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지도부 농성장의 하루
명동성당 지도부 농성장
“웬걸? 밖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네”
경찰검문·저지 뚫고, ‘민주노총 사수’ 의지가 모이는 곳
아침6시. 명동성당 안에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오늘은 지도부가 농성을 시작한 지 엿새째 접어드는 7월4일. 대충 아침밥을 시켜먹고 나니, 내일(5일) 총파업을 앞두고 오후1시에 열리는 기자회견 때문에 분주하다. 오늘은 성당 어귀의 경찰 움직임이 심상찮다. 들고나는 사람마다 붙들어 검문하고, 드나드는 차마다 세워놓고 트렁크를 열어보는 것이야 농성이 시작된 뒤로 늘 있어왔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심하다. 심지어 밤새 농성장을 지키다 아침밥 먹으러 잠깐 나갔던 대우자동차노조 사수대는 ‘공장으로 돌아가자’라는 투쟁조끼 때문에 아예 다시 들어오지 못했다. 민주노총 사무총국 간부들 역시 대개 투쟁조끼나 ‘민주노총’이 박힌 작업복을 입은 터라 입구에서 실랑이를 한다. 그래도 ‘경찰직무집행법’을 들이대며 “불심검문은 불법”이라고 윽박지르니, 경찰들이 물러서기도 해 삼삼오오 농성장으로 들어온다.
아침부터 지지방문은 줄을 잇고…
식사와 농성장 주변 정리를 얼추 마친 뒤 위원장과 사무총장은 사수대와 함께 화장실에 가서 세수도 하고 옷을 갈아입는 등 하루를 시작할 채비를 마친다.
오늘도 아침부터 지지방문이 줄을 잇는다. 오늘 첫 방문객은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회의의 오충일 목사. 오목사가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간 뒤 머리칼을 보라색으로 염색한 사람이 나타났다. 위원장과 사무총장 머리를 손질해주겠다며 부천에서 달려온 미용사 변정섭씨다. 변씨가 가위를 꺼내드니, 주변사람들이 “예쁘게 깍아달라” “염색도 하면 어떻겠느냐”며 말품을 거든다.
이발까지 단정히 하고 나자 곧바로 MBC 생방송 ‘화제집중’에서 위원장 취재를 시작한다. 11시반. 취재가 끝나자마자 기다리던 임원들이 회의를 시작한다. 오늘은 허영구 박문진 이규재 배종배 부위원장이 참석했다. 오후에 있을 기자회견, 내일 총파업 상황, 농성장 운영 따위를 점검하고 대책을 세우고 나니 어느새 점심 먹을 새도 없이 기자회견 시간이다. 기자들은 벌써부터 농성장 주변 스케치에 한창이다. 방송3사는 물론 캐이블TV, 신문기자 등 50여명이 몰려 취재경쟁을 벌인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위원장은 또다시 <한겨레> 인터뷰를 시작한다. 점심때를 넘긴 뒤라 사수대는 서둘러 짜장면으로 허기를 달랜다. 오후에는 삼성해복투 30여명, 공공해복투 20여명이 잇달아 지원방문을 왔다. 위원장과 사무총장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인터뷰-취재 위해 줄선 기자들
오후4시부터는 지도위원과 간담회가 열렸다. 김금수, 남상헌, 박순희, 천영세 지도위원이 바쁜 와중에도 농성장을 찾았다. 심상치 않은 시국인지라 지도위원들이 나서 가계각층의 연대를 조직하기 위해서다. 박순희 지도위원은 농성장에 올 때마다 “아휴! 이렇게 고생들을 해서 어떡해”라며 한숨을 내쉰다. 간담회가 끝난 뒤 위원장은 한켠에서 오래도록 기다린 민주노동당 학생그룹에 가서도 인사를 전한다.
이 때 경찰관 4명이 천막에 나타났다. 뒤켠으로 돌아 바로 옆의 계성초등학교에 가겠다는 것이다. 교장을 만나 차량출입 문제를 상의하겠다는 것인데, 그게 다 ‘지도부 검거’를 위한 일일 게 뻔한 마당에 사수대가 곱게 보내줄 리 만무하다. 지난 일요일(1일) 낮에 들어와 붙박이로 사수조를 맡고 있는 한통계약직노조 김삼배(34)씨는 “경찰들이 자꾸 들어오면 조직담당자가 꾸짖기도 하는데, 사실 사복 입은 ‘짭새’를 가려내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다”며 사람좋게 웃는다. 반년 넘도록 부당해고 철회투쟁을 벌이고 있는 그들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운 것 같아서 지도부 마음도 무겁다. 그러나 김씨는 “우리도 큰 싸움 준비하는 기간이므로 민주노총 총력투쟁에 합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6시쯤 문정현 신부가 경찰에 가로막혀 성당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다들 어이 없는 표정을 짓는다. “성당에 신부가 못 들어오면 누가 들어오나?” 사수대가 득달같이 내려가보니, 문 신부는 지팡이를 들고 분을 삭이지 못해 “서장 나오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있다. 결국 문신부는 경찰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시위를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산별연맹 간부며 조합원, 지지방문 온 사람들이 모조리 못 들어오고 실랑이를 하고 있다. 양규헌 민주노총 전 수석부위원장도 경찰에 가로막혔고, 박점규 조직차장과 주진우 정책국장은 성당 안쪽에서 항의하다 되레 성당 밖으로 떠밀렸다.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곧바로 ‘시민불편 의경혹사 과잉검문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선전전에 나섰다.
경찰, 방문객 마구잡이로 가로막아
그 와중에 철도노조 간부 20여명이 지지방문을 왔다. 6시30분께 도착했는데, 김재길 위원장이 검문에 막혀 들어오지 못하다 7시30분이 돼서야 모두 천막 앞에 모였다. 철도노조와 간담회가 끝난 뒤 8시가 넘어서야 위원장과 총장은 저녁을 들었다. 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시민방송, 건치 등이 잇달아 찾아왔다. 서울 중부지구협의회에서도 사수대로 왔는데, 최재풍 의장이 가로막혀 문정현신부와 함께 입구에서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9시30분께 채만수 부소장을 비롯한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사람들이 찜통을 들고 나타났다.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백숙이 들어있다. 사수대가 컴컴한 성당 마당에서 순식간에 백숙을 해치운다. 남들은 더위를 이긴다며 갖가지 음식으로 몸보신을 하는 여름에 팍팍한 맨밥으로 1주일을 넘기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11시30분이 돼서야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농성대오만 남았다. 하루종일 쉬지 않고 손님맞이에 시달린 단위원장은 “입에서 단내가 난다”며 피곤해하지만 지지방문이 끊이지 않은 것이 그저 고마운 눈치다. 자정이 넘자 위원장과 총장은 사수대에게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잠자리에 든다. 바둑이나 장기 따위로 늦은 밤 무료함을 달래던 사수대는 오늘도 돗자리 하나에 의지한 채 맨땅에서 하늘을 보며 몸을 누인다. 곳곳에 피워놓은 모기향들이 연기를 피워올리고, 7.5총파업 전야가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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