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족의 투쟁, 지구의 절규

난 1월부터 매순간 나의 생각과 마음을 붙잡는 대상이 생겨버렸다. 밥을 먹고 있어도, 사람들과 떠들고 있어도, 그리고 잠을 자려 자리에 누워도, 어떤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영토가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때는 고통스럽게, 어떤 때는 평화롭게 그들이 떠오른다. 고통스러운 이유는 위험에 처한 그들에게 별 도움을 줄 수 없는 안타까움에서 그렇고, 평화로이 그들을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나에게 준 깊은 영성적 체험과 사랑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독자 여러분에게 나와 콜롬비아 ‘우와’족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여러분과 함께 나의 체험을 깊이 공유하고 그들을 도울 방법을 같이 찾기 위해서이다. 백인들과의 일체의 접촉을 피해 안데스산맥 저 깊은 곳으로 물러나 은둔의 생활을 하고 있는 콜롬비아의 코기족과 함께 우와족은 영성이 깊기로 유명하다. ‘우와’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명상하다’, ‘생각하다’, ‘말하는 법을 알다’라는 뜻이다. 그 뜻처럼 이들은 지구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웃 부족과 한번의 다툼도 없이 평화로이 이 세상에 존재해왔다.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자연계와 인간계의 조화를 이루고 이 세상을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소식(小食)과 명상과 노래와 의식이다. 이런 모든 방법을 통하여 위기에 처해 있는 지구를 치유하고 이 세상에 생명과 삶의 의미를 영적으로 전파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우와족의 전통적인 영토내에 미국 석유기업인 옥시덴탈 페트롤륨이 석유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우와족을 알게 된 것은 1998년《녹색평론》의 글(통권 제38호〈한 토착민의 자살계획〉)을 읽고 나서였다. 한 인디언 원주민 부족 6천명 전원이 자신의 영토내 미국 석유개발 사업에 반대해서 집단자살을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그 내용은 그대로 눈물과 함께 내 가슴에 박혔고, 몇년이 지난 2001년 1월, 우연한 기회에 나는 그들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환경운동가의 역할을 잠시 접고 미국에 유학하고 있던 나는 미국 환경단체의 소개로 이탈리아 녹색당 대표단들과 연결되어 우와족 영토 방문의 길에 오를 수 있었다. 작년, 우와족의 투쟁을 언론을 통해 접한 이탈리아 녹색당 당수는 즉시 우와족의 정치적 지도자를 초청해 이탈리아 국내에 우와족의 이야기를 알리고 뒤이어 녹색당 국제연대 담당자를 우와족의 영토로 파견했다. 그 뒤 매달 녹색당 대표단들을 현지로 파견하고 있다. 그 대표단은 학자, 학생, 당원들, 변호사, 환경운동가, 평화운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합류했던 대표단은 제4차 방문단으로서 녹색당 당수가 직접 포함된 그룹이었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비행기를 타고 안데스산맥을 넘어 우리가 내린 곳은 콜롬비아에서 석유가 가장 풍부한 아라우카주. 그곳에서 베네주엘라와 국경을 마주한 안데스산맥 한자리에 우와족의 영토가 자리잡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새파란 하늘, 우와족의 보호에 의해 그 생명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숲과 산들 그리고 신성한 코바리아 강.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우와족의 영토는 불과 15년 전만 하더라도 마약, 석유경제 그리고 게릴라 내전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이었다. 외부인은 거의 접근하지 않았으며 오직 우와사람들만이 그들의 전통적 삶의 철학, 즉 ‘평화’, ‘연대’, ‘모든 것에의 헌신’을 지키며 거대한 우주의 생명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은 채 살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1985년경 미국 석유기업 옥시덴탈 페트롤륨과 영국기업 쉘의 석유 시추지역 예비답사가 있은 후, 그때까지 유지되었던 평화는 일시에 깨어져버렸다. 석유 시추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콜롬비아 군대가 수천명씩 상주하게 되고 게릴라들과 그들의 내전이 시작되고 평화 대신 폭력이 이 지역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석유개발에 반대하는 우와사람들이 평화적인 시위중에 죽거나 다치고, 또한 그들을 지원하는 미국 환경운동가 3명을 비롯한 외부세력들이 살해되었다. 이 모든 폭력은 옥시덴탈 페트롤륨의 석유개발 사업 때문이다. 그래서 콜롬비아에서는 석유는 가진자에게는 ‘부’의 상징이지만 백인중심의 사회에서 하층계급으로 분류된 원주민들에게는 ‘폭력’의 상징이다. 