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만의 폭설, 열 아홉살의 큰 외침
제1회 청소년인권문화제 「NO CUT!」 현장
19년만의 폭설
열 아홉 살의 큰 외침
1월 13일 부산에 큰 눈이 내렸다. 19년만이라 한다. 모처럼 거리는 시끄러운 자동차의 경적소리 대신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의 신나는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애초 1월 13, 14일 양일간 진행될 예정이었던 제1회 청소년 문화제 「NO CUT」. 갑자기 많이 내린 눈으로 아쉽게도 14일 하루동안만 진행되었지만, 부산대 앞에서 눈사람을 굴리며 신나게 시민선전전을 하는 ‘담너머’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어느 때 보다 흥겨웠다.
이제는 청소년 인권을 말한다
「NO CUT」 준비단 ‘담너머’인 부산 사대부고 1년 김현아(18) 씨는 어른이 존재하는 자리면 언제나 따라 다니는 ‘장유유서’의 그 序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서 준비단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현아 씨는 준비단 모집 포스터와 인터넷, 혹은 친구의 소개로 ‘담너머’에 문을 두드린 총 12명의 준비단과 함께 청소년보호법을 읽고 토론도 했다. 추운 날씨에 서면, 남포동 번화가에서의 시민 선전전, 후원권 판매, 「NO CUT」 포스터 부착 등을 하는 모습이 무척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청소년 인권낙서판 부스에 자신의 생각을 정성껏 써주던 제 또래 친구들의 격려에 힘을 많이 얻었는지 얼굴이 환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고자 하는데, 현실은 ‘생각’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하고 모든 통로를 차단하죠. 청소년도 사람이예요. 다들 생소하겠지만 이제 ‘청소년 인권’에 대해서 말할꺼에요.”
14일 무대 앞에서 만난 부산 경원고 2년 예고은(18) 씨는 같은 학교 남자선배에게 빌린 교복에 색색 락카를 정성스레 뿌리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호주머니와 무릎 부분을 열심히 찢고 있었다. 사회자 무대의상이란다.
“청소년보호법요? 있으나 마나예요. 우리를 위한 법이 아니니까 말이죠. 또한 지금 우리가 어른들로부터 전혀 ‘보호’받고 있지도 않잖아요?”라고 말하는 이고은 씨는 겨울방학이라도 아침 7시 40분부터 시작되는 보충수업과 단과학원, 독서실 행군에 ‘방학’이 없다. 단발머리인 그녀에게 지금 하고 싶은 게 무어냐 물으니, 머리를 컷트로 예쁘게 자르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교칙상 머리를 길게 길러 하나로 묶어야만 하고, 컷트 머리를 하고 학교에 오는 여학생에게는 체벌이 가해지니 머리를 자르지 못해 억울하다.
“다른 학교에도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우리 학교에서도 모 선생님의 성희롱이 잦았는데, 이를 보다못한 한 남학생이 교육청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 사실을 안 다른 선생님들이 오히려 남학생들에게 윽박지르기만 할 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죠.”
시작전부터 뜨거워진 부산대 앞
문화제가 펼쳐지는 부산대 정문 앞 양쪽 거리엔 이미 많은 청소년들이 몰려와 있었다. 청소년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물을 상영하고, ‘청소년 인권’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는 청소년영화제작동아리 ‘목깐’, 그리고 청소년동성애자문화집단 ‘달팽이’, 전국중고등학생연합 부산지역(준), 부산지역 청소년만화동아리 등이 각각 부스를 설치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또한 준비단 ‘담너머’는 금기도서, 청소년 유해환경물 등을 전시·상영하며 왜 청소년보호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지를 자보로 알려내고 있었다. 문화전시거리 한가운데에 놓여진 네모난 교실 안에는 똑같은 복장, 똑같은 머리 스타일의 인형이 책상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를 보기 위해 많은 청소년들이 모여들었다.
청소년 인권선언
드디어 문화제가 시작되었고,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로 구성된 ‘빅브라더스 패밀리’가 멋진 힙합공연으로 오프닝 무대를 장식해 주었다. 빨간 곱슬머리 개성만점의 펑크락 청소년 밴드 ‘찰리브라운’은 ‘청소년과 樂(락)’을 외치며 3주 된 어린 고양이를 안고 문화제에 등장해 많은 청소년들을 무대 앞으로 몰려들게 만들었고 공연 내내 함께 한 이들을 즐겁게 했다. 보컬이 마시던 생수가 얼 정도로 추운 날씨라 기타며 베이스를 꽁꽁 언 손으로 연주한 모던 락 청소년 밴드 ‘greensboro’는 청소년인권 특히 학교 밖 청소년들의 인권에 대해 정말 할 말이 많다며 관객들을 뜨겁게 달구었다.
부산 청소년동성애자문화집단 ‘달팽이’는 획일화된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고발하고 금기와 억압의 교육현장을 제사지내는 영상 퍼포먼스를 준비단 ‘담너머’와 함께 시린 맨발로 보여주었다. 또한 이 날 가장 많은 감동을 자아낸 ‘달팽이’의 동성애에 관한 퍼포먼스는 이성애자 중심주의로 빠진 교육사회 속에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고민하고 확립해가는 과정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가를 느끼게 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 청소년의 인권을 수화로 표현한 덕명정보여고 동아리 ‘한얼’과 함께 모두가 청소년 인권선언문을 낭독했다. 원하지 않는 노동을 거부하거나, 원하는 노동을 스스로 판단하여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노동현장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고 말하는 영상 인터뷰 속의 열 아홉 살 남자아이. “제발 공부 잘하는 아이만 이뻐하지 마요, 쌤!”이라며 하고싶은 말을 힘껏 외치는 문화제 보러 온 여중생.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문화 활동을 할 권리와 참여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보장받을 권리를 이야기하는 청소년 웹진 ‘등대지기’ 친구들. 몇 학년 몇 반 석차 몇 등이 자기의 이름이었다는 준비단 여고생. 그 누구라 할 것 없이 “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 그리고 삶의 곳곳에서 우리의 인권은 공공연히 무시당했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리고 이제껏 자신의 인권을 무시했던 것들을 풍선에 적고선, 힘껏 불어 속시원히 터뜨렸다.
곳곳에서 터지는 풍선소리를 하나로 모아 부산 동성고 음악밴드 동아리 ‘seagull’이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seagull’이 부르는 노래 RATM의 ‘Bombtrack’ 가삿말 ‘Burn, burn, yes ya gonna burn’을 큰 소리로 함께 부르며 환호하는 청소년들의 멋진 몸짓이 밤새도록, 그리고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박문지민 / 부산 금정구지구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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