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정규직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인간으로서, 내 자신의 존엄한 가치를 확인 받을 겁니다”
이 말은 지난 2000년 7월 19일 MBC여성시대에 방송되었던 이랜드 비정규직노조원의 편지 내용 중 일부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준비하며 이랜드에 취직하여 30도를 웃도는 바깥 날씨보다 더 더운 찜통같은 창고에서 옷상자를 나르고 물건을 분류하고 소금기 묻어나는 중노동을 잔업, 철야 가리지 않고 일하며 한달에 506,000원을 받던 중 도급업체로 넘긴다는 소식을 듣고 비정규직 노동조합 분회를 조직하고 투쟁에 들어갔던 젊은 청년의 절규였다.
‘중저가 브랜드’, ‘유럽풍의 의류’, ‘기독교 기업이라는 깨끗한 이미지’로 알려진 이랜드는 박성수 회장의 ‘신화적 성장’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런 번지르한 허울을 벗기고 나면 98년 IMF 이후 전체직원의 50%가 넘는 2,000여명을 길거리로 쫓아냈으며, 98년, 99년 2년 동안 전 직원의 임금삭감과 동결, 그 결과 99년에는 300억이라는 순이익을 냈으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월 50만 6천원의 임금으로 야근, 철야를 밥먹듯이 시키며, 여직원을 군부대로 서비스교육을 보내 성희롱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자본의 모습이 놓여 있었다.
또한 박성수 회장은 93년 노조 창립이후 4년간 조합원 22명 해고, 800여명이던 조합원을 회유, 협박으로 무더기 탈퇴시키는 노동조합 탄압과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았으며,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고 그 자리를 임시직, 도급업체, 불법파견 노동자로 대체, 이윤을 극대화해 온 자였다.
찜통 같은 창고에서 소금땀을 흘리며 장시간, 저임금노동,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해 비정규직분회(부곡분회)를 조직하고 IMF이전 임금인 726,000원으로 원상회복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을 요구하며 마침내 6월 16일 파업을 선언하게 되었다.
이랜드 노동조합(위원장 배재석)은 2000년 6월 27일 노동조합 규약을 개정하여 도급, 용역, 파견근로노동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하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으며 비정규직분회(부곡분회)의 파업에 이어 19일 사무전문직, 식품분회가 임금인상과 고정상여금 환원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투쟁’, ‘힘들지만 아름다운 투쟁’
비정규직 철폐를 전면에 내세운 이랜드 노조의 파업에 맞서 사측은 ‘건실하고 가족 같은 기독교 기업’이라는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무자비한 폭력과 탄압을 일삼았다.
8월 본사와 부곡물류센터 직장폐쇄 단행, 용역깡패와 구사대를 앞세워 농성장 침탈, 여성조합원 감금 폭행, 공권력을 투입하여 조합원을 연행, 구속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더욱이 부당노동행위와 불법파견근로 혐의로 박성수 회장에 체포영장이 발부됐으나 박성수 회장은 가족과 함께 해외로 나가 끝내 나타나지 않으며 노동조합을 교섭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은 태도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랜드 노동조합은 사측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10개의 거점 확보투쟁 △노조탄압분쇄를 위한 17일간 단식농성 △물류창고 점거투쟁 △아울렛 정문 앞 천막농성과 컨테이너 농성투쟁 △이랜드 제품 불매운동 △성희롱실태 고발 및 민사소송투쟁 △지하철 선전전과 투쟁사업장과 함께 하는 연대투쟁 △서울 중계동 아울렛 매장 점거투쟁 △구속과 징계 해고 등의 탄압을 뚫고 263일 동안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투쟁의 깃발을 단 한번도 내리지 않고 가열차고 끈질긴 장기파업투쟁을 벌였다.
끈질긴 장기파업 투쟁에는 ‘이랜드를 도와주는 사람들’, ‘이랜드노조 파업투쟁지원대책위’, ‘이랜드노사관계 정상화를 위한 기독교 대책위’, ‘비정규직 공대위 이랜드진상조사위원회’, ‘이랜드 노조 가족대책협의회’, ‘이랜드 성희롱특별위원회’, 안양, 중계, 안산 지역의 시민단체,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지원과 지지 등 연대투쟁과 지원투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것은 한국사회 63%에 이른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당당한 투쟁에 대한 연대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투쟁에 대한 지지이며 이랜드 조합원들의 헌신적이고 가열찬 투쟁의지에 대한 화답이었던 것이다.
263일간 장기파업투쟁은 2001년 3월 5일 잠정합의를 거쳐 3월 6일 조합원 총회에서 조합원 75.9%가 잠정합의안에 찬성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비정규직 문제에 정규직 노조가 하나되어 투쟁했던 이랜드 노조는 △만 3년이 경과된 비정규직 사원은 별도의 전형절차를 거쳐 정규직으로 채용(단, 부곡분회 비정규직의 경우는 만 2년) △부곡물류창고 도급계약 해지자 15명에 대해서도 타결 직후 직접 채용 △지난 3년 동안 정규직 채용이 거의 없었던 2001 아울렛은 캐셔·판매·상품관리 등의 정규직을 점차 늘려나가기로 합의했다.
징계는 5명에 대해 무급정직 1년, 그 외 징계는 간부선에서 최소화하기로 했으며, 무노동 무임금에 대해서는 타결 즉시 생계비 차원에서 1인당 100만원씩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성희롱 방지를 제도화하고, 성희롱 방지 전담자를 선임하는 것과 기본급 기준 5~10%의 임금인상도 합의안에 포함되었다.
최대의 성과이자 희망은 민주노조를 사수해 낸 것
장기파업의 결과 18명의 수배와 2명의 구속 조합원 문제,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관계, 2000여명의 직원 중 150명에 불과한 조합원 수를 늘려 조직을 탄탄히 정비해야하는 등 수많은 과제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랜드 노조는 ‘263일 동안 임금 한푼 받지 못하고 싸운 이유는 우리의 요구가 너무나도 정당하고 소박했고 노동자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파업후반에 가장 핵심적인 요구는 민주노조 사수가 되었다. 생계문제로 빚을 지고 있는 조합원이 대부분이었지만 조합원들은 무노동무임금을 포기하더라도 해고자를 발생시킬 수 없다며 노동조합을 선택하였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성과이며 희망이다’라고 투쟁을 마무리하면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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