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근기법 유지되면>
아이들하고 시골 가서 자연학습도 하고…
“실노동시간 줄이고 남는 일자리는 비정규직에게 나눠야죠”
민주노총 주장대로 법정노동시간이 주44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줄어 주5일근무가 도입되면 권재동씨 가족의 생활상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케피코는 이미 단협으로 주42시간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권씨에게 당장 큰 생활상의 변화가 올 것 같지는 않다. 권씨는 “임금 깎일 염려 없이 주40시간제가 돼도 조합원이 돈을 벌기 위해 특근을 나온다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주5일근무 실시로 일손이 모자라면 우리 정규직이 초과근로를 할 게 아니라 실업자, 비정규직을 새로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초과근로를 권장하는 회사도 큰 문제지만, 실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노조가 조합원 의식을 바꿔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합원이 휴가를 안 쓰는 이유가 꼭 생계 때문만은 아니다. IMF 때 엄청난 임금타격과 생계곤란을 겪은 조합원들이 잔업·특근을 해서라도 불안한 미래를 ‘돈’으로 대비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는 것이다.
주5일근무에 그칠 게 아니라 주38시간이나 주36시간을 요구하며 계속 싸워나가야 한다는 게 권씨의 생각이다. “노동자들이 함께 일자리를 나누고 함께 먹고살기 위해서 내세운 게 주5일근무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 노동자만큼 세금 열심히 내는 사람이 또 누가 있느냐. 그런데도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며 “우리의 죄라면 투쟁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는 게 권씨의 항변이다.
휴일이 늘어나면 권씨가 하고 싶은 일은 거창한 게 아니다. 권씨는 “시골에 본가가 있는데 환갑이 넘은 어머니께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있다”며 “휴일이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일도 거들고 효도도 하고 싶다”고 말한다. 두 딸과 함께 시골에서 자연학습도 하고 여유 있게 대화도 나눌 수 있으면 하는 게 권씨의 소박한 꿈이다. 이렇게 된다면 권씨는 큰딸 기원이가 그토록 바라는 ‘책 읽어주는 아빠’, ‘약속을 잘 지키는 아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터의 인간관계도 바꿔내야 한단다. IMF이전 같았으면 매주 수요일은 ‘써클모임의 날’로 잔업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거의 모든 조합원이 잔업을 하기 때문에 노조의 ‘현장실천소모임’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권씨는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 대해 현장조합원은 관심조차 갖지 않는데 그 순간에도 자본가는 야금야금 치고 들어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근기법이 개악되면>
실제 줄어드는 건 일년에 8시간 뿐
월급은 1백만원으로 줄어…잔업·특근 밥먹듯 해야할 판
월차·생리휴가 폐지, 주휴무급화, 초과근로 할증율 50%에서 25%로 삭감 등 경총이 주장하고 있는 노동법개악에 대해 권씨는 “몇몇이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당장 권씨의 임금·근로조건의 악화는 말 그대로 심각하다. 현행 주42시간제(케피코)에서 주40시간으로 바뀌면 휴일이 26일(1년) 새로 생긴다. 그러나 월차휴가 12일이 없어지면 실제로 늘어나는 휴일은 14일이다. 그러나 시간으로 따지면 휴일이 되는 토요일이 4시간이므로 총 104시간이 늘고 월차휴가 폐지로 96시간이 줄어 연간 겨우 8시간밖에 단축되지 않는다. 케피코 여성조합원의 경우 경총 주장대로라면 생휴까지 폐지돼 오히려 연간 88시간의 노동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임금삭감효과는 더욱 심각하다. 권씨의 10월 급여를 기준으로 할 때 월차수당 약 5만원, 초과수당 약 10만원, 주휴무급화로 약 16만원 등 총 31만원 가량의 임금이 삭감된다. 따라서 실수령액 1백35만원인 권씨는 한달에 1백만원 남짓의 월급을 집에 가져갈 수 있다. 여성조합원의 경우 이 임금삭감율에다 생리휴가수당이 더 삭감된다. 이럴 경우 ‘특별히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하는 권씨라 할지라도 생계비를 보전하기 위해 잔업과 특근에 매달리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부인 서해숙씨는 “(임금삭감이) 그 정도면 아무리 소비를 아낀다고 해도 힘들다”며 “남편 건강을 위해 1년에 한번은 보약을 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권씨 부부는 막내 기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는커녕 큰딸 기원이를 유치원에 그만 보내야 하는지 고민에 부닥칠 지도 모른다.
노동현장은 더욱 삭막해지고 노조활동이 어려움을 겪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권씨는 “노동법이 개악된다면 IMF이후 안 그래도 잔업·특근이 늘어나는 판에 장시간노동으로 노동자들의 몸은 망가지고 산재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노조활동에는 아예 관심조차 갖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재철 leecc@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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