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가 실업노동자에게 소중한 이유
노동자에게 “건강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노동자가 건강해야 일할
수 있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야만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노동자의 건강은 일하?위해서 만 필요한 것일까.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금방 대답할 것이다. 건강하게 노동하
고자 하는 것이지 노동을 위해 건강하고자 하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자의 하루가 힘겨운 노동으로 이어져야만 하
는가. 우리는 작업장에 매여 일만 하고 싶지 않다. 때로는 가족들과 가까
운 흙길을 산책하고 싶고 때로는 밤새도록 책에 파묻히고도 싶다. 어쩌면
돌아오는 휴일에 동료들과 공을 차고 싶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녕 우리는
일하기 위해 건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에 묶인 우리는 고용 안정을 대가로 자본가
들에게 건강을 팔아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은 일자리를 약속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건강할 때뿐이고, 일자리 약속을 대가로 갑자기 늘어버린
노동량 때문에 그 전에는 말짱했던 우리의 몸과 마음에는 피로가 쌓이게
된다. 피곤에 지친 우리의 육신은 쉴 틈조차 없이 다시 일터로 내몰리고
마침내 쌓인 피로가 재해와 직업병으로 이어질 때, 자본가들은 우리에게
약속한 일자리를 거두어 버린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 임금과 고용 보장
통해 보장되어야 할 노동권은 건강권과 함께 확보되어야 할 성질을 가진
것이지, 어느 하나를 포기하는 것을 통해 다른 하나를 보장받는 식이 되
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건강권을 포기하고 일자리와 임금을
얻는 것은 고용불안정 상태에 빠져드는 것을 잠시 미루는 것일 따름이다.
이렇듯 결코 포기할 수 없고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노동자의 건강
권은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보다 안전한 작업장, 보
람 주는 일터를 원한다. 대부분의 일상을 작업장에서 보내는 우리 노동자
들로서는, 노동과정에서 늘 위험에 맞서 있는 노동자들로서는 이 만큼 건
강권을 틀림 없이 보장해 주는 것도 없다. 하지만 사람의 질병과 그에 따
른 고통이 늘 산업재해와 직업병 때문만은 아니기에, 안전한 작업장과 우
리 몸에 맞는 노동과정을 쟁취하는 것 못지 않게 크고 작은 건강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보건의료”를 요구하게 되고, 이것은 노동자 건강권의 또
다른 측면을 이룬다.
사실은,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이 사회가 “국민의 건강할 권리”를 그저 외
면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헌법상의 규정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역대 정부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던 ‘전국민의료보험’ 제도라는 것도 있고 공공의료기관도
몇 군데 세워 운영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빚 좋은
개살구 마냥 실속 없이 노동자들의 추가 부담만을 요구하여 사실은 실질
적인 건강권 보장의 조치가 되지 못하는 데 있다. 올해 논란이 되었던 건
강보험이야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의 90% 이상이 사적
으로 소유되고 운영되고 있는지라, 필요에 따른 의료이용과 건강권의 보
장이란 현실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셈이다. “아픈 사람 외면 말라”고 의
료인의 윤리의식에 호소를 해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회에서 자본
가들에게 “이윤 추구 지나치다”고 얘기해본들 소용없는 것처럼 문제의 핵
심은, 사회적으로 뿌리내린 의료기관의 소유와 운영 자체의 사적 성격에
있는 것이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처럼, 같은 사회에 존재하는 의료
기관이라고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게다가 적어도 건강”권”이라는
관념이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되어 공공의료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럽
등 외국과는 달리, 이 사회는 사람의 건강 문제를 다루는 보건의료 영역
에서조차 기형적으로 사적 소유와 영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야만적인 자유
방임 그대로의 상태인 셈이다.
게다가 사적의료가 지배적인 이러한 상황은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 등 노
동자 건강보호와 직결되는 제도들의 실내용을 훼손시킨다. 사적의료기관
의 진료비로 지불하는 금액은 날로 커지지만 이윤동기에 휘둘리는 의료기
관들이라 사람의 건강증진과 보호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기 어렵다. 그러
니 노동자의 건강권, 나아가 국민의 건강권이란 의료체계의 사적 성격을
바꿔나가지 않으면, 공공의료를 근간으로 의료체계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이 역시 문제 해결을 미루고 문제를 키우는 따름일 뿐이다.
이 점에서 비록 10% 채 안되는 공공의료, 공공의료기관이라 해도 이것이
우리 노동자들에게 소중한 이유는 각별하다. 우리 의료체계의 사적 성격
을 변화시킴으로써 공공성이 확보된 의료를 만들어 가는 것, 이를 통해
노동자의 건강권, 국민의 건강권을 유보 없이 보장하는 것은 이처럼 왜소
한 공공의료를 알찬 것으로 바꾸고 그 크기를 키워 가는 싸움에서 출발해
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자 건강권 후퇴의 원인이 지금의
공공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 체계가 사적
성격으로 건강권의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이 싸움은 공공의
료기관의 노동자의 싸움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보건의료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의 몫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실업노동자가 흔히 말하는 ‘의료취약계
층’이기 때문에 공공의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
한 싸움이 의료의 사적 성격 제거와 공공의료 강화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공공의료가 소중하다는 점이 이제 분명해진 것이 아닐까.
최 용 준 (민중의료연합 정책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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