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한 덩이와 좁쌀 한 알
조 인 숙(서울여성노조 조합원)
“이름이 뭐야? 아니 성만 이야기해.”
이건 내가 입사 후 처음 의정부의 공장을 방문했을 때 공장장이 내게 건낸 첫마디였다.
“만약 여직원들에게도 직급이 있으면, 그 직급으로 부르겠다. 하지만 다들 평사원이고 내 입에 익숙지 않으니 좀 기다려라.”
이건 내가 여직원들을 호명할 때 이름을 사용해달라고 당시 부장 A에게 부탁했을 때 그의 대답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섬유계통의 회사다. 섬유산업은 우리나라가 처음 산업화되었을 때부터 있던 오래된 제조업이다. 그런 만큼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도 느리다.
우리회사는 의정부에 공장이 있지만 내 근무지는 서울사무실이다. 서울사무실에는 9명의 직원이 있는데, 당시에는 여직원 3명을 제외하고 모두 남자직원 들이었다. 게다가 창고에서 배달하시는 아저씨를 제외한 남자 직원들은 모두 과장 이상의 직급을 갖고 있었다.
입사당시(96년 11월) 모두들 여직원을 부를 때 미스○○라고 불렀다. 난 그 ‘미스’라는 호칭에 굉장한 거부감을 갖고있었다.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에는 사회성과 시대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미스나 마담이란 호칭을 사용했을 때 그 대상은 주로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 남성에게 미스 조라 불리우면 불쾌함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파란 눈과 흰 피부를 가진 외국인이 내게 미스 조라 부르면 당연시했을 것이다.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난 사장을 비롯한 모든 남자직원들에게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난 맘이 약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미스 조 대신 이름을 불러주세요’라고 요구할 때면 심장이 콩당콩당 뛰곤 했다. 다행이 시대의 조류를 알던 대부분의 남자직원들은 조인숙씨 내지는 인숙씨 라고 했다. 게다가 별반 기대하지 않던 사장도 간혹 내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항상 어디에나 이런 사람은 있기 마련이지만 꼭 한 사람이 문제이다. 문제의 A부장. 그는 거의 날 부를 때면 아주 ‘친절하게’ 미스 조라고 했다. 그러면 대답하기가 싫어 가끔 못들은 척 무시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내가 공장의 어떤 직원에게 “이름을 불러주세요.”라고 부탁하는 통화를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그는 여긴 보수적인 업계고, 내가 익숙지 않게 너를 부를 때마다 네 이름을 사용해야하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고,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 것도 내게는 스트레스라고 했다. 그래서 난 ‘요즘 대부분 사무실에서 여직원을 부를 때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부장님도 이름을 불러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다. 그건 그 사람과 나의 문제이니까.’라고 말했지만 얼마나 피곤했는지 모른다. 난 96년 11월에 입사해 1년이 넘도록 그와 호칭문제로 가끔씩 이렇게 부딪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불쾌함 때문에 지루하고 긴 싸움이었지만 결코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정말 우스운 일이 생겼다.
98년 봄에 한 직원이 퇴사하면서 사장의 친구 딸이 입사했다. 그 친구도 역시 미스○○라 불리우는 것을 싫어해 부장에게 그리고 공장장에게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그러자 바로 그 질겼던 A는 모든 여직원들에게 꼬박꼬박 “○○○씨”라고 불러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너무나 우스웠다.
하루는 후배 동료가 “언니 우습다. 언니가 그렇게 이름 불러달라 했을 땐 들은 척도 안 하다가 B가 입사하자마자 꼬박꼬박 이름 부르잖아. 왜 그런 거라 생각해?”
왜 그랬을까? 그는 아마도 자기에 대한 얘기가 B의 엄마를 통해 사장에게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다행히도 그 후론 호칭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호칭문제는 내 요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가 요구했기 때문에, 하찮은 여직원의 요구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이미 익숙한 것을 굳이 바꿀 맘이 없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서로 얼굴을 붉혀가며 싸우던 것이 불쑥 나타난 배경 좋은(사실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님에도 그 작은 공간에서는 백이라면 백이 랄 수 있는) 아이 때문에 아주 부드럽게 해결되는 것을 보며 ‘내 요구는 무엇이었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있단 말인가?’를 두고두고 생각하게 되었다.
호박 한번 구르나 좁쌀 만 번 구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다. A가 보기에 그녀는 호박이었고, 난 좁쌀이었던 것이다.
물론 난 절대자로부터 좁쌀로 명명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좁쌀취급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누가 그들에게 날 좁쌀로 취급하도록 권리를 주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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