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발전종합방안」 어떻게 볼 것인가?

— 서울지부 7차 특위 조진희

99년 상반기 「교육발전 5개년 계획」에 이어 99년 12월 시안 발표됐던 교종안이 지난 7월 26일 확정 발표되었다. 교원단체를 포함한 다각도의 여론수렴을 거쳐 마련되었다는 교종안 내용을 보고 우리는 무엇을 기뻐해야 하고, 슬퍼해야 하는 것인가? 하도 여기저기서 떠들어대서 새로울 것도 없는 정책들이지만 이전 정권에 비해 획기적인 것도 있다고들 한다. 또한 정부가 정말 교육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아차렸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었다. 교종안 감상법의 핵심은 무엇인가?

■ 교종안 감상 포인트

감상법의 핵심은 “교육노동 유연화”다. 구조조정과 유사어가 되어 버린 ‘노동 유연화’란 무슨 뜻일까? ‘노동 유연화’는 말 그대로 “노동자가 고용주와의 계약에 따라 노동력을 사고 파는 거래를 부드럽고 연하게 한다”는 뜻이다.(흔히 비정규직, 계약직, 일용직, 파견근로 등의 제도가 바로 유연화 정책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다. 노동자들은 이제 평생직장의 개념보다는 이제 평생고용의 개념에 더 익숙하다. 고용이 안 되는 기간에는 퇴직금과 고용보험으로 연명하면서…) 노동시장이 말랑말랑해지면 노동자들은 이 시장에도 기웃, 저 시장에도 기웃거리면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노동 유연화’란 무엇인가? 당연히 교육노동자을 말랑말랑하게 한다는 뜻이다. 대중적 공교육이 완성되어 온 지난 반세기 동안 교·사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지 않으면(임시양성소 시절도 있지만 이는 제외한다면) 한국사회에서 교사가 될 수 없었다. 그렇게 교사로 입직한 사람들은 IMF 때도 65세 철밥통이라는 찬사(?)까지 받으면서 평생직장을 보장받았다. 이런 교사들의 철밥통이 1차로 철퇴를 맞았다. 이것이 지난 99년 이후 3년간의 정년단축이다. “늙은 교사 1명 내보내면 젊은 교사 3명 뽑는다”라는 조악한 말은 현실화되었다. 젊은 교사들이 더욱 말랑말랑한(그들이 영어도 잘하고 컴퓨터도 잘하고 임금도 저렴하고, 그리고 변화에 민감한 것은 당연하다!) 노동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제 두 번째 철퇴가 예고되고 있다. 바로 7차 교육과정을 앞세운, 지식기반사회의 유연한 노동력을 갖춘 교사 양성·임용·연수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교종안이 확정된 것이다. 7차 교육과정의 핵심은 ‘다양성, 자율성, 창의성, 수요자 중심주의’ 등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한 부총리가 말하는 하드웨어(학교환경 및 공교육 체제), 소프트웨어(교육과정)의 개선과 딱 맞아떨어지는 절대가치를 지닌 이념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부총리가 지난 7월 25일 「7·20 교육여건개선 추진계획」(이하 추진계획) 후속조치로 열린 시·도 부교육감 회의에서 강조하고 있는 ‘휴먼웨어의 개선’에 이르면 이제 이 가치는 보다 분명해진다. “변화하는 시대에 교사도 변해라!”, “교육노동도 유연해져라!”

시대가 변하고 아이들이 변하고 다들 평생고용을 목적으로 박박 기는데 교사들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마음 속으로 이렇게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교사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그 변화의 최종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한 번도 합의한 적이 없다. 그저 정부에서 시키는대로 교육청이 하라는대로 그리고 학원교육에 찌든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해달라는대로 변하고 있을 뿐이다. 그 귀결점은 바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교과(학교) 선택의 다양성’, ‘사학이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율성’, ‘영재 내지는 우수아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창의성’, ‘능력 있는 소비자의 교육권 확대를 위한 수요자 중심주의’다.

이는 절대로 논리적 비약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다. 2005학년도 수능 Ⅰ·Ⅱ 방안, 대학 신입생 모집 자율권 부여, 자립형사립고·영재학교·이상적학교·사이버스쿨 등 외국의 자율학교를 본 뜬 일련의 학교 신설, 생존권의 개념에서 소비권의 개념으로 교육권 담론의 축소 등이 눈앞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제도와 이데올로기가 가져올 결과가 “교육 불평등”(자립형사립고=귀족학교 라는 논의는 이미 널리 인지된 것이다)이다.

이제 우리가 바라는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 원점에서부터 논의해야 한다. 대중적 공교육의 원래 첫이념과 부모의 재산 정도와 무관하게 평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로서의 교육 즉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공교육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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