이 끝도없이 질주하는 ‘폭력’을 막기 위해 우와사람들은 ‘집단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지구의 생명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이 삶의 목적인 이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석유(즉 폭력)로 대표되는 현대문명이 끝내 그들의 영토를 침범한다면(석유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전원 집단자살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우와족은 모든 것에 영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들에게 석유는 어머니인 대지의 피이다. 그들에게 그 피를 뽑아낸다는 것은 어머니의 살을 헤집는 것이고 어머니를 죽이는 것이다. 우와족에게는 대지인 어머니를 파괴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우와족이 지구에 존재한 이래 오직 한두명의 외부인이 우와족의 주요 공동체와 우와족의 영적 지도자 ‘월하야’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우와의 영토를 방문했을 때, 우리 중 일부에게 그런 특권이 주어졌다.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월하야를 만나러 가기 위해 우리가 머물던 우와 영토 저지대로부터 7시간 정도의 산행을 해야 했다. 거대하게 흘러가는 코바리아강을 옆으로 하며 안개가 자욱하게 낀 신비스러운 안데스산맥을 걸었다. 태초 이래 우와족을 제외한 외부인류가 침입하지 않은 영토, 모든 것에 신령스러움을 부여한 우와사람들의 땅을 걷는 내 마음은 평화, 기쁨, 고요, 그리고 월하야를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가득했었다. 마치 7시간 전체를 명상을 하는 것 같았다. 산과 내가 하나가 된 느낌, 우리 일행은 월하야의 전령들을 따르며 가슴 가득 평화만을 안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산 정상에 이르러 월하야의 처소 근처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세속의 온갖 욕망으로 뒤범벅이 된 우리들은 월하야의 처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3일 단식과 명상을 해야 한다. 시간이 없었던 우리는 다른 장소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그날밤, 지구가 시작된 이래 더럽혀지지 않은 장소에 내리는 비, 원주민 청년들이 피워주던 모닥불, 그들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흘리던 눈물 이 모든 것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다음날 아침, 자그마한 체구의 월하야가 우리가 머물던 곳으로 왔다. 먼곳까지 와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우와족의 투쟁을 지원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월하야는 오히려 입으로 하는 말보다는 눈으로 더욱 거대한 언어를 내뿜고 있었다. 내가 어렵사리 바라본 그 눈은 분명 나를 보고 있었으나 그 너머 거대한 우주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 혼자만의 감정이거니 생각했으나 산을 내려올 때, 우리 4명이 똑같이 느꼈음을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월하야의 눈은 우리에게, 탐욕으로 없어져가는 지구의 생명과 우리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월하야를 만나면서도 이분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전해주려 하시는가 궁금했었다. 지구를,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혹은 우와족의 싸움을 지원해야 한다는 우리의 방문목적 이외에 무엇인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줄 것만 같았다.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산을 내려와 우와족의 의식을 접하고 우와사람들을 조금더 깊이 알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우와족의 의식은 거대한 뿔고동을 불며 우와의 정치적 지도자(우와에는 정신적 지도자와 정치적 지도자가 있다)가 뱉어내는 알 수 없는 언어의 리듬이 계속되며 한시간 가량 지속되었다. 그 의식은 오직 우와의 영토를 방문한 우리 20명을 위해서 특별히 이루어진 것이었다. 정치적 지도자 바로 앞에 눈을 감고 앉아 있던 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 수 없는 깊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 뒤 내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주변을 의식해 부끄러워 멈추려고 했으나 멈출 수가 없었다. 그냥 맑은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눈물을 겨우 닦고나니 의식의 마지막인 ‘치자'(우와말)술을 마실 순간이 다가왔다. 치자술은 우리의 막걸리와 같은 술인데 우와사람들의 침을 이용해 발효한 술이다. 그 술을 마심과 동시에 우리가 우와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도 우와인을 느끼고 우와사람들도 우리를 느끼게 된 것이다. 의식이 끝나고 통역을 통해 정치적 지도자에게 물었다. 나는 왜 그렇게 울었으며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지도자는 아주 환한 웃음을 웃으며(그는 의식도중 눈물이 흐르는 내 눈을 계속 바라보았었다) 나의 눈물은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어떤 짐들을 벗고 내 자신이 정화되는 과정이라 했다. 