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성화가 아닌, ‘삶의 질’ 문제
지난해 노사정위원회 합의 뒤 지지부진하게 논쟁만 돼오던 ‘주5일근무제’가 정부 주도 아래 시행을 위한 엔진을 가동했다.
‘주5일근무제’ 즉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노동계와 재계의 입장차는 여전하다. 임금삭감이 전제되어야만 합의할 수 있다던 재계도 이번에는 ‘임금은 보전’하는 데에는 의견일치를 보였지만 연월차 휴가, 생리휴가, 시행 시점, 연장근로 할증률 등 쟁점은 남아있다.
첫째 연월차 휴가 및 생리휴가 문제다. 재계는 그렇지 않아도 공휴일이 많은 한국에서 주5일근무제를 도입하게 될 경우 휴일이 더 늘어나 생산량이 감소하고 비용이 더 든다는 이유를 댄다. 그래서 연월차를 합쳐 15일로 통일하고, 생리휴가는 무급으로 하자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휴일·휴가일수(연월차 휴가 포함)는 91∼101일 수준인 반면 미국이 138일, 프랑스 145일로 우리보다 40여 일이 많다. 한 달이 넘는 차이다. 실제 휴일·휴가사용 일수를 보면 더 열악하다. 한국은 78.8일, 미국 126일, 일본 136일, 프랑스 139일이다. 한국의 휴일 수가 많다는 재계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더 문제인 것은 1년 단위 계약이 많은 비정규직은 연차 휴가라는 것이 없고, 기껏해야 월차와 생리휴가가 전부 인데-일요일도 없이 일해야 하기 때문에 한 달에 이틀 쉬는 게 고작이다-연월차 휴가마저 폐지하는 것은 비정규직에게서 모든 휴일을 앗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더욱이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절반 이상인 53%가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연월차 휴가는 폐지되어서는 안 될 사항이다. 이와 함께 연월차 휴가 부여요건도 지금보다 완화해야 한다. 현행 휴가 부여요건은 연차는 1년 개근, 월차는 한 달 개근해야만 휴가를 받을 수 있다.
둘째, 연장근로 문제인데, 연장 근로수당 할증률을 현행 50%에서 25%로 줄이자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규정에 25%라고 되어 있음을 근거로 대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도 ILO에서는 25% 이하로 절대 인하해서는 안 되고 가능한 규제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국제적 표준이라고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노동자들이 연장근로를 하는 것은 업무량이 많아서일 때도 있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질임금이 급격히 하락한 가운데 기본급이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생계에 보태려면 더 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밖에 시행시기를 놓고 재계는 10년에 걸친 단계적 시행을, 노동계는 2003년 시행·2004년 완결을 주장하고 있다. 43시간, 42시간, 41시간으로 단계적으로 줄여가자는 말을 따르자면 어떤 해의 토요일에는 2시간, 1시간 일하기 위해 출근해야 한다는 얘긴데, 이는 계산상으로만 가능한 설정일 뿐이다.
이와 함께 자영업자, 건설업 종사 노동자, 비정규직 등이 이 제도에서 누락됨 없이 절대 다수의 국민들에게 시행될 수 있도록 시행시기와 범위에 대해 면밀한 고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민주당이 주5일근무제 도입에 환영을 표명했지만, 그 취지는 주5일근무제 즉 ‘노동시간단축’의 근본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 제도의 목표는 근로시간단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활성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있다”는 이태복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의 말을 통해서도 이러한 우려는 확인된다.
주5일근무제는 토요일에 쉬기 때문에 레저산업, 관광산업 등 내수와 소비가 증가하며, 적절한 휴식으로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경제논리를 뛰어넘는,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제도다.실질임금 향상,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꾀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의 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한 한국의 처지에서 주5일근무제, 노동시간 단축이 근본 목표를 상실하는 방향으로 입법화되어서는 안 된다. 진지한 논의와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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