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에 대한 편견과 오해, 또는 맹신

홍 영 주(성균관대 공연예술전공 박사과정, 강사)

서 너 번인가 걸러 뛴 적은 있지만 대개 첫 수업에서는 수업일정을 간단하게 소개한 다음에 예술경영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때 나오는 이야기들이 비슷비슷하기는 한데 이 시간강사의 얄팍한 경험에 근거하여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1) 겸손형: “전 예술경영이 뭔지 잘 몰라요. 그렇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10명중에서 4명 정도가 이렇게 겸손한 태도로 인사하지만, 적어도 한 명은 졸업 이후에도 이 분야에서 생존한다. 또 엄밀하게 조사된 것은 아니지만 이 유형에 속한 학생들이 자퇴하는 확률이 제일 적다. 그러나 졸업 이후에 제일 막막한 사람들 대개가 이 유형에 속한다.

(2) 사교형: “전 예술경영을 잘 모르지만…그래도 예술경영 하면 멋있잖아요. 그냥 관심이 있어서요.” 여기서 사교형이 말하는 “몰라요”는 겸손형의 “몰라요”와 구별되어야 한다. 겸손형은 알려는 의지가 조금은 반영되어 있지만 사교형은 예술경영이 무엇인지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우선은 보기에 그럴 듯 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예술경영이 그리 쓸모없는 악세사리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동안에는 그 비싼 등록금도 가장 먼저 내고, 학교에도 온다.

(3) 야망형: “예술경영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싶어서 대학원에 들어왔습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다음에 유학을 갈 계획입니다.” 10명중에서 2-3명은 유학을 꿈꾸고 가끔은 그 중의 한 명이 유학을 간다. 내 경험에 의하면 아직까지는 이런 기적이 매 학기마다 생기지는 않는다.

(4) 고뇌형: “현장에서 일하면서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서 학교에 왔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걸 좀 이론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 좀 하려고 합니다.”

이 시간강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이 시간에 학생들이 말하는 ‘이론’의 정체다. 예를 들면 죽은 이론보다는 생생한 현장 중심으로 수업을 이끌어 달라는 학생들의 주문에 등장하는 ‘이론’은 현실과 동떨어진, 진부한, 책에서나 통하는, 무능한 이론에 대한 비판이 농후하다. 반면에 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몇몇 학생들이 말하는 ‘이론’에는 이 혼잡한 세상에서 나침반으로 삼을 수 있는 믿을 만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칙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다. 특히나 다른 학문에 비해서 자체적으로 생산된 이론이 빈약하기 때문에 이론 자체에 대한 논의도 미비한 실정인 예술경영에서 이론을 말하려면 그야말로 이론적일 수밖에 없는 출발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성급하게 결론부터 앞당기면 이론은 현상을 보는 방식이다. 좀 재미없기는 하지만 Kerlinger의 정의를 인용하면, 이론은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할 목적으로 변인간의 관계를 상세하게 진술함으로써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일련의 상호관련된 정의, 명제이다. 뒤집어 말한다면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목적을 온전하게 수행하지 못하면 이론이 아니다. 이 정의에 근거하여 이론의 존재의의와 그 기능을 다시 점검한다면 우선 현실적이지 못하고 공허한 이상(理想)을 주장하는 학계의 무능함을 완곡하게 비판할 때 종종 등장하는 “이론적이다”라는 평가에 내재된 부정적 인식은 정정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의 “이론적”은 이론의 엄격성과 적확성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아니라 자신들의 기대와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연구자에 대한 주관적 평가이기 때문이다. 부디 바라컨대 우리의 예술경영 수업에서 “이론적”이지 않은 이론으로서의 가능성이 모색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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