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에 의해 가장 배재된 공간에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간다.
[참세상사람] 장애인 이동권연대 박경석 노들야학 교장 선생님 인터뷰
8월 두째주 참세상은 지난 7월30일 부터 서울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노들야학 교장선생님이자, 장애인 이동권 연대 활동을 하고 있는 박경석씨를 만나보았다.

장애인 이동권 연대는 서울역에서 100만인 서명운동과 함께 이동권투쟁기금마련을 위한 뺏지 판매 및 모금운동도 함께 하고 있다. 열악한 재정 상황 속에서 천막농성 준비와 진행을 위한 투쟁기금을 마련하고, 지난 2/6일 서울역지하철역사 점거투쟁의 과정에서 각각 300만원과 15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박경석(노들장애인야간학교 교장), 최옥란(장애인실업자연대회원) 씨의 벌금을 마련키 위해, 2만개의 이동권 관련 뺏지를 제작·판매함과 동시에 모금운동 진행하고 있었다.
– 장애를 겪고 장애인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83년도에 행글라이더를 타다가 떨어 졌습니다. 장애가 생기고 한 5년 간 집에서만 살았죠. 집밖으로 나올 수가 없는 구조 였습니다. 아파트에 살았는데 계단이 많았죠. 형님이 1주일에 한번 교회를 데리고 나가는 것 정도였죠.

한달에 다섯 번 도 못 나가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게 5년 동안 지내다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싶어 장애 종합 복지관에서 컴퓨터 직업훈련을 받았어요. 이때 처음으로 다른 장애인을 만났습니다. 이제까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들의 삶을 본 거죠. 장애를 입지 않고 그냥 지나갔을 때는 아 불쌍하다 그렇게만 생각 했었죠.
그러다가 88년 같이 있던 선배 한명이 장애인 올림픽거부 투쟁을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올림픽하면 좋은 일인데 왜 그들은 거부할 까? 그 이유를 보면 외국의 많은 장애인들을 데려와서 김포공항에 내려서, (88대로 처음 생겼을때죠) 시설이 있는 올림픽 경기장으로만 이동 시키는 정도 였습니다. 이때 전시용 장애인 전용 리프트가 잠실역에 처음 생겼습니다. 그야말로 전시용이죠. 그러면서 장애인들 데려다 놓고 이 땅의 장애인의 문제를 인간승리의 문제로 홍보하고 재활의 의지를 선전하였던 것입니다. 법 제도적인 것 없이 이 따위 선전만하는 올림픽을 거부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올림픽조직위를 점거했죠. 그것들을 보면서 개인적인 장애의 부분들은 극복할

수 있는데 장애를 가지고 사회에 나갔을 때는 ‘나’ 개인의 장애가 아니라 사회가 장애를 만든다는 것을 알았죠. 이동하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하고, 결국 이 사회가 장애를 만드는 구조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개인의 재활 의지로만 치부하고 사랑과 봉사, 자선으로 치부해 버리는 그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고 고착화 시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장애인 문제에 대한 시각들을 바꿔 나갔습니다.
-장애인 올림픽 투쟁이후 다음 활동은 어땠습니까?
88년도 (직업학교)수료하고 직장을 구하려고 면접도 봤지만 모두 탈락했습니다. 그대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공부하여 숭실대학교 사회사업학과에 91학번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 숭실대학교 사회사업학과면 이동권을 쟁취하기위해 소송을 건 박지주 씨가 있는 학교 군요.
그렇습니다. 사사과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죠. 그러면서 전국장애인 한가족

협회(전장협)에서 일을 하다가 대중운동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장애인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뭘까 고민하면서 노들 장애인 야학을 만드는 일에 참가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전장협 활동하다 노들 야학에서 교사부터 다시 활동을 하였죠.
– 노들야햑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
초.중.고 검정고시 공부가 가장 기본적인 활동입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업을 해요. 그리고 장애인 인권활동을 합니다. 그렇게 94년도에 만들어 졌습니다. 노동자는 공장이 있고 학생은 학교가 있는데, 장애인 운동을 하려면 사람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 고민하였습니다. 욕구를 조사해 보니까 정말 교육받고 싶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사회구조상 장애인의 70%는 중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합니다.

