그나마 할당된 실적을 채우기 위해 모집인들은 온갖 종류의 보험에 가입하는 게 보통이다. 결국 월급 받은 돈으로 계약한 보험료도 다 못내기 일쑤다. 장씨도 한달 밀어 넣어야 보험료가 만만치 않다고 귀띔했다. 나중엔 보험료 부담을 이기지 못해 하나둘 해약하게 되는데, 그래서 나온 게 “보험설계사 몇 년 하면 남는 것이라곤 옷, 신발, 그리고 쓸데없는 보험 뿐”이라는 이야기다.

장씨한테 소망이 있다면 사람대접 받는 것이다. 늘 영업실적에 따라 평가당하고 무시당하는 게 참을 수 없다고 했다. 목표달성을 못했다는 이유로 아들 뻘 되는 영업소장이나 간부들한테 “집에서 밥이나 짓지 뭣하러 나오냐”는 말을 들으면 기가 막힌다. 그런데도 그만두지 못하는 건 ‘모집수당’ 때문이다. 보험모집에 따른 수당을 13∼24개월로 나누어 받도록 돼 있는데, 그만둘 때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몫인데도 전혀 주지 않는다.

장씨가 노조에 가입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지난 7월 노조 이야기를 듣자마자 곧바로 가입했다. “조합비가 얼마냐고 물으니 8천원이라데. 그 돈 떡 사먹었다 치면 인간대접 받는다는데 당연히 해야지.” 노조가입의 변이다. 예순을 넘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의 얼굴에서 ‘노동자’의 열정이 느껴진다.

이황미 leehm@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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