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동권 쟁취를 위한 현장투쟁의 새로운 전환점을 위해

김철호 (회원/노동자건강사업단(준) 단장)

올 하반기 울산의 현대자동차 노조 정공본부에서 직업병인 ‘근골격계 질환’ 관련 56명에 대한 집단요양신청 투쟁을 전개한 이후 드디어 11월 하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41명이 이에 대한 직업병 요양판정을 받았다.

‘근골격계 질환’ 직업병 요양판정의 의미

현재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 근골격계 질환은 “손이나 신체부위에 반복적인 스트레스에 기인하여 점진적으로 발생하는 육체적 질환”이다(이외에 누적외상성질환, 직업성경견완장애, 직업성과다사용증후근, 반복성긴장상해 등의 의학용어 등이 이와 함께 사용되고 있음).

이러한 질병을 발생하게 만드는 직접적 요인으로는 과도한 반복동작(작업), 작업시 요구되는 과도한 힘, 부적절하거나 불편한 작업자세와 부적절한 휴식, 손과 팔부위의 과도한 진동 등의 작업환경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현재 직업 및 작업의 종류에 차이가 있지만, 대다수 직종별로 전세계적으로 작게는 5%에서 많게는 25%의 높은 발병률을 보이고 있으며, 계속 확산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5∼6년 동안 은행창구작업자, 전화안내원, 조선, 자동차 작업자 등을 중심으로 자각증상 조사와 건강진단 형태로 이루어져 왔으며, 정부는 그동안 컴퓨터 단말기 사용자 등의 서비스업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직업병을 인정하여 왔다.

이번 현대자동차 정공본부 노동자들에 대한 직업병 승인은, 우선 자동차 완성차-부품사업장을 위시한 ‘제조업’ 사업장 전반은 물론, 높은 노동강도와 과밀노동 상태에 처해 있는 많은 사업장에서 이와 관련한 ‘직업병 인정사례들’이 급속히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땅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90년대 초반 자본의 신경영전략과 IMF 이후 강화된 노동유연화 공세 속에서 인원감축과 불안정고용의 확대, 강화된 노동강도 속에서 전반적인 개악된 노동조건으로 고통받고 있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이미 계속되는 인원감축과 작업물량의 증가에 따른 노동강도 강화로 인해, 자신의 휴식과 건강을 돌볼 여유조차 없는 ‘파김치’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지난 3년 동안은 직접적인 생계에 맞닿아 있는 고용과 임금의 위기 속에서 자본이 강요하는 경제위기극복 이데올로기와 현장통제에 짓눌려, ‘건강문제’는 그야말로 뒷전으로 밀리며 산재를 당해도 자본의 눈치 살피며 스스로 은폐하는 일까지 당연되기도 했다.

노동조합 활동에 있어 고용안정과 임금인상, 건강한 노동환경은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동안 민주노조진영을 비롯한 많은 사업장에서 이 문제를 푸는데 있어 다분히 ‘임금인상 효과’-개별적인 경제적 손실보상의 논리로 이러한 사안을 대하여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용〉임금〉건강 순으로 진행된 양보교섭을 그 어느 집행부와 현장활동가들도 원치 않았지만, 대다수 사업장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이미 일반화되어 왔다. 그리고 지난 10여년 동안 노동재해(=산업안전)에 대한 민주노조와 계급적 노동운동 차원에서도 이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조직적 대응으로 이 문제를 파악하고 실천투쟁을 전개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한편 이번 ‘근골격계 질환’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은, 자본의 노동강도 강화와 현장통제 속에서 계속적으로 노동자의 일상적인 건강이 파괴되고 있는 현실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90년대 초반부터 계속되는 IMF 경제위기 이후 현장통제의 강화와 계속되는 노동조건의 후퇴 속에서, 민주노조운동 차원에서는 이에 맞서는 ‘현장투쟁 강화’ 가 주요한 이슈로 등장하여 왔다.

지난 10년 동안 각종의 신기술도입 등과 함께 자본의 현장통제가 강화되면서 ‘컨베이어 벨트’가 가동되는 자동차업종을 위시한 제조업 사업장에서 생산량-노동강도와 직결된 택타임 문제, 전환배치, 라인 이전·통폐합 등을 둘러싼 노동조합 및 현장조직의 투쟁은 이미 일반화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사업장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응투쟁을 전개하고도 실천의 결과는 노동강도를 실질적으로 저지하지 못하고 ‘좋은 시절’에는 ‘컨베이어 수당인상’으로 마감하거나, 지금은 사측의 요구를 조건부로 승인하고 불안정한 ‘고용보장’과 맞바꾸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재 많은 현장조직의 대응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며, 노동보건(=산업안전) 문제는 이 과정에서 현장투쟁과 활동의 유효한 조직적 대응의 매개와 수단으로 적용되지 못하고 그야말로 임단투 때 사측 압박용 카드(부당노동행위 고발->나중에 바터화 수단)로 활용되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업장에서 ‘사망사고’라도 발생하면 이를 계기로 자본에 대한 ‘집단행동’ 한번하고 유족보상 받아내는 것으로 대충 마무리하거나, 심지어는 기본적인 대응도 없이 몇 시간도 채 안되어 동료의 주검을 뒤로하고 똑같은 작업들이 진행되는 일들도 허다하다. 이러한 관점과 태도로 노동조합 집행부와 현장활동가, 그리고 노동운동가의 시각이 고정되어 있는 한, 자본의 착취와 전횡에 맞선 노동운동, 현장투쟁은 이미 절반은 패배하고 있는 것이다.