-그때 노들 야학을 만들었을 때는 학생일 때 였군요?
저는 대학생이었습니다. 당시 만들 때 일원으로 참가해서 함께 사람을 모으고 이후에는 교사를 하였습니다. 93년 8월8일 개교하여 94년부터 교사 생활을 하였습니다. 사람도 없고 모자라고 해서 야학이 굴러가기 힘들 때 같이 하자는 제안에 교사 생활을 시작 했습니다.
-숭실대학교 다니던 때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인문관(종합강의동) 1층에서 5층까지 누군가가 휠체어를 올려 주고.. 지금 지주하고 똑같은 불편함을 당해야 했죠. 지주는 지금 소송을 하였지만 그때 저는 소송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습니다.
– 이번 천막농성과 서명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오이도 역 사건이 직접 적인 계기가 되어 대책위가 만들어지고, 대책위가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기점으로 장애인이동권 쟁취 연대를 만들었습니다. 중심적으로 버스 문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문제를 제기 했죠. 100만인 서명운동은 1회성 반짝 사업이나, 그냥 불쌍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차별의 근간을 이루는 모순을 깨기 위해 100만인 서명 형태를 만들고 천막은 그것을 집중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 오이도 수직리프트 추락 참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주시죠
올해 1월22일날 오이도에 수직형 리프트가 있었는데 고정형에 비해서 빠르고 엘리베이터와 모양은 똑같죠. 그런데 수식형 리프트는 안전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보다 비용이 싸고 만들기가 쉽죠. 그러니까 대충 만들어서 파는 거죠. 결국 6개월만에 떨어진거고.
-수직형 리프트는 안전 장치가 없다는 것입니까?
안전기준이 없어요. 승강기(엘리베이터)는 속도규제와 승강기 탑의 바닦을 몇 미터를 파야하고 등의 검사기준이 있어 산자부에 안전하다는 승인을 받아야 하죠, 수직형 리프트는 산자부에 안전기준이 없어요. 그래서 산자부에도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승강기는 안전승인을 받아야 하고 계속적인 관리감독에 대한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만 장애인용 수직형 리프트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가격이 쌉니다. 가격이 싼 만큼 대충 만드는 거죠.
이런 이유로 안전기준 마련 요구를 해 왔지만 하지 않고 있다가 지금에 와서야 시행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1년전에 약속한 문제입니다. 1년 전에 준비만 되었다면 오이도에서의 참사는 생기지 않았겠죠. 반면 고정형 리프트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20-30분 정도 걸리죠.
– 선전물에서 주장하는 ‘장애인 이동권 정책위원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정부에서 장애인 문제를 이야기하면 항상 이런식 이어요. 관료들이 안을 쭉 짜서 이거 한번 검토해 봐라 하면서 쭈루룩 불러 주거든요. 의견수렴을 하는 수준에서 장애인들을 불러 차한잔 마시면서 의견수렴을 한다고 합니다.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죠. 장애인 단체나 대표성이 있는 사람이 위원회를 만들어서 상시적인 활동을 하자는 것이죠. 법개정과 안전점검, 편의시설 문제들에 대해 연구 개발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죠.
– 우리나라에서 대중교통을 직접 이용하는데 있어 느끼는 감정은 어떻습니까?
버스 같은 것은 전혀 못타고 지하철은 한번 탈려면 2-30분 걸리고, 아예 없는 것은 짐짝처럼 올라가고, 내려가고 그런 상황들이 감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죠.
-고정형 엘리페이터가 지하철 계단에 붙어서 난간을 타고 이동하는 건가요?
예. 계단에 레일처럼 쭉 붙어있는 것이죠

-잘 작동이 되나요
고장난 것도 굉장히 많고, 고장 났다고 이야기 하면 잘 안 고쳐지고, 그런 것들을 항상 당하면서 사는 거죠. 또 공장때문에 왔다 갔다 하면 승무원들도 귀찮아하고.
– 외국에는 저상버스 사례가 있는데 서울시에서 저상버스 발표를 한 이후 지금까지 미루고 있는 이유가 무언인지?
우리나라 버스는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잖아요. 저상버스는 발판이 경사지게 쭈욱 나와서 휠체어를 타고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어요. 홈페이지에 영상이 있어요

