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타러가던 날, 월곡동에서는?

살인이 따로 없다.

언제나 그렇듯 그들의 ‘작전’은 한 치의 오점도 없이 ‘무사히’ 수행되었다. 철거깡패와 경찰은 한 몸이 되어 월곡 주민 30년 삶의 터전을 단 몇 분만에 무참히 짓밟은 것도 모자라 가히 ‘살인적’인 폭력을 행사했다.

지난 4일 경찰은 연막탄 등을 난사하며 월곡4동 철거대책위원회(철대위) 사무실을 기습철거, 당시 사무실에 있던 주민 4명과 학생 1명을 집단 구타한 후 연행,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했다. 비슷한 시각,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 수상을 위해 출국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4일 오전 7시경 월곡4동 철거대책위원회 사무실 앞. 근처 도로가 전면 차단되고 물대포가 장착된 포크레인과 소방차, 물차 등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경찰 500여 명과 철거깡패 400여 명 등 10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시꺼멓게 몰려왔다. 당시 철대위 사무실 안에는 단 5명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전쟁터에서 적을 잡기 위한 첩보작전을 방불케 했다. 경찰은 콘테이너 박스에 특공대를 투입하고 고공크레인에 매달아 철대위 사무실에 투입, 특공대는 연막탄을 난사하며 사무실 옥상에 내려 주민들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부녀자 2명이 실신하고, 철대위 원장이 허리 부상을 입었으며 한 명은 손이 군홧발에 짓이겨져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청년진보당 당원인 숙명여대 98학번 명효영(24세)씨는 콘테이너 박스에 감금, 집단구타를 당해 뒷머리가 깨지는 부상으로 6발을 꿰맸다.

11일, 종암경찰서 면회실에서 만난 당원 명효영씨의 얼굴은 부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머리 꿰맨 곳만 계속 치료받고 있다는 그는 밝게 웃었다. 구속 이유를 한 번 더 확인하고자 물어보니 “이유가 엄청 많대요”라며 일일이 열거하지 않는다. 그들의 구속 사유는 당시 폭력에 저항하며 화염병을 던졌다해서 방화 및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다.

면회 내내 밝게 웃으며 “걱정말라”는 말만 연발하는 그는 역시 장난스런 말투로 “되게 무서웠어요”라고 말하며 말끝을 올렸다. 공포스러웠던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는지 그의 얼굴에 아주 잠시 그늘이 스치는가 싶다가 금새 밝아진다.

주민과 그는 결국 모두 심한 부상을 입고 연행되어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조사를 받아야 했다.

전국철거민연합 이영미 사무차장에 따르면 경찰에서 치료는 물론 면회까지 시켜 주지 않았는데, 언론사 기자들이 경찰서로 들어간 후에야 면회를 허락했다고 한다. 11일 현재 종암경찰서에 수감중인 이들은 12일 서울 구치소로 옮겨질 예정이다.

전철연 이영미 사무차장은 ?현재 부녀자 2명을 제외한 3명은 모두 병원에서 입원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경찰에서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구속자 가족들과 상의해서 석방 투쟁 및 이후 투쟁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월곡 4동은 99년 재개발이 확정된 후, 공권력과 철거전문 용역회사를 앞세운 성북구청과 두산건설이 한 몸이 되어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철거를 진행해왔다. 철거 시작 3개월여 만에 대부분의 주민들이 쫓겨나고, 상가 몇 가구만이 남아서 철대위를 구성, 관할구청에 ‘가수용임대상가’를 요구하고 이주를 거부하며 ‘무시무시한’ 강제철거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이들이 요구한 이주비용은 최고 500만 원. 그러나 아무런 보상과 대책 없이 막무가내로 나가라고만 하던 구청은 결국 건물은 철거하고 사람은 구속해버리는 ‘간단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30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것이 죄가 되어 구속된 사람들.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한 점에도 어깨가 움츠려지는 한 겨울에 이들이 쉴 곳은 한 평도 안 되는 차가운 감옥이다.

이현주 /lhj@lef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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