“근골격계 질환”의 직업병 인정을 계기로, 노동운동 진영은 현장투쟁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야

노동재해에 맞선 투쟁과 활동은 자본의 노동력 착취와 전횡이 가장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노동(생산)과정 속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내고 현장에 대한 노동자들의 주도권(노동자통제=자주관리 의식)을 확보할 수 있는 주요한 매개이다.

현재 자본의 현장통제와 각종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현장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이를 매개로 현장요구와 투쟁을 능동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유력한 무기중의 하나는 ‘산업안전영역’이다. 이는 현행 법률과 현장문제를 접함에 있어 자본에게 가장 취약한 고리임에 비해,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보다 직접적이고 일상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법적·행정적인 수단과 매개이기 때문이다.

이번 현대정공본부의 “근골격계 질환”의 직업병 인정을 계기로, 노동운동 진영은 자본의 작업장 통제에 맞선 현장투쟁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과 금속산업연맹 차원에서 이 ‘근골격계질환’ 문제에 대한 얘기가 부분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조직적인 투쟁과 대응계획으로 모색되고 있지 못하다. 그동안 민주노총 차원으로 ‘산안 영역’은 임단협투쟁 속에서 아주 부분적인 사안으로 치부되어 왔으며, 7월 산재추방의달 사업에서 그야말로 형식적이고 계기적인 ‘캠페인사업’으로 추진되어 왔다. 임단협과 분리된 산업안전(노동보건)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권 확보와 현장투쟁의 유력한 매개로써의 역할과 수단을 활성화시키지 못한다. 임금과 고용과 건강문제는 따로 떨어뜨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반드시 함께 쟁취해야 한다. 자본이 현재 추진하는 노동유연화 공세 하나하나는 자신의 이윤을 위해 모두 임금, 고용, 건강 모두의 파괴를 목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자본의 현장통제의 전횡에 맞서, 이를 저지하고 건강한 노동권을 쟁취하는 투쟁은 노동자계급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생존권투쟁의 영역임을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하거나 간과하는 투쟁(방식과 내용)은 더 이상 민주노조운동의 이름으로, 계급적 노동운동으로 치부될 수 없다.

이번 “근골격계 직업병인정”을 계기로 대다수 단위노조 집행부와 현장조직, 민주노총과 금속산업연맹 등의 상급 조직 차원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개입을 통해 이 문제를 현장의 구체적인 요구와 투쟁으로 확산시키는 노력과 계획이 필요하다. 2001년 임단투 시기 ‘노동강도 강화저지와 건강한 노동권 확보’를 위한 보다 전면적이고 대중적인 이슈로 투쟁의 요구를 새롭게 조직해야 한다. 현장투쟁의 강화는 ‘필요’로써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노동자의 내적 요구와 의지, 자신감과 결합될 때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현장투쟁의 강화’를 이룰 수 있기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조합과 현장사업에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선진적인 활동가들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임단투 준비기 시기 현장 노동자들이 당면하고 있는 노동강도, 초과노동, 작업불안정-유해위험요인 등을 적극적으로 폭로·규탄하고 현장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당면한 건강상의 문제를 고용안정과 임금인상 문제와 함께 결부시키면서 현장의 요구를 힘있게 조직해야 한다. 건강과 안전,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각종 유해·위험 요인과 시설, 고충들을 체크하고 해결하려는 집행부의 현장순회의 강력한 의지는, 현장노동자들의 반응을 바뀌게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활력은 현장노동자들의 심장과 함께 고동치는 활동가들의 몫과 역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거제도 외진섬 대우조선에서 다시 치켜든 민주노조, 현장조직운동의 깃발은, 바로 이를 증명해주는 증거이다.

노동강도 강화 없는 건강한 노동권과 새롭게 결합된 투쟁 요구

2001년 임단협을 위해 단사별, 지역별, 연맹별 대의원대회, 총회, 임단투 출정식과 전진대회, 결의대회에서 현장의 노동조건, 근무환경의 문제를 적극 폭로하고 요구를 조직하며, 사업장별로 대의원, 소위원, 현장조직 체계를 새롭게 정비·활성화시켜야 한다. 동시에 노동자의 작업 환경과 실태를 사회적으로 이슈화하기 위해 ‘냄비를 두드리듯’ 각종의 작업복과 공구, 기계설비 등의 상징들을 사업장 안팎 공단과 지역으로 들고 나가야 한다. 마치 95년 조선노협의 직업병 인정 상경투쟁처럼…. 자본과 정권은 경제위기와 구조조정, 생산성-경쟁력으로 사기를 치지만, 노동자는 자신의 몸뚱아리와 조직된 연대의 힘으로 자본의 반사회성, 야만을 폭로, 이를 타격함을 통해 민중들의 동의와 연대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2000년 말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은, ‘고용문제와만 결합된 노동시간단축’이 아니라, 노동강도 강화 없는 건강한 노동권과 결합된 쟁취를 새롭게 시작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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