-서울시에서 작년에 한다고 했다는 데.
조순때 버스 경영난을 해소한다는 고민 속에서 공영버스 도입을 하려고 했어요. 공영버스는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것인데 공영버스를 만드는데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는 안 만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버스에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대안을 마련하라고 공청회도 쳐들어가고 시청도 쳐들어갔는데 다섯대 정도 만들어 주겠다고 선심성으로 말을 했죠. 그러다가 조순이 대통령 출마한다고 깔짝대다가 아예 정책 자체가 사라진 적이 있어요. 그때 저상버스 문제를 거론한 처음 시기였지요.
– 진보진영이 장애인 투쟁에 많이 결합을 못하고 있는데
그렇죠.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정말 척박하고 힘든 상황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도움 보다는, 사회문제를 풀어 가는데 있어 같은 해방의 문제이고. 해방의 문제에 있어서 이 문제를 시혜와 동정이 아니라 같이 결합하는 문제, 그리고 자본이라는 문제에서 가장 차별받는 공간, 자본의 논리에서 가장 배제되어진 공간, 가장 낮은 곳들에

대한 조직과 운동을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연대가 진보운동에 희망을 주는 운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부분들이 가장 희망일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바쁘고 힘든 상황들이 같이 결합하는데 하나의 합리화일수도 있고 안그렇 수도 있죠,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 문제에 외면해서는 안될 것 같아요
-가끔 큰 집회에 많이 나오시는데 이동권연대 차원에서 같이 나오는 것인지요.
노들야학으로도 나가고, 노동문제 있을 때는 노동문제로 나가고, 에바다 투쟁있을 때는 또 그 문제로 나가죠.
– 실례되는 질문인데 생계문제는 어떻게?
아, 생계는 공공근로 했지요. 공공근로 좀 하다가 지금은 실업급여 받고 있어요(웃음을 짓는다). 실업급여가 이제 두 번 받으면 끝나니까. 아르바이트 할 수 있는 거나 찾아 봐야죠.

– 마지막으로 사회적합의를 얻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데 대중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버스, 대중교통문제를 생각하면 당연하게 장애인들은 배제되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입장에서는 이 구조가 너무 두꺼워서 생각해 보지 못해 본 것들입니다. 저 자신도 이 투쟁을 하면서 버스를 탈수 있다, 탈것이다라는 부분들이 현실로 나타날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참 기본적인 것이더라는 겁니다. 참 기본적인 것인데, 근데 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인 대중교통 이용이 장애인들에게는 배제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당여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감히 도전해 보지 못하고 있고, 그것을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있는데, 이것은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지금까지 20년, 30년 배제되었던 장애인의 이동권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도(모든 국민들도) 언제나 당할 수 있는 위험들, 그리고 노령화 되어지는 사회, 그들이 언제나 당할 수 있는 이 사회속에서 배재의 문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배제 당하지 않고, 정말 사회적 약자가 되었을 때, 그때도 그들이 인간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할 수 있으면 좋겠고,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고 , 그 권리가 인정되는 사회가 만들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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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난 8월의 땡볕아래 수많은 휴가 인파들이 지나다니고 있는 서울역 광장.
그곳에 울려 퍼지는 희망의 목소리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소리였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이 보기에 장애인들의 천막과 서명운동은 웬지 미안한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지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쉽게 서명을 하고 뺏지를 사고, 모금함에 돈을 집어 넣는다. 어떤 조그만 꼬마아이는 돈만 넣고 뺏지는 안 받아 간다. 하지만 진정 장애인들이 바라는 것은 측은지심이나 봉사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장애인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것, 그들과 입장의 동일함을 만들어가고 지지해 주는 것이었다. 서울역에는 여전히 열차의 출발과 떠남을 알리는 방송이 광장 곳곳에 울려 퍼지고 있고 여행객들의 무거운 배낭이 넘실대지만 “서명하고 가세요”라는 장애인들의 힘찬 목소리는 8월의 뙤약볕도 이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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