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이 걸어 온 150m
-1일 상근을 시작하며
추 혜 인(서울여성노조 해방지기)
“조흥은행과 우체국 사이 골목으로 들어와서 흔들림 없이 150m를 곧장 올라오세요.”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경쾌한 음성, 처음 듣는 사무국장님의 목소리였다. 나는 전화를 받은 뒤 길을 나섰다. 일러준 대로 골목을 올라왔으나, 사실은 잠시 흔들릴 뻔했다. 길이 거의 끝나가도록 사무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무실로 가는 골목으로 제대로 들어섰는지 확인하기에는 골목 초입이 조금 멀다고 느낄 때쯤, 바로 앞에 사무실이 보였다.
사무실을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탄성과 환영의 인사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할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나는 사무실을 들어선 그 순간부터 손님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1일 상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상근 두 번째 날, 사무실에는 일이 많아졌다. 서울여성노조가 노조 설립인가를 받기 위해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한 지 6개월, 법외 노조로 투쟁해 온 지 2년 만에 승소판결을 받아냈기 때문이었다. 작년 실업자의 노조가입권리 인정을 위한 서명에 동참해 주신 분들과 이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고자 편지를 보내기로 하였다. 편지 문구를 작성하는 일은 풋풋한 감성을 지녔을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몫이 되었다(나이가 제일 어리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이다!).
꽤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왜 실업자의 노조가입 권리가 인정되어야 하는지, 왜 서울여성노조가 조합원 자격으로 ‘구직 중인 여성’을 포함시켰는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난 기간의 경험이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던 시절의 일들을 쓰는 속에서 자칫 가식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유, 혜인 씨. 마치 2년 동안 우리랑 같이 투쟁해 온 사람처럼 썼네.”
순간 문구를 만들어내던 고민이 무색해졌다. 나는 작은 동물들이 자신의 어머니 세대의 기억을 자신의 본능으로 물려받듯, 내가 함께 하지 않은 경험도 자연스럽게 나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판결의 기쁨과 흔들림 없는 투쟁의 원칙도.
사무실에 출근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내가 걸어 온 길은, 아직 150m. 굳이 적응할 필요 없이 나를 찾을 수 있는 곳, 들어오긴 쉬워도 나가기는 힘든 이 곳에서(여긴 사무실에 오는 누구나 다 조직한다!), 나는 한참을 더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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