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에 일어난 삼청교육대 문제는 아직 청산되지 않은 과거다. 5공화국 당

시 발생했던 해직언론인사건이나 광주민중학살 등은 진실규명과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 어느 정도 이뤄진 반면, 삼청교육대는 지난 해 7월 대법원으로부터 위자

료 명목의 배상 판결이 있었을 뿐 실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왜일까? 『삼청교육대백서(상)』(아래 백서)은 그 이유를 삼청교육대 희생자들이

당시 우리 사회의 ‘쓰레기’로 분류됐고, ‘언론조작’을 통해 삼청교육대가 ‘정의사

회 구현’과 ‘사회악 일소’라는 명분으로 미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이 발령된 직후 7월 29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사

회정화정책의 일환으로 ‘삼청5호(불량배 소탕계획)’를 수립한다. 계엄사령부 전

군 부대에 ‘불량배 소탕 및 정화계획’이란 공문이 발송되고, 8월부터 12월까지

전국적으로 60,755명이 검거됐다. 검거된 사람들은 세 등급으로 분류되었는데, A

급 대상자 3,252명은 구속(군사재판에 회부)되고, BC급 39,736명은 군부대 순화

교육으로 보내지고, D급 17,717명은 훈방조치 됐다. 백서에 따르면, 이 중 ABC

급 대상자 무려 4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강제연행·불법감금·강제노역·고문 등

반인도적인 대우를 받았으며 5백 여명이 사망에 이르렀다. 또 지금껏 희생자들

은 삼청교육 대상자라는 사회적 낙인을 벗지 못하고 있다.

이 백서는 20여년 동안 이루어진 삼청교육대의 실상을 피해자 인터뷰, 당시 신

문자료 등을 통해 생생한 르뽀로 재구성하여 전달하고 있다.

펴낸 곳 : 삼청교육인권운동연합 / 541쪽 / 2001년/ 문의 : 765-4126 [최은아]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