한국에 돌아가서 겪게 될 많은 일들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 과정에서 우와사람들처럼 생명을 존중하는 ‘지혜’를 얻게 된다 했다. 이 말은 나중에 다시한번 한 우와청년에게서 듣게 된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혜를 얻게 될 것이라고. 결국 월하야가 나에게 준 메시지는 이것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서 환경운동을 할 때,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 많이도 힘들어하고 방황했었다. 아무리 해도 어떤 거대한 벽을 허물어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미친 듯 일을 해도 변화하지 않는 사회, 숲과 산은 더욱더 파괴되어만 가고, 물과 공기는 날이 갈수록 더러워지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더 많은 ‘돈’, 더 많은 ‘발전’을 외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거대한 소비주의에 미친 사람들과 사회를 접했고, 수업시간에 아무리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에 휘둘린 ‘세계화’가 전세계 구석구석을 짓밟고 파괴하고 있다고 소리쳐도 나 혼자만 그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치고 외로워진 나에게 세상의 심장, 우와의 영토에 살고 있는 우와사람들이 그들의 깊은 영성으로 나를 어루만져주었던 것이다. 우와사람들을 도우러 간다고 믿었으나 오히려 그들이 나를 도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한참 지난 후였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우와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러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신기한 것은 이전에 한국에 머물 때는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눈’이 나에게 보여지고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함께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것이 결국 우와사람들이 말하던 ‘지혜’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된다.

얼마 전에 이탈리아 팀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우와의 영토에서 6월에 열기로 계획되었던 미국, 유럽 그리고 한국사람들의 국제대회가 9월로 연기되었다고. 주변 생태계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와사람들은 여름 한철 단식을 한다. 그 단식 기간중 명상과 기도와 의식을 통해 더욱더 지구를 치유하는 데 집중한다. 이번에 우와사람들이 그보다 조금 길게 6월부터 8월 말까지 단식을 한다고 한다. 단식 후 태초 이후의 우와의 역사를 거대한 바나나잎에 써서 신성한 강에 띄운다고 한다. 그 잎의 흐름에 따라 우와족의 운명을 결정짓기 위해. 우와의 영토에서 나는 이 우주의 일부분임을, 자연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종’임을 깨달았다. 아울러 살아있는 모든 것을 신성시하는 마음이 없이는 인류가 지구의 파멸을 막기는 어려우며 그런 신성시하는 마음은 바로 우리에게 잊혀져 있었던 구문화의 불꽃(톰 하트만은《우리 문명의 마지막 불꽃》에서 평화와 연대에 기반한 부족사회의 문화를 구문화, 정복에 기반한 현대문화를 신문화로 묘사했다)과의 접촉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와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은 우와의 이야기를 소수민족의 이야기, 소수민족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싸움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우와인들이 그들의 투쟁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은 저 멀리 지구 반대편 안데스산맥의 잊혀져 있던 한 소수민족에 대한 것이 아니라, 현대문명으로 인해 파괴되어가고 있는 지구라는 거대한 생명체의 절규이다. 그리하여 우와사람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것은 지구의 파괴를 막고 치유하려는 우리들의 자연스러운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우와족의 투쟁에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옥시덴탈과 콜롬비아 정부에 항의서한 보내기, 우와족의 기도에 동참하기 등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Ltaehwa@hanimail.com으로 연락주십시오. 특히 석유개발 사업으로부터 우와 영토를 지키기 위한 토지구입운동에는 경제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다음 계좌를 이용해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농협 150015-52-136659 예금주